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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난 뒤 분해되는 녹말 이쑤시개, 자연을 담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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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식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온 아시아의 미래를 두고 한·중·일 세 나라의 건축가·디자이너 세 사람이 서울에서 만나 의견을 나눴다. 왼쪽부터 중국 건축가 주페이,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 한국 디자이너 권영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년에 분당 같은 신도시가 50~60개씩 생겨나는 나라. 중국의 현주소다. 미국 맥킨지 연구소(MGI)가 2008년 내놓은 중국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30년까지 도시 인구가 매년 1700만 명씩 늘어날 것으로 봤다. 상하이와 베이징의 경우 이미 인구 2000만 명이 넘는 수퍼시티가 됐다. 도시화가 빠른 만큼 경제도 성장했다. 그런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서구식 도시화가 가져올 후폭풍 때문이다. 환경 파괴, 자원 고갈, 전통문화 상실 등 이미 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다. 만약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이렇게 개발된다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권영걸, 주페이(朱?), 이토 도요(伊東豊雄). 한·중·일의 주요 건축가·디자이너가 이 같은 문제의식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는 2013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주페이는 베이징 올림픽 때 주요 시설물인 올림픽관제센터를 디자인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권영걸 한샘 사장은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을 지냈다. 이토와 주페이는 최근 한샘이 개최한 신문명디자인공모전 ‘창신’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 위해 방한했다. 21일 서울 원서동 한샘디자인센터에서 만난 세 사람은 “지역과 전통을 배제했던 소비 중심의 디자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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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지금 디자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나.

 ▶주페이: 중국은 지난 30년간 쾌속으로 도시 발전을 이뤘다. 그 덕에 자본 축적도 했지만 고유의 문화·전통 등 잃어버린 게 많다. 지속가능하게 성장하려면 지금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기존에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재조명하는 사고방식이다. 중국이 포스트 올림픽 시대를 맞아 아시아에서 어떻게 발전해 나가고, 어떤 문화적인 위치를 잡아나가야 할지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이토 도요: 지금까지 우리는 서구의 모던 디자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런데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음식을 예로 들면 요즘 일본에서는 지역 고유의 음식을 재조명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서양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지역의 고유한 것을 회복하자는 목소리다.

 ▶권영걸: 우리나라의 경우 고종이 근대 서양 법식을 받아들여 국가체제를 새롭게 확립했던 갑오경장이 120년 전 이야기다. 그런데 불과 한 세기 만에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가 무한 반복되는 시대가 됐다. 생태학적으로 건강했던 삶을 회복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디자인은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이다.

 - ‘옛것이 좋은 것’이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이토: 요즘 한국에서는 한복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는 여행 갈 때 멋진 호텔보다 옛 집에서 머물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몸안에 축적된 전통이 밖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움직임일지 모르겠지만 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주: 중국에서도 요즘 젊은 세대들이 결혼할 때 웨딩 사진을 두 종류로 찍는다. 하나는 서양식 그대로, 다른 하나는 중국 전통 복장을 입고 찍는다. 전에는 없던 현상이다. 서양 문명의 가치관을 무조건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되 중국의 전통적인 철학사상을 융합하자는 거다. 형식적으로 겉모양만 옛것처럼 디자인하자는 게 아니다. 디자인 속에 철학과 사상을 담아내자는 거다.

 - 디자인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나.

 ▶주: 중국의 옛 풍경화를 보면 99%가 자연을 그려놨다. 산과 물이 나오고 아주 작은 오두막집이 있으며 사람은 더 작다. 자연은 크고 인간이 작았다. 중국의 풍경화는 공백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림을 보는 관중이 상상하게 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기술의 힘을 빌려 사람이 자연보다 커지는 상황이 왔다. 그래서 나는 건축할 때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집어넣으려 하지 않는다. 집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고할 수 있게끔 여백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권: 현대 건축과 디자인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커리큘럼을 보면 역사 과목이 없다. 역사를 보여주면 베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더니즘은 철저히 혁명의 열기로 시작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바우하우스식 교육이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디자인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가져야 한다. 40년이면 허물고 다시 짓는 우리의 아파트와 1900년 된 로마의 판테온, 1500년 된 불국사, 아직도 짓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작품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 좋은 디자인은 무엇인가.

 ▶권: 음식점에 가면 볼 수 있는 녹색의 녹말 이쑤시개야말로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녹말의 주성분인 아밀로 펙틴으로 만든 것인데, 상온에서는 딱딱해져서 이쑤시개로 쓸 수 있고, 물이나 땅속에 들어가면 완전 분해된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가장 가까운 디자인이다.

 ▶이토: 나는 건축을 배울 때 선생님에게 이렇게 배웠다. ‘머리로 생각해서 건축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게 건축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건축은 3일 가면 바뀌는데 몸으로 체감한 디자인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 우리 몸속에 축적해 온 긴 역사를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

 - 서울의 도시 환경은 어떤가.

 ▶이토: 서울과 도쿄는 역사 유산이 도시 속에 남아 있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그런데 고층 빌딩이 많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역사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과 도쿄가 가진 특색이 없어지면서 두 도시가 비슷해져 가고 있다. 두 도시의 역사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서울과 도쿄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도시의 과제이기도 하다.

 ▶주: 중국도 도시화로 인해 옛 건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역사적인 유산과 현대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이 많다. 서울에 있는 전통 건물 대다수가 자연에 살포시 앉은 모양새다. 자연을 반영하던 태도, 인본적인 가치관이 있는 옛 건물과 도시의 삶을 어떻게 연결할지 중국과 한국은 공통의 과제가 있는 것 같다.

 인터뷰 전날, 건축가 주페이와 권 사장은 서울 종묘와 창덕궁을 함께 둘러봤다. 주페이는 마침 베이징에서 태묘 보수공사를 맡아 하고 있다고 했다. 태묘는 황실의 위패를 모셨던 곳으로, 우리나라로 따지면 종묘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아직도 제사를 지내는 종묘와 달리 태묘는 현재 노동인민문화궁으로 문화·오락의 장소가 됐다. 주페이는 “한국과 중국의 전통 건축 DNA는 비슷한데, 한국의 건물 배치나 모양새가 좀 더 자유로운 것 같다”고 했다. 제례 공간으로 가장 규격을 지키며 지었을 종묘의 정전만 해도 양끝의 건물이 대칭 형태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같은 크기라도 한쪽은 누마루, 한쪽은 사방이 막힌 건물로 지은 점을 그는 흥미로워했다. 그뿐 아니다. 종묘 정전에서 주페이는 담벼락 너머 우뚝 솟아오른 건물을 가리켰다. 한 제약사의 대형 간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창덕궁에 들어서자마자 좌측으로 보이는 연립주택을 가리키며 용도를 묻기도 했다. 전통 건축물과 도시의 위태로운 공존을 보는 건축가의 눈은 날카로웠다.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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