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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낙방 미안해서 … 시험 준비 때문에 … 알바 대목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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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조모씨가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택배 집하장에서 수화물을 차량 쪽으로 옮기고 있다. 학비가 필요한 조씨는 추석 대목엔 오전 7시부터 하루 최장 12시간 동안 택배 분류작업을 한다. [박종근 기자]


 취업준비생 최순민(26)씨는 이번 추석에 고향인 광주광역시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어서다. 최씨의 일정표를 체크해봤더니 진짜 빈틈이 없다. 취업 스터디는 연휴 나흘 내내 계속한다. 또 기업 서너 곳에 낼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고, 연휴 마지막 날에는 학교에서 수강하는 수업의 발표 준비를 해야 한다. 면접에 대비해 인·적성 문제집을 풀고 집단토론 대비책도 세워야 한다. 최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묘를 빠지지 않았는데 올해는 못 찾아뵐 것 같아 조상님들께 죄송하다”며 “부모님이 추석 당일에 서울에 오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2030, 고향에 안 가거나 못 가거나

귀향 포기족
대기업 공채 시즌, 취업준비 바빠
자소서 쓰고 공부하러 도서관에

생계형 알바족
택배집하장 등 추석 인력 필요한 곳
주급 올라 학비·생활비 마련 ‘대목’

귀향 기피족
“결혼 안 하냐는 질문 이젠 지쳐요”
여행 카페서 동행 찾아 템플스테이


 추석에도 고향에 안 가거나 못 가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작가 이문열씨가 2003년 낸 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를 패러디해서 표현한다면 ‘그대 이번 추석엔 고향에 가지 못하리’쯤 된다. 취업이나 시험 준비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귀향포기족’, 취업은 안 하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가지 않는 ‘귀향기피족’, 도심에 남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생계형 알바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귀향포기족이 가장 많다. 이들은 기업들의 하반기 공채 서류전형이 진행되고 있어 한시도 방심할 수 없다. 추석 연휴 기간에 서류전형을 마감하는 기업들이 있어서다. 취업준비생들에게 추석은 자기소개서를 쓰는 시간이거나 추석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2, 3차 전형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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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권모씨가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권씨는 영어 학원비를 벌기 위해 추석에도 쉬지 않고 일한다.(사진 위) 서울 성균관대에서 취업 스터디를 하는 학생들. 이들은 추석에도 매일 스터디를 계속할 계획이다.

 성균관대에 다니는 이한조(26)씨는 서울에서 부모와 함께 산다. 이씨는 24일 “매년 명절이면 인사차 가던 수원 친척집을 이번엔 가지 않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대신 시간을 아껴 자기소개서 5개를 작성하고 인·적성 문제집 1권을 풀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성대 학생인재개발센터의 취업 관련 프로그램 참여 과정에서 들었던 기업별 분석 내용도 복습할 예정이다. 이씨는 “10월 첫주부터 서류전형 합격 여부가 발표되고 인·적성검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불안해서 친척집에 갈 수가 없다”며 “합격해서 인사 드리러 가는 게 더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함께 스터디를 하는 노태정(23·여)씨도 연휴 동안 매일 도서관에 나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임용고시를 준비해 온 장모(30)씨는 추석 내내 온라인 강의와 노량진 학원 특강을 듣기로 했다. 장씨는 “3년째 낙방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다”며 “늘 하던 대로 특강을 듣고 밀린 공부를 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장씨는 “나뿐 아니라 노량진에 사는 많은 친구가 집에 가지 않는다”며 “함께 맛있는 밥을 먹으며 조촐하게나마 명절 기분을 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생활비나 학비를 벌기 위해 귀향 대신 아르바이트를 택하는 ‘생계형 알바족’도 많다. 취업준비생 권모(25)씨는 추석에 부모님을 찾아뵙는 대신 25일부터 5일 동안 서울 관악구의 한 편의점에서 야간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다음달 수강할 토익 스피킹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다. 권씨는 “기업별 원서접수가 한창인데 지난달 토익 스피킹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며 “시험 비용만 8만원 가까이 되고 원하는 점수가 나올 때까지 시험을 봐야 해 연휴 때라도 돈을 벌기로 했다”고 말했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한 택배 집하장에서 만난 조모(31)씨에게 추석은 대목이다. 대학원생인 조씨는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설과 추석 앞뒤 2주간은 매일 오전 7시 일을 시작해 자정이 넘어야 끝난다. 점심을 포함한 휴식시간 4~5시간을 제외하고 12시간씩 일하는 셈이다.

조씨는 “대학원 학비와 취업 준비 비용까지 한꺼번에 마련한 뒤 내년부터는 공부에만 전념하고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택배 물량이 많은 추석에는 주급이 오르기 때문에 ‘명절’이라기보다는 ‘대목’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이 이달 15~18일 전국 남녀 구직자 9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6.1%가 ‘추석에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단기 고수익을 올릴 좋은 기회라서’가 31.3%로 1위를 차지했고, ‘쉬고 싶지만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서’(28.8%)가 2위였다. 이 사이트에는 추석 연휴 기간 마트와 편의점 단기 아르바이트 직원을 구하는 글이 1500여 건 올라와 있다.

 귀향기피족은 대부분 취업, 결혼과 관련한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청춘들이다. 지방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A씨(33)는 추석에 고향으로 가는 기차표 대신 이틀간 강원도의 절에서 지내기 위해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예약했다. 가족과 친척들이 주는 ‘결혼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다. A씨는 "서른 살이 넘으면서부터 가족과 친척들이 만날 때마다 ‘결혼 안 하느냐’고 말해 지친다”며 "한두 해는 친척들에게 ‘곧 가겠죠’라고 말하며 웃어넘겼지만 지난해부터는 스트레스를 받아 귀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한 여행카페에 템플스테이 동행자 모집 글을 올렸는데 5~6명이 연락해 왔다”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놀랐다”고 했다.

글=채윤경·김선미 기자 pcha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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