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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590> 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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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필봉농악보존회 단원이 농악 개인놀이 중 자반뒤집기를 선보이고 있다. 자반을 뒤집듯 몸을 공중에서 회전하고 착지하는 동작을 반복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아래 가운데 사진은 소고, 왼쪽 밑은 장구, 오른쪽 밑은 꽹과리 개인놀이 모습. [사진 임실필봉농악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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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석 기자

가을이면 풍년 들녘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향토축제가 잇따라 열립니다. 크고 작은 축제 현장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레퍼터리 중 하나가 농악입니다. 꽹과리·징·북·장구 등이 어우러진 가락은 흥겨운 몸짓을 이끌어내 신바람 나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지켜보는 관객들도 일어나 덩실덩실 함께 춤을 추기 일쑤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우리 음악, 그러면서도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인 우리 농악에 대해 알아봅니다.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

 농악은 지난해 12월 유네스코의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음악이 세계인들에게 두루 인정받는 인류의 문화자산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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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악은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이 발전시켜온 한국의 대표적인 연희다. 기원은 농사를 지은 뒤 제사를 지내거나 북을 두들기며 논 데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중국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농악의 기원에 대한 글이 나온다. 우리나라 삼한시대에 대한 기록이다. “마한에서는 5월에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 제사하고 무리를 지어 노래하고 춤추고 술마시며 밤낮을 쉬지 않는다. 그 춤은 수십 명이 함께 일어나 서로 뒤따르며 땅을 높게 낮게 굴리고 손발이 상응한다. 10월에 농사를 마쳤을 때도 이같이 되풀이한다.”

 농악의 기원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이밖에 농악에 대해서는 군사 기원설, 사찰 기원설, 광대집단 기원설 등 다양한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기원이 무엇인지 따지기를 떠나 꽹과리와 징·장고·북 등을 들고 하는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는 고려 말께 갖춰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풍물놀이와 농악은 같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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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물놀이는 농악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공식 용어로는 농악이 더 많이 쓰이고, 무형문화재로 등재할 때도 농악이라 했다. 하지만 1970~80년대 들어 농악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에 선택되고 활용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 전통 가면극 능악과 비슷하다는 데서 나온 얘기였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풍물이다. 이후 시대적 분위기를 타고 농악이 아닌 풍물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농악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널리 쓰이던 말이므로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19세기의 문헌인 황현의 ‘매천야록’이나 최덕기의 ‘갑오기사’ 등에 농악이란 말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매천야록에는 “대개 시골에서는 여름철에 농민들이 꽹과리를 치면서 논을 맸다. 이것을 농악이라고 한다”고 나와 있다.

 농악의 ‘악(樂)’은 음악만을 말하기 보다 노래·음악·춤 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다. 농악에는 가락 연주뿐 아니라 노래와 춤·제사의식·연극·놀이 등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농악은 종합예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타악기와 관악기 … 상쇠가 총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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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악은 꽹과리·징·북·장고 등의 타악기와 태평소·나발 등 관악기로 구성된다. 이같은 악기 편성은 중국 군악의 영향을 받아 고려시대를 전후해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농악에 대해 ‘군악 기원설’이 나오는 이유다.

 농악대 제일 앞에 서는 연주단은 ‘앞치배’, 그 뒤에 따라붙는 연희패는 ‘뒷치배’라 불린다. 앞치배는 영기(令旗)·농기(農旗) 같은 깃발과 태평소·꽹과리·징·장구·북으로 편성돼 연주를 담당한다. 뒷치배는 양반·각시·스님·무동 등 여러 복장을 한 잡색으로 구성돼 춤이나 연극놀이를 담당한다.

 북은 농악의 기원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기본 악기다. 원시민족이 쉽게 다룬 악기인 데다 춤추고 뛰놀 때 두들겨 흥을 돋우는 데 안성맞춤이다. 그 후 점차 다른 악기들이 결합돼 오늘날과 같은 농악대가 편성된다.

 꽹과리를 치는 쇠잡이 중 제일 앞장선 사람을 ‘상쇠’라 부른다. 농악대의 총지휘자다. 상쇠는 농악은 물론이고 놀이의 순서에도 밝아야 한다. 농악대는 벼농사를 주로 하던 전라·경상·충청 등 삼남지방에서 발전했다. 평안도나 함경도에서는 농악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농악의 형태는 다양하다. 농사를 지을 때 하던 두레농악, 공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걸립농악, 동네 주민들의 강녕을 기원하던 마을농악 등이 있다. 두레농악은 노동의 고단함을 잊고 풍년농사에 대한 소망을 노래했다. 모내기·김매기 등 농사를 지을 때 일손을 맞추고 능률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두레농악은 농기와 영기·꽹과리·북·장구 등으로 편성된다. 마을에서는 용을 그리기도 하고, 농기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등 글자를 쓰기도 한다. 논매기하러 갈 때는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대 뒤를 따르며 길굿가락을 연주한다.

