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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사건:텔링] 수감 18년간 면회 0, 무차별 증오 키운 김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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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서울동부지법 법정. ‘트렁크 시신’ 사건의 납치·살해범 김일곤(48)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국선변호인은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서 반성의 말 한마디라도 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김의 눈에선 짙은 분노만 일렁였다.

 “법정 최고형 받을 걸 저도 알고 있다고요. 그놈을 못 죽인 게 아직도 후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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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중퇴한 뒤 무작정 가출. 이후 음식 배달 등을 하며 외톨이로 지냄.

 김일곤은 1967년 경북 경주의 판자촌에서 7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내성적인 아이였다. 형제들과도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무작정 집을 나선 뒤 부산을 거쳐 서울로 갔다. 그는 상경 후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몇 차례 사고를 겪으며 몸에는 상처가 하나둘 늘어갔다.

 “처음부터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던 건 아니에요. 가난 때문에 시작한 생계형 범죄가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형사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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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부터 강도와 폭행·절도 등 전과 22범. 수감 18년간 부모·형제 중 누구도 찾아온 적 없음.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서 시작된 전과가 22범으로 늘었다. 강도와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18년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면회 기록은 아예 없었다. 가족들조차 그를 외면한 것이다.

 “제가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주소지 이전을 하면 돈이 나오거든요. 그 돈으로 고시원 월세를 낼 테니 일단 방을 주시면 안 될까요?”

 감옥에서 나온 그는 잘 곳이 마땅치 않을 때마다 고시원에 가서 이렇게 말한 뒤 자리를 잡았다. 월세 낼 돈을 구하지 못하면 그대로 달아나 길거리 생활을 했다. 한곳에 한 달 이상 머무는 일은 드물었다. 노숙을 할 땐 일용직 일자리를 소개받기 쉬운 강남구와 성동구 일대에서 주로 지냈다. 거리와 감옥, 고시원을 오가며 십수 년을 보냈다. 그의 내면에선 피해의식이 계속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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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오토바이 사고로 척추수술 후 장애 판정. 의료사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자 분노.

 “나는 의료사고 피해잡니다. 보상을 하라고요! 지금 날 무시하는 겁니까.”

 김은 2013년 병원에서 난동을 부렸다. 오토바이 운전 중 사고가 나 척추수술을 받은 직후였다. 병원은 터무니없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애 6급 판정을 받은 그는 자신이 병원에서 본 의사와 간호사 등 10여 명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그러다 김이 서울 대림동의 한 재래시장에 자신의 가게를 연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주변 상인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밤 10시만 되면 조용히 어딘가를 보면서 담배만 피웠던 게 기억이 나요. 무서웠어요.”

 “갑자기 욱하는 성격이었죠. 노출이 심한 여자를 보면 ‘저렇게 옷을 벗고 다니는 여자들은 모두 죽일 X’이라고 화를 냈어요.”

 “가게 창문을 검은색 테이프로 다 막아서 안을 볼 수 없게 했어요. 우리와 말도 섞지 않았고 우울해 보였어요. 상인회에도 가입하지 않았고요.”

 김은 결국 5개월 만에 장사를 접었다. 월세 50만원인 가게 임대료를 둘째 달부터 내지 않았다. 전기요금 20만원까지 내지 않아 가게 주인과 다퉜다. “절반이라도 내는 게 어떠냐”는 말을 건넸던 한 상인은 “돈 있는 사람 편을 드는 거냐”는 그의 힐난에 곤혹스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 7월 그가 한 달간 머물렀던 고시원 주민들은 “(김은) 늘 화가 난 표정에 양복 차림이었고 땅만 보고 다녔다”고 했다.

 김은 검거된 후 지난 5월 차량 접촉 사고로 자신과 크게 다퉜던 20대 남성 K씨를 향해 험악한 말을 쏟아냈다. “이게 다 그놈 때문이에요. 내가 접촉 사고 피해자였는데 그놈 때문에 가해자가 됐다고요.”

 자신에게 무참히 살해된 피해자 A씨(35·여)에 대한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범죄심리학자인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김일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오로지 본능으로만 행동하려 하죠. 어린 시절 자기 조절 능력을 배우지 못했고, 대화 나눌 친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어떻게 조절할지 모르는 것, 그게 결국 납치와 살해로까지 이어진 겁니다.”

한영익·김민관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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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