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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취업·구인난 해소 ‘사원임대제’ 가납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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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성균관 유생 180여 명의 대표인 장의(掌議) 역을 맡은 민신홍(25·오른쪽)씨가 임금에게 상소가 성공적으로 올려질 수 있도록 축문을 읊고 있다. [사진 성균관대]


조선시대 젊은 선비들은 자신들의 고충을 호소하기 위해 임금에게 직접 상소를 올렸습니다.임금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 각종 정책에 십분 반영했지요. 팍팍한 요즘 청춘들의 삶을 돌아보면 지금 대한민국에도 상소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20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 명륜관에서 대학생 180여 명이 대통령에게 상소를 올리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취업부터 주거 문제까지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2015년 젊은 유생들이 주상(대통령)에게 올리는 상소를 옛 상소문의 문체를 빌려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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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乙未年) 구월 스무 날. 유소문화축제(儒疏文化祝祭)에 참석한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 180여 명이 주상(主上)께 상소를 올립니다.

 일찍이 이르옵기를, 젊은이는 나라의 근간이라 하였습니다. 하오나 작금에 이르러 나라의 발전에 힘써야 할 젊은 선비들이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 선비들의 허물어진 모습을 차마 앉아서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양질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니 이는 크나큰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진실로 지식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간절히 탄식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이에 저희 성균관 유생들은 ‘을미년(2015년) 정책상소 공모전’을 열었나이다. 지난 칠월부터 두 달여에 걸쳐 온 백성을 대상으로 상소를 공모했습니다. ‘청년 일자리 정책’과 ‘사회적 약자 배려 정책’에 대해 꾀를 내 달라 했습니다. 수십 편의 상소가 속속 도착했사옵니다. 모든 상소가 귀하기 이를 데 없으나, 유생들과 교수들이 합심해 두 편의 우수 상소만을 간택했사옵니다. 이에 주상께 간략하게 새로운 정책에 대해 고하겠나이다.

 우선 사학을 공부하는 스무 살 박경렬 성균관대학교 유생이 제안한 정책이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현 조정의 문제점은 산업의 규모와 생산량의 증대 없이 일자리만 늘리겠다는 데에 있사옵니다. 따라서 일자리 부족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증대시켜 임금구조를 개선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만 하옵니다. 하여 중소기업의 기술력 증진을 위해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연구소 설립’과 ‘사원임대제도’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상생연구소 설립의 경우를 먼저 말씀드리겠나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할 만한 기술력을 갖추기는 작금의 현실에서 몹시 어려운 일이옵니다. 이러한 기술력의 차이 극복을 위해 중소기업은 고학력 연구인력 채용이 절실합니다. 하오나 고학력 젊은이들이 중소기업 연구소에 취직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연구소 설립이 절실한 상황이옵니다. 중소기업의 연구소 설립에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다면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고학력 연구인력을 어렵지 않게 채용할 수 있어 좋을 것이옵니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높은 기술이 필요한 부품 등을 낮은 가격에 조달받아 사용할 수 있게 되옵니다. 다만 기술의 지적 재산권은 중소기업이 갖도록 해 대기업의 과욕을 막아야 할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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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의 집단 시위인 ‘소행(疏行)’ 행사 중에 즐거워하고 있는 성균관대 학생들의 모습.

 사원임대제도의 경우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기업은 이 사원을 특정 중소기업과 논의한 뒤 일정 기간 동안 그곳으로 임대를 보내는 것입니다. 관련 업무에 대한 경험을 쌓고 오라는 것입니다. 이 사원의 녹봉은 중소기업과 원 소속 기업인 대기업이 나눠 분담하는 것이 지당할 것입니다. 하면 중소기업은 높은 학력과 소위 뛰어난 ‘스펙’이라는 것을 갖춘 사원을 낮은 녹봉으로도 몇 해간 활용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대기업은 수년 후 경험과 실력을 충분히 갖춘 사원을 되돌려 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 정책이 널리 쓰인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인적 교류 확대의 문호도 널리 열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젊은이들도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고혈을 짜내는 대신 중소기업에 먼저 들어가 능력을 인정받은 뒤 이직하는 방안도 고려하게 될 것이옵니다.

