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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오늘 미술관] 우울증을 '시(詩) 치료'로 이겨낸 다산 정약용

[사진 다산 영정. 김호석]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하피첩’이 경매에 나왔던 지난 14일, 다산을 흠모하는 몇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유배지를 떠돌며 멀리서 두 아들과 아내를 생각하는 애틋하면서도 강건한 다산의 마음이 진하게 담긴 ‘하피첩’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조선시대 선비 정신의 정수였다. 7억5000만원에 보물을 모셔간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관장은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명품유전(名品流轉)이라. 천 관장은 “무궁무진한 문화 콘텐트 덩어리인 ‘하피첩’을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겠다”고 즐거워했다.

다산이 늘 의연한 철인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산 전문가들은 그가 한때 우울증 환자였다고 설명한다. 조선이 낳은 최고의 실천적 지식인인 다산이 20년 가까이 유배지에 갇혀 살았다면 우울증 아니라 정신병에 걸릴 법하다. 조선시대의 유배란 현대 한국에서 정신병동에 처박히는 것보다 더했을 상황이다.

다산은 문사철(文史哲)에 형통해 천하를 굽어보던 큰 인물다웠다. 스스로 우울증을 이겨냈다. 자가 치료를 한 셈인데 그 열쇠가 시(詩)였다. 부패한 세상에 분노하고, 자신의 큰 뜻을 널리 펴지 못함에 절망한 다산은 그 들끓는 마음을 시로 달랬다.

“약은 놈 비단옷 찬란히 빛나는데/ 못난 놈은 가난을 괴로워하네 /// 커다란 강령이 이미 무너졌으니/ 만사가 막혀서 통하지 않네/ 한밤중에 책상 치고 벌떡 일어나/ 높은 하늘 우러러 길이길이 탄식하네.”

다산은 시 치료로 죽음보다 깊은 병을 이겨냈다. 얼마나 현대적인가. 조선 유학사에서 드물게 빼어난 언어 감각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받는 다산이었기에 가능한 사건이다.

이런 다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한국화가 김호석씨가 종이에 수묵으로 그린 돋보기를 쓴 다산 영정이다. 화가는 여러 자료를 뒤져 다산이 필연적으로 안경을 착용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앉은뱅이가 될 지경으로 방대한 독서와 저술과 제자 기르기에 촌음을 아낀 다산이니 당연히 시력이 나빠졌을 것이다. 아울러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다산의 개방적이고 호기심 많은 자세가 안경을 취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자 예술가, 혁명가이자 실용주의자인 다산의 복합적 얼굴이 안경 쓴 이 초상화에 깃들어 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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