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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좌파 야당 대표를 위한 변명

채인택
논설위원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를 직업으로 삼을 때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정치를 위해 사는 것과 정치에 의존해 사는 것이 그것”이라고 했다. 정치를 돈 버는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과 신념을 위한 봉사와 희생의 자리로 여기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12일 59.5%의 높은 지지율로 영국 노동당의 신임 대표에 선임된 제러미 코빈(66)은 전형적인 후자의 경우다. 그는 자신의 삶과 정치적 신념을 일체화했다.

 한번 살펴보자. 우선 코빈은 채식주의자다. 20세 때 돼지농장에서 잠시 일하면서 끔찍한 사육환경을 목격하자 육류를 끊은 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믿는다는 것은 곧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지키고 있다. 친환경 생태주의자이기도 하다. 환경오염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겠다며 지역구에서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까지 1시간 이상 자전거를 몰아 등원한다. 자동차는 아예 없다. 국회의원이 경차나 SUV·승합차 등을 타고 다녀도 뉴스가 되는 한국 현실에서 보면 놀랍다.

 하원의원인데도 지극히 소박한 삶을 산다. 한 인터뷰에서 “고백할 게 있는데, 사실은 사치스럽게도 자전거가 두 대나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영국 하원의원 650명 중 가장 적은 활동 경비를 사용했다. 돈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치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코빈은 “나는 돈이 별로 들지 않는 삶을 살고 있어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돈으로는 절대 유혹할 수 없는 정치인이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다 걸리면 “정치자금이 필요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돈 정치인’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의정활동은 물론 선거도 저비용으로 치렀는데도 당선에 문제가 없었다. 10년 가까이 구의원으로 활동한 뒤 1983년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됐는데 지금까지 내리 7선이다. 물론 그의 지역구인 런던 북부 이즐링턴 지역은 ‘샴페인 좌파’의 아성으로 유명하다. 일부 저소득층도 있지만, 고학력 중산층 좌파가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한다. 영국의 중산층 좌파는 정부가 세금을 제대로 쓰는지에 예민하다. 코빈의 뒤에는 저비용 정치를 지지해준 든든한 유권자들이 있었다.

 가장 극적인 것은 ‘세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으로 요약되는 그의 결혼생활이다. 그의 첫 부인은 정치적 동지였다. 대학강사였는데 남편을 ‘정치적 솔 메이트’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코빈이 정치에만 몰두하고 가정은 등한시하면서 갈라섰다.

 두 번째 부인은 군사독재를 피해 망명한 칠레 좌파 출신이었다. 12년간 살면서 세 아들을 뒀다. 그런데 첫아들의 진학을 둘러싸고 부부 사이에 의견이 갈라졌다. 영국에선 아이가 11세 때 학교를 옮길 수 있는데, 부인은 진학률이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진학률이 높은) 사립학교 폐지와 평준화를 주장해온 코빈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어긋난다며 반대하다 이혼까지 했다. 부인은 “남편의 직업을 위해 아이의 장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코빈은 올해 초 세 번째 부인과 결혼했는데, 멕시코 출신으로 진보적인 공정무역(커피·초콜릿 등 개발도상국의 상품을 수입하면서 가난한 농부나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무역)을 하는 사업가다.

자녀의 조기 유학을 특권층의 전유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다 자신도 그랬던 것이 밝혀지자 머쓱해진 인물,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자녀는 외고에 보낸 인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며 신념과 개인 가정사의 불일치가 당연한 듯 이야기하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코빈도 대기업 국유화, 무상교육 등 비용이나 현실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극좌 정책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소한 직업 정치인으로서 그가 보여준 삶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마침 국회 윤리특위는 15일 추문에 연루된 심학봉 의원의 제명을 가결했다. 3선 의원으로 원내대표와 사무총장을 지낸 박기춘 의원은 3억5800만원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돼 있다. 그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현재 위원장 없이 국정감사를 치르고 있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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