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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동굴 밖으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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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시인

국정교과서는 역사 해석을 국가가 독점하겠다는 것
그러나 누가 해석의 무오류성을 장담할 수 있는가

단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보면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오셀로는 악당 이야고의 계략에 넘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부정하다고 의심하고 목 졸라 죽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정숙(貞淑)’한 여인을 ‘부정(不貞)’한 여인으로 읽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여인을 가장 심각한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이야고가 유도한 질투 때문이었다. 데스데모나의 정숙이 ‘사실’이었다면, 그녀의 부정은 사실과 무관한 (오셀로의) ‘해석’이었다. 오셀로의 경우 불행하게도 사실과 해석 사이에 ‘질투’라는 왜곡의 프리즘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오셀로의 비극은 단지 문학작품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물인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은 늘 어떤 매개물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 이해관계, 취향, 정서, 이데올로기, 신념 등이 항상 끼어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철석같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 이와 같은 매개물들을 통해 읽어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오셀로처럼 해석을 (아무런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라. 어릴 때부터 평생 동굴의 벽만 바라보도록 사지(四肢)가 묶여 있는 사람들은, 등 뒤의 불빛이 벽에 그려낸 그림자를 실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동굴 밖으로 나온 다음에야 그것이 실물이 아니라 그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튀세의 말마따나 “이데올로기 내부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사실과 해석을 동일시한다. 그리하여 해석을 사실로 믿게 하는 것, 그것이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는 해석을 사실로, 그림자를 실물로 믿게 만들기 때문에, 적어도 그 내부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모순)가 없어 보인다.

 이런 왜곡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한다. 우리는 자식, 이웃, 배우자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에 대한 객관적 지식(episteme)이라고 확신하는 많은 것이, 개인적인 신념 혹은 의견(doxa)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놀랍게도 이런 사례는 허다하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런 점을 들어 모든 지식(혹은 문학 텍스트)의 “세속성(worldliness)”에 대해 언급한다. 말하자면 “무사 공평한”, 객관적 지식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지식에는 개인 혹은 집단의 ‘세속적’ 이해관계, 이데올로기, 취향이 개입된다. 그에 의하면 문자 그대로 ‘순수한’ 지식이란 없다.

 버젓이 눈앞에 있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이러할진대 발생과 동시에 사라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잘 보라. 우리가 사실로 착각하고 있는 모든 역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남은 것은 ‘문자화된 역사’, 다른 말로 하면 ‘해석된 역사’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에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다시 말하지만 사실로서의 역사는 이미 사라지고, 남은 것은 그것에 대한 해석밖에 없다.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것은 바로 이 해석의 권리를 국가(정확히 말하면 정부)가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막말로 누가 그 권리를 독점해도 상관없다고 치자. 그러나 반드시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해석의 무오류성’이다. 그런데 정부뿐만 아니라, (신이 아닌 다음에야) 지상의 그 누가 감히 이 해석의 무오류성을 장담할 것인가. 그래서 ‘국사 교과서 쓰기’라는 ‘해석’의 통로는 다양하게 열어놓아야 한다. 다양한 해석들이 서로 충돌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해석의 오류를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 그리하여 어렵지만 공동체의 동의(同意)를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성숙을 지향하는 사회가 나아갈 길이다. 정부가 해석을 독점하겠다는 것은 다수 국민을 자기만의 동굴에 가두겠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가. 그림자를 실물로 계속 믿고 싶은가. 동굴 밖으로 나오라.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실물이 아니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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