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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 안 써도 된다는 산악 오토바이, 책임은 안 집니다

ATV는 인기 모험스포츠로 떠오르고 있지만 헬멧 미착용 등 안전 불감증은 심각하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평창=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가 ATV를 타다 뒤집히는 사고가 났지만 업체 직원은 “ 우린 책임이 없다”고 했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평창=송지훈 기자]
“자전거 탈 줄 아시죠? 그럼 다 할 수 있어요. 남자들은 헬멧 쓰는 분 거의 없어요.”

 최근 성업 중인 ATV(all-terrain vehicle·4륜 오토바이) 대여업체의 운영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15일 강원도 평창의 한 체험장을 찾았다. ATV를 대여해주는 업체 직원은 뭐든 대충대충 했다. “운전면허증을 숙소에 두고 왔다”고 하자 “어차피 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의무사항인 운행 전 안전교육은 시동 거는 법과 핸들 조작법 설명으로 대체했다. 헬멧·무릎보호대 등 안전 장구를 비치하고도 착용을 권유하지 않았다. 업체는 ‘운행 중 발생한 안전사고는 운전자 본인 책임’이라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이 직원은 “서약서를 받기 시작한 뒤 사고가 여러 건 났지만 우리가 물어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험한 산길을 한 시간 가까이 달리던 중 불상사가 발생했다. 급경사 언덕을 오르는 과정에서 ATV 차량이 사람 머리보다 큰 돌을 밟은 뒤 중심을 잃고 뒤집혔다. 인솔자는 “출발지에서 대기하겠다”며 자리를 뜬 상태였다. 200㎏에 육박하는 차량이 몸을 덮쳐 큰 사고가 날 뻔 했다. 죽을 힘을 다해 팔로 버텨 대형사고는 면했지만 기자는 얼굴을 비롯해 온 몸에 찰과상을 입었다. 뒤늦게 헐레벌떡 나타난 인솔자는 “나도 ATV를 타다 전복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업체 사장은 “우리는 차량을 대여한 것 뿐이다. 운전 부주의로 사고가 났으니 우린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모험을 즐기는 체험형 스포츠는 고속 성장 중이다. ATV를 비롯해 ‘짚라인’으로 알려진 하강시설, 번지점프, 래프팅, 패러글라이딩 등 특수장비를 활용하는 종목 이용자가 연간 4000만명에 이른다. 정식 등록업체만 1006개(2014년 기준)나 된다. 상당수는 안전 시스템 없이 주먹구구식 영업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충북 보은에서 하강시설을 이용하던 어린이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아르바이트생 안전요원이 탑승자의 몸에 안전벨트 연결고리를 채우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실태조사 결과 모험스포츠 업계의 안전 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설문 참여 업체 중 ‘우리 업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번지점프와 패러글라이딩이 25%, ATV 24%, 하강시설 21.4%에 달했다. 안전 교육을 생략하거나 무자격 안전 요원을 배치하는 업체가 많았다. 패러글라이딩 업체 중 안전 관리 매뉴얼을 제대로 갖춘 곳은 전무했다. 안전점검기록부를 꾸준히 작성하는 래프팅 업체는 11.1%에 그쳤다. 상당수 업체가 안전 시스템을 개선하는 대신 서약서를 받는 등의 방식으로 이용자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육상 레저 스포츠 등록업체 중 75%가 영세하다. 연 매출 5000만원을 넘는 업체는 47%에 불과하다. 과도한 경쟁 탓에 돈벌이가 되지 않다보니 안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법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것도 주먹구구식 운영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지난해 8월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이 ‘레저 스포츠 진흥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한 의원은 “안전사고가 발생해야만 법률과 제도에 관심을 갖는 게 우리 사회”라면서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관련 업종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모험스포츠 시설을 디즈니랜드 등 테마 파크의 놀이 기구로 분류해 까다로운 운영 기준을 적용한다. 11개 주는 업체가 안전 기준을 제대로 지키는지를 보험회사 혹은 제3의 검사 기관을 통해 체크한다. 스위스는 ‘번지점프 줄은 300회 당 한 번씩 교체(우리나라는 800회)한다’는 등의 까다로운 규정을 갖췄다. 한선교 의원은 “우리나라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체험형 스포츠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를 지도록 하루 빨리 규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평창=송지훈·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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