 또 다른 상소는 러시아학을 공부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이주환 유생의 것이옵니다. 올해로 스물일곱 살인 이 유생은 우리 전통인 상부상조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상소를 올렸나이다. 상소공모전의 또 다른 주제인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정책입니다. ‘두드림(Do Dream)’이라 명명한 이 정책은 ‘꿈을 이룬다’는 의미라 하옵니다. 젊은 유생들과 노인들이 주거공간을 나누는 정책입니다. 기예와 학문에 능한 유생들을 선별해 노인들의 주거공간에 이들을 들이는 것이지요. 하면 노인들은 유생들에게 남은 생애를 즐기기 위한 각종 재주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학자금을 갚느라 넉넉하지 못한 유생들 역시 거저 생활 공간을 얻을 수 있으니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옵니다. 근래에 더욱 심해진 노인과 젊은이들의 심리적 거리감 역시 줄일 수 있습니다. 거주공간을 제공받는 청년들은 교육을 노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노인들의 생활을 도움으로써 각종 노인복지에 대한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으니 국가에 매우 다행한 일일 것입니다.

 감히 아뢰옵건대, 주상께서 즉위한 후로 젊은 유생들의 삶이 더욱 곤핍해졌사옵니다. 청년 실업률은 치솟고 높은 학비로 인해 유생들의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므로 군자는 이를 본받아서 스스로 힘써 쉬지 아니한다’고 하였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젊은이들의 간곡한 상소를 물리치지 말아 주시옵소서.

  記者(기자) 蔡承基(채승기) che@joongang.co.kr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 상소는
죽음 각오한 글 … 과거시험 ‘커닝’에 권력자 비리 고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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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2년(1798년) 유생들이 올린 상소문. [사진 성균관대]

성균관은 생원(生員)과 진사(進士) 자격을 갖춘 사람이나 고위 관료의 자제 또는 특별 전형을 거친 자가 입학하는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성균관 유생(儒生)들은 학문을 닦고 연마하는 것은 물론 나라의 대소사나 정치 사안에 대해 상소(上疏)를 통해 의견을 표명하곤 했다. 임금이나 대신들도 선비는 나라의 원기(元氣)라고 여겨 이들의 의견을 쉽게 무시하지 않았다. 대신 조선시대 유생들도 상소를 올리기 전에는 굳은 결심을 하고 올렸다. 유배는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까지 각오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상소 중에서 가장 강력한 건 1만여 명이 연대 서명을 한 만인소(萬人疏)였다. 만인소가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정조 16년(1792년)이다. 영남 유생들이 상소한 것으로 사도세자를 복권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상소의 내용은 다양했다. 선조 31년(1598년) 성균관 생원 정급은 유성룡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정급은 “유성룡이 조정의 권력을 움켜쥐고 영동(嶺東)과 영남(嶺南) 여러 고을의 모든 역(驛)에 친척들을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베·곡식·물고기·소금·축산·가죽·뿔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적으로 친한 사람을 시켜 관리하게 하였습니다”라고 상소했다.

세종 21년(1439년) 성균관 생원 이영산은 상소를 통해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영산은 “무릇 불씨(佛氏)의 해(害)는 진실로 한 가지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일하지 아니하고 놀고 먹으며, 부세(賦稅)를 도피(逃避)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좀먹으니, 이를 도태(淘汰)시켜야 합니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고종 21년(1884년)에는 성균관 유생 남두희 등이 “소매가 좁은 옷과 주의(周衣)는 이미 선왕의 유법(遺法)이 아니다”며 새로운 의복제도에 대해 반감을 표했다. 또 조선 순조 18년(1818년) 성균관 사성(司成)인 이형하는 과거제도의 여덟 가지 폐단을 상소했는데 그중 하나가 유생들의 커닝 문제였다. 이형하는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차술차작(借述借作·남의 것을 보고 베낌)과 수종협책(隨從挾冊·책을 옆구리에 끼고 들어가 몰래 봄)의 폐단을 지적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커닝이 큰 골칫거리 중 하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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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