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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78번 이상 노·정 회의 … 합의 실패해 의회 단독으로 법안 통과

오스트리아 공무원 노조는 2005년 연금개혁에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다. [오스트리아 공무원노조 제공]
오스트리아에서도 공무원연금 개혁이 단번에 가능했던 건 아니다. 1997년부터 2005년 까지 8년에 걸쳐 꾸준한 개혁을 이어 오면서 때론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기도 했고, 노조의 반발을 이겨내야 하는 진통도 겪었다.



오스트리아 연금개혁 과정

 97년 이전만 해도 오스트리아 공무원연금제도는 35년을 가입할 경우 최종보수를 기준으로 해 연금을 후하게 주도록 돼 있었다. 당시 공무원의 보수는 현재와 달리 퇴직에 임박할수록 상승률이 가팔라 최종보수의 80%는 상당히 높은 연금액이었다. 여기에 기대 여명 증가에 따른 연금 수급자 수도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재정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연금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점차 커졌지만 정치적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진보 정당이 공무원노조 지지 하락을 염려해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개혁이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중도 우파 국민당 당수가 총리가 되고 극우파인 자유당도 연정에 참여하면서 개혁에 동력이 생겼다. 우파 연정은 국민의 지지도를 높이고 진보 정당의 정치적 입지를 줄이려는 의도에서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제도에 대한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식의 개혁에 대해 노조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2003년엔 20만 명이 참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고, 2004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총파업이 벌어졌다. 노·정 간 회의도 수없이 이어졌고 초기엔 양측의 의견 차가 심해 협상이 결렬된 것도 여러 차례였다. 페테르 코레키(사진) 공무원노조 부위원장은 e메일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75차례 이상의 회의를 했다. 78번째 회의가 끝난 뒤에는 협상에 참여했던 실무진끼리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자축 파티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그는 “새벽 5시까지 국회에서 총리, 공무원노조 대표, 전문가가 모여 철야 회의를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협상에도 불구하고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고 최종 책임자인 총리와 노조위원장의 담판이 이뤄진 다음 의회는 노조의 반발을 무시한 채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코레키 부위원장은 “오스트리아의 경우처럼 진정한 개혁은 많은 시간을 요한다”며 “세부적인 사항을 무시한 형식적 개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2005년 개혁을 기점으로 공무원은 국가 안의 또 다른 국가처럼 특권적 존재라는 기존 인식이 불식될 수 있었다. 루돌프 하시만 연금정책국장은 “감사원도 연금 개혁 결과에 대해 재정 안전성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했다”고 전했다.



빈=황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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