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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겸손한’ 제러미 코빈

고정애
런던특파원
정치인 A는 이런 사람이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다. 매우 검소했다. 주변 인물들과 담소하는 걸 즐겼다. 비서들은 친절하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기억력과 직관력이 뛰어났고 사람 보는 눈도 있었다. 그를 욕하던 사람도 그와 마주 앉아 대화한 후엔 예찬론자가 되곤 했다.”

 B는 이랬다.

 “이상주의적 성향과 냉소적인 교활함이 동시에 있었다. 이 때문에 인간 자체를 경멸한다는 느낌을 주곤 했다. 주요 결정을 홀로 했다. 측근들을 그저 수족으로만 부렸다.”

 둘 중 누굴 지도자로 뽑겠는가. A에게 끌릴 테지만 출제 의도가 A일 리 없다고 생각할 게다. 맞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듯 인간적 선함이 지도자로서의 업적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칫 선한 이가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곤 한다. 기존 정치인과 다른 모습을 새로움으로 여기고 새로움을 핵심 능력이라고 판단한다. 그러곤 매료된다.

 최근 영국 노동당수가 된 제러미 코빈을 보며 든 생각이다. 괜찮은 사람일 게다. 현장을 잊지 않았고 늘 수수하고 겸손했다. “대마초를 피우지 않은 유일한 좌파일 것”이란 평가도 있다.

 하지만 기이한 건 33년 의원을 했다는데 목소리뿐이다. 현실화할 수 없는 정견(政見)들이어서다. 철도를 국유화하고 나토 탈퇴는 물론 비핵화까지 주장하며 군주제 폐지론자이기도 하다. 그의 정책적 일관성과 정치인으로서의 개성은 실행 불가능성과 맞닿아 있다. 의원 배지를 달았으되 사회운동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개’ 의원이면 그래도 된다. 100년 수권 정당의 지도자는 다르다. 2020년 총선에서 집권이 목표라면 무수한 현실적 판단 끝에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내놓아야 한다. 속으론 공화국이 돼야 한다고 믿어도 공식석상에선 “여왕 폐하 만세”(God Save the Queen·國歌)를 외쳐야 한다.

 그러므로 장차 코빈은 어느 밤 신념으로부터 멀어진 자신을 발견하곤 뒤척이게 될 게다. 옳고 그름이 명확했던, 현장만 찾으면 됐던 평의원 시절도 그리울 테고. 그에게서 영웅을 봤던 그래서 당수로 밀었던 지지자들은 그사이 다른 해결자를 갈구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좌파의 정치 토양은 헛된 기대와 낙담에 최적화됐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B는 콘라트 아데나워며 A는 코빈이 아니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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