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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공장 간다더니 중국 위안소로 끌고 가 60년간 못 돌아올 길 돼”

박옥선 할머니는 “60년이 지나서긴 하지만 고국에 돌아온 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내 고생도 말 못하지만 자식들 굶긴 게 제일 힘들었어. 일 갔다 오면 갸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굶고 있고…. 하도 고생스럽게 키워서 자꾸 생각나.”

 지난달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만난 박옥선(91) 할머니는 자식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는 자식 먹이고 입히려고 일을 했는데 평생 그걸 제대로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고도 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박 할머니는 열네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열일곱 살 때인 1941년 위안부로 끌려갔다. 큰오빠가 보증을 잘못 서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갔을 때다. 가족들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 할머니는 ‘바느질 공장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얘길 들었다. “한 동무가 ‘바느질 공장에서 사람을 찾는다는데 거기 가자’ 해서 갔지. 동무들이 다 가니까 나도 따라갔지.” 할머니는 빈손으로 집을 나서 그 길로 중국으로 끌려갔다. "역전에 갔는데 무서워서 ‘나는 아니 가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안 들어줘. 여자들이 다 벌벌 떨고 있고….”

 기차와 트럭을 타고 할머니가 도착한 ‘공장’은 중국 헤이룽장성의 군부대였다.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몰라 집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누가 ‘이게 공장이다’라고 하면서 발로 걷어차고….” 그렇게 할머니는 4년간 위안소에서 생활했다.

 “그때 얻은 허리 병 때문에 지금도 허리가 끊어질라카지 . 그때 조선 여자들이랑 모여서 많이 울었다. 위안소 주인한테 맞은 거 생각하면 지금도 움찔하고….”

아들이 생일 선물로 준 반지를 끼고 있는 할머니의 손. [김성룡 기자]
  45년 해방으로 위안부의 굴레가 벗겨졌지만 박 할머니는 헤이룽장성을 벗어나질 못했다. "해방되자 일본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소련 군대가 막 내려와. 동무들이랑 피란한다고 차에 탔는데 앞차에 포탄이 떨어지니까니 사람이 다 죽었어. 내가 눈앞이 아찔해서 얼른 차에서 내려 막 뛰었어. 그 길로 헤어져 동무들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지.”

 폭격을 피해 산속을 헤매던 박 할머니는 인근 마을에 정착했다. 이웃의 노부부가 “지금 조선에 가면 살기 어려우니 이곳에서 살라”고 권유하면서다. 헤이룽장성 무링, 이곳이 할머니의 제2의 고향이 됐다. 그래서 해방 후 국적도 얻지 못했다.

  이듬해 상처한 남자와 결혼한 할머니는 한동안 그럭저럭 살며 세 자녀도 낳았다. 하지만 불행은 쉽게 비켜 가지 않았다.

 "내 얼마 잘 지내다가 우리 영감이 눈이 아니 보인다고 해 수술을 몇 번 하더니 상사 났어(죽었어). 그래 노니까 먹을 게 없어서 내가 대대(마을협동농장)에서 일했는데 3년 만에 큰아들이 아프기 시작해 10년을 앓다가 죽었어. 아파 노니까 병원비도 없고 빚이 늘고…. 둘째 아들이 죽을 고생을 했는데도 안 되는 기라.”

 고향을 떠난 지 60년 만인 2001년 할머니는 가족을 찾기로 했다. “둘째 아들이 ‘왜 엄마는 가족을 안 찾느냐’고 했어. 그래서 내가 마음 아파하다가 방송국에 내가 아니 말하고 살았는 (위안부로서) 고통받은 걸 말하고 가족 좀 찾아달라고 했지.”

 한국으로 돌아와 밀양에서 살고 있던 동생을 만났다. 할머니가 사망한 것으로 돼 있던 호적을 되살리고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그때부터 14년째 나눔의 집에서 살고 있다. 할머니에게 제일 힘든 게 뭔지를 물었다.

 “중국에 있는 자식들이 멀어서 못 오니까 안타깝고 보고 싶고 그렇지. 중국에 끌려간 거는 내가 복이 없어서 그런 건데, 자식들을 배곯게 한 거는 내 잘못이니까 그런 생각하면 자꾸 미안하고….”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의 손에 금가락지 한 쌍이 끼워져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이 내 생일날 선물한 건데 애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본다”고 자랑했다. 자식들 얘기를 하며 울고 웃던 할머니의 등 뒤로 얼핏 활짝 웃는 모습의 손자들 사진이 보였다.

광주=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 중앙일보가 창립 50주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획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13인의 릴레이 인터뷰가 박옥선 할머니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할머니들은 자기 생의 끝자락을 버티게 해준 소중한 대상을 하나씩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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