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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신용평가회사는 왜 무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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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대우조선해양 부실 책임 공방이 지난 21일 국회를 달궜다. 국정감사장은 호통과 고함이 난무했다. 대우조선은 올해 2분기에만 3조2000억원을 까먹었다. 의원들은 “왜 미리 알아채지 못했느냐”며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회계감사를 맡은 딜로이트안진까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곳은 다 불러다 야단쳤다. 대우조선은 1998년 한 번 망했는데 2조9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들여 회생시킨 회사다. 그런 회사를 방만한 경영·회계·감독으로 손실을 입혔다면 그야말로 국민 혈세를 갉아먹은 것이다. 그러니 중한 벌이 마땅하다.

대우조선 ‘뒷북 평가’ 책임
전혀 안 지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이런 문책 대상에서 슬쩍 빠진 곳이 있다. 신용평가회사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은 투자자에게 대우조선의 위험을 전혀 사전 경고하지 못했다. 신용평가회사만 믿고 있던 투자자들은 거액의 손실을 봐야 했다. 한국기업평가는 7월 15일에야 A(하향검토 대상)로 등급을 낮췄다. 언론에서 열흘 넘게 대규모 손실을 보도한 뒤였다. 하루 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가 따라 왔다. BBB로 낮춘 것은 7월 30일이었다. 이미 대우조선 주가는 연초의 4분의 1로 떨어졌을 때다. 전형적인 ‘뒷북 평가’요 사후약방문이었다.

 어디 대우조선뿐이랴. KTE&S 때도, 동양그룹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부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나서야 신용등급을 낮췄다. 그러니 도대체 이런 신용평가회사가 왜 필요하며, 이들을 믿고 어떻게 투자를 하란 말인가. 그런데도 왜 신용평가사엔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는가. 업계 관계자 A씨의 말이다.

 “투자은행이나 회계법인은 거액을 물어준 적이 있지만 신용평가사는 예외다. 한 번도 소송에 진 적도, 돈을 물어준 적도 없다. 회계법인처럼 감사 업무까지 고려할 책임이 없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대우조선의 경우도 그럴 것이다.”

 소송으로 안 된다면 금융 당국이 엄한 제재라도 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금융감독원이 3대 신용평가사를 문책한 것은 2013년 동양그룹 사태 때 딱 한 번뿐이다. 그나마 기관장을 문책경고하고 직원들 몇 사람 감봉한 게 전부다. ‘뒷북 평가’는 처벌 대상도 아니었다. 동양사태로 수만 명의 피해자가 나와 ‘엄중 제재’한다고 한 게 이 정도였다.

 감독 당국 관계자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1년 자격정지나 평가 정지 같은 강도 높은 문책은 꿈도 못 꾼다고 한다. 왜 그런가. 국내 신용평가회사가 달랑 3곳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를 영업정지하면 남은 둘은 독과점이 된다. 우리 신용평가는 복수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기업의 신용등급을 매길 때 신용평가회사 두 곳 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신용평가사 한 곳을 영업 정지하면 나머지 둘이 100%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다.

 그러니 담합은 기본이다. 수수료도 정확히 3분의 1씩 나눠 가진다. 1위와 3위 신용평가사 수수료 매출이 1%포인트 차이도 안 난다. 경쟁도 필요 없다. 서로 속사정을 빤히 아니 봐줄 회사 같이 봐준다. 땅 짚고 헤엄치기도 이보다 쉬울 수는 없다.

 미국은 어떤가. 미 금융당국은 지난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1조5000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1년간 신용평가자격도 정지했다. 상업용 건물의 등급을 매기면서 은행에 유리하도록 평가해 준 책임을 물었다. 피해자가 본격 발생하기도 전에 제재에 나선 것이다.

 우리도 이젠 신용평가의 틀을 바꿀 때가 됐다. 우선 복수평가 의무제부터 손질하는 게 순서다. 일본은 90년대 복수평가 의무제를 폐지했다. 채권 발행회사 60% 정도가 단수 평가를 받는다. 여전히 발행회사가 갑이요, 평가회사가 을인 국내 상황에선 전면 실시보다는 규모별로 나눠 실시하는 게 좋을 것이다. 경쟁을 늘리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침 제4의 신평사 설립도 추진 중이다. 메기를 풀어 시장을 흔들고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다. 경쟁이 없는 시장은 죽은 시장이다. 4개가 되면 금융 당국도 더 이상 독과점을 핑계로 솜방망이 제재만 되풀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야 부실 기업 사태가 터질 때마다 덩달아 소액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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