 김매기 때는 농악을 치면서 농요를 부른다. 김매기가 끝나면 두레꾼들이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주인이 음식과 술을 대접한다. 이를 백중놀이·호미씻이·풋굿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신밟기는 마을농악에서 발전

 마을농악은 동네의 수호신인 제당이나 당나무 앞에서 주민들의 안녕과 평안을 비는 축원 목적이었다. 일종의 ‘굿’으로 볼 수도 있다. 농악대가 앞장서고 그 뒤에 제물을 준비한 주민들이 따른다. 당산나무 아래에서 굿을 마치면 농악을 울리면서 마을을 돈다. 이를 집돌이라 한다. 마을 제당과 우물·다리 등에서 거리굿을 한 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하나씩 돈다. 마을 사람들은 베·돈·쌀 등을 내놓는다. 이 집돌이가 확대돼 ‘마당밟기’ ‘지신밟기’라는 이름의 집안 고사굿으로 발전했다.

 걸립농악은 공동의 번영을 추구한다. 마을농악의 ‘지신밟기’에서 시작됐다는 견해가 전해진다. 하지만 지신밟기와 달리 마을회관 건립 등을 위해 돈과 쌀을 얻어낼 목적으로 지역을 돌면서 농악을 한다. 일부에서는 조선시대 불교가 쇠하면서 재원이 궁핍해지자 스님들이 무리를 지어 민가를 다니던 ‘굿중패’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지역적으로 5개 문화권 분류

 농악은 마을 단위로 놀다 보니 그 지역의 향토성이 배어 각기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다. 남부지방의 두레농악은 쇠가락(꽹과리)의 기예가 뛰어나고 장고의 기교가 두드러진다. 경상도에서는 마을농악과 지신밟기를 모태로 하는 농악이 발달하고 북의 기예가 뛰어나다.

 지역별로는 크게 웃다리(경기·충청), 영동(강원), 영남, 호남좌도, 호남우도 등 5개 농악문화권으로 나눠 설명하기도 한다. 경기농악은 다른 지방보다 징과 북의 수가 적다. 느리고 빠른 가락을 고루 쓴다. 충청농악은 대체로 경기농악과 유사하다. 충북 청원과 충남 천안·아산 등에서 성행한다.

 전라도에서는 동부 산간지대의 좌도농악, 서부 평야지대의 우도농악으로 구분한다. 호남좌도농악은 전북 진안·임실·순창과 전남 곡성·구례 등에서 접할 수 있다. 느린 가락을 맺고 푸는 기법과 빠른 가락을 힘차게 몰아가는 기법을 잘 구사한다.

 호남우도농악은 전북 익산·김제·정읍·고창과 전남 영광·장성·나주 등에서 전승되는 농악을 말한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쓰며 가락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변주해 리듬이 다채롭다. 영남농악은 타 지역보다 장단이 빠르면서 군사적 진법이나 무예 등 고난도의 몸짓이 발달해 있다.

 지역적인 다양성을 반영해 영남 진주삼천포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 웃다리 평택농악(제11-2호), 호남우도 이리농악(제11-3호), 영동 강릉농악(제11-4호), 호남좌도 임실필봉농악(제11-5호), 호남좌도 구례잔수농악(제11-6호) 등이 고루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전통 농악을 가르치는 전수관에는 학생·일반인들이 몰린다.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 있는 임실필봉농악전수관의 경우 체험·연수생이 연간 3만 명가량 방문한다. 경남 사천시에 있는 진주삼천포농악전수관에는 방학 때면 10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온다.


사물놀이는 농악이 낳은 아이

 사물놀이는 1970년대 말 민속음악회 ‘시나위’에서 타악을 맡던 김덕수 등이 연주하면서 시작된 음악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우리 국악이 외국인들에게 친근해지는 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본래 사물은 불교의 네 가지 타악기인 범종·법고·운판·목어를 일컫는 용어다. 국악에 채용된 사물놀이는 꽹과리·징·장고·북 등 네 개의 타악기로 구성된다. 농악의 장점을 모아 공연하기 쉽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사물놀이를 농악이 낳은 아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농악과 사물놀이는 같고도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연주 형태에서 나타난다. 농악은 서서 걸어다니고 뛰어다니면서 공연하지만, 사물놀이는 주로 앉아서 연주한다. 농악에는 판소리처럼 연기라 할 수 있는 발림이 있고 춤도 춘다. 하지만 사물놀이는 연기도 춤도 없다. 또 농악에는 진풀이가 있다. 마치 군사들이 전쟁하듯 진을 짰다가 푸는 것을 말하는데, 선이나 기하도형을 만들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물놀이는 인원수가 적고 실내 무대가 한정된 공간이라 진풀이가 제한적이다.

 두 음악은 본질적으로 같은 가락을 사용하면서도 구체적인 운용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농악은 시간 제한 없이 길게 연주하지만 사물놀이는 대략 한 곡당 10~15분 공연한다. 가락의 짜임새가 농악은 느리고 빠름의 형식이 유동적이며 상황에 맞도록 재구성한다. 사물놀이는 처음엔 느리게 시작해 중간 속도로 옮겨가고 점점 빨라져 마지막에는 휘몰아치는 형식을 갖는다.

도움말 : 전북도립국악원, 임실필봉농악보존회

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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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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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