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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파국을 피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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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9월 15일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3차 워싱턴 한·미 대화에 참석했다. 회의에 참석한 미국 측 지인들은 공·사석을 막론하고 10월 16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한·미 관계의 현주소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몇 가지 현안에 대해서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가장 큰 걱정거리로 북한의 향후 행보를 공통적으로 지목했다.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일에 즈음해 북한이 로켓 발사와 4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조평통 선전기관인 우리민족끼리의 최근 성명에 잘 나타나 있듯 북한 입장은 명백해 보인다. “평화적 우주개발은 국제법에 의해 공인된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이며 미국의 가증되는 대조선 압살책동에 대처해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은 정당한 자위적 조치로서 누구도 이에 대해 시비할 수가 없다.” 이러한 북의 도발적 행보가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심각히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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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미국 내에서 급격히 대두되고 있는 북한 붕괴 가능성과 그에 따른 한반도 통일 논의도 회의 기간 주된 관심거리였다.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 혹은 ‘통일 준비’를 보는 현지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리는 듯했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체제 붕괴 가능성이나 그에 따른 흡수통일 가능성을 낮게 보는 반면 외교 문제를 다루는 제너럴리스트들은 박 대통령의 통일론을 흡수통일론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주한 미대사를 지냈던 크리스토퍼 힐 덴버대 국제대학원장은 얼마 전 한 기고문에서 북한 붕괴를 기정사실화하며 “한국이 북을 접수해야 하며 이에 대한 충분한 계획을 사전에 세워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오빌 셸 같은 중국 전문가조차 한국 주도의 통일을 전제로 “한·중·미 3국 간 비밀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흡사 1994년 김일성 사망과 김정일 권력 승계 당시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됐던 붕괴론이 재연된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는 ‘북한 핵 문제와 인권 문제의 근본적 해결 대안으로 한반도 통일’을 거론한 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9·3 중국 전승절 참석도 쟁점이었지만 미국과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친 것이었으므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더욱이 미국 측이 이 문제를 섣불리 쟁점으로 만들 경우 한국의 국민감정을 다치게 해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워싱턴 전문가들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가장 어려운 이슈는 박 대통령의 방미에 앞서 평양이 로켓 시험발사 또는 지하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예상되는 파국적 상황 전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추가제재 결의안 채택은 물론 일부에서 거론하고 있는 것처럼 대북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물론 6자회담 재개에도 커다란 악재로 작용하며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 같은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 방미 전에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북 예방외교를 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8·25 합의 이후 마련된 남북 고위급 채널을 통해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 권리’나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 해소’ ‘북·미 관계 개선’ 등에 전향적 반응을 보이면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는 취지다. 동시에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이란에 준하는 북한과의 대화를 권고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도 이들은 잊지 않았다.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진적 합의 통일을 추진하다 만에 하나 북한 체제에 급격한 변화가 오면 당연히 다른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북측이 비난하는 ‘제도, 체제, 흡수 통일’을 추진하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이후의 논의에 전혀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당장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워싱턴이 원론적인 태도만을 반복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다.

 워싱턴 일부 북한 전문가들의 이러한 시각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기초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들이 미국의 주류 견해를 반영하는 것 역시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견해에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늘 강조해 왔듯 ‘제재와 압박’이라는 반사적 대응만으로는 한반도 상황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선의 의지로 어렵사리 마련된 8·25 합의를 가치 있게 활용, 이번 박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남·북·미 세 나라 사이에서 전향적인 선순환 관계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길은 훨씬 다양해지기 마련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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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