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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누가 2030을 슬프게, 술 푸게 하는가

과거엔 청춘에게 술이 낭만이었습니다.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시대와 사랑을 논했습니다.



한 잔엔 눈물, 한 잔엔 꿈

요즘 청춘들은 술 한잔에 꿈 대신 고민을 퍼 나릅니다. 무엇이 이들을 ‘술 푸게’ 만들었을까요. 4일 밤 ‘불금’에 서울 신촌의 각기 다른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청춘 8명을 만났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학생 “꿈을 포기할까요” 



소주 한 병도 사치인 대학생
“하루 24시간을 쪼개 살아도 겁이 나요.”



 자정이 가까운 시각, 신촌의 한 호프집. 아직 앳된 얼굴의 여대생이 소주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켠다. 옆에 앉은 동갑내기 친구가 “야, 천천히 마셔”라며 잔을 뺏으려 해도 무용지물이다.



 대학생 노미래(가명·21·여)씨가 고향인 울산을 떠나 대학을 다니며 혼자 산 지도 어느덧 2년차. 서울은 그에게 ‘꿈의 도시’였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막연히 서울에서 막을 올리는 수많은 연극 무대들을 가슴에 품었다.



 상경은 시작부터 ‘포기’를 요구했다. 노씨는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께 ‘연극영화과에 가야 하니 월세를 달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고 했다. ‘전공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면서 연기 공부도 병행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소비자주거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1학년 때까진 방학 때 극단 활동을 하며 연기를 배웠다. “학교 다니면서 배우잖아요. ‘노력만 한다면 역경을 딛고 성공할 수 있다’고.” 노씨는 술잔을 내려놓고 눈물을 글썽였다.



 현실은 24시간을 쪼개 학비를 마련하기에도 녹록지 않았다. 노씨는 “한 학기에 드는 등록금만 400만원, 여태까지 쌓인 대출금만 1000만원 가까이 된다”며 “배우를 해서는 대출금도 다 못 갚겠다는 생각이 들어 취업을 준비해야겠다는 맘을 먹었다”고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급생들은 이미 영어 자격증을 손에 쥐고 교내 활동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기업 인턴이라도 하려면 토익과 토익 스피킹, 컴퓨터 자격증은 필수인데 제 손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두 달 내내 각종 자격증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하루에 여섯 시간을 채 못 잤어요.”



 노씨는 이 호프집 단골이다. “김치찌개가 유독 맛있다”는 게 이유다. “아르바이트 마치고 와서 저녁 겸 친구와 둘이 소주와 김치찌개를 시켜먹는 게 유일한 낙이에요. 다른 데는 좀 비싸서….” 소주 한 병을 채 비우기도 전에 둘은 양푼에 담긴 김치찌개를 싹 비웠다. 값은 1만원. 노씨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두 시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취준생에게 연애는 마이너스일 뿐 



가볍게 맥주 딱 한 잔 취준생
“요새 ‘취준생’한테 남자친구, 연애 그런 거 없어요. 왜냐고요?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요.”



 청춘의 보석이라는 ‘연애’도 취준생에겐 사치였다. 오후 9시, ‘가볍게 한 잔 하려는’ 여자 손님들이 많은 신촌의 한 스몰비어집에서 취준생 고모(24·여)씨와 최모(25·여)씨를 만났다. 이들은 “진짜 취업을 잘 하고 싶으면 연애는 포기해야 한다는 게 요즘 20대 중반 여대생들의 공통적인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우리가 너무 일찍 철이 든 거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엇이 걸림돌일까. 의외로 돈 얘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 고씨는 예전 남자친구를 만날 때 번갈아 가며 데이트 비용을 냈다고 했다. 서로 빠듯한 처지에 ‘남자가 밥을 사면 여자가 커피를 산다’는 건 다 옛말이라는 것이다. “예전 남자친구를 만날 때였어요. 어느 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서 제가 “오늘은 네가 낼 차례야”라고 했어요. 그때 남자친구가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뭐랄까 정이 하나도 없었어요. 저도 갑자기 이게 연애인지, 우리가 사랑을 하는 건지 헷갈리더라고요.” 둘은 두 달 전 결국 헤어졌다고 한다.



 ‘연애할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연애에 무슨 자격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최씨는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유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애가 서로에게 ‘플러스’가 돼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마이너스다. 막상 취업에 실패하면 남자친구에게 고스란히 ‘네 탓이야!’라고 할까 봐 두렵다”고 했다. 그는 “(취업에 실패하면) 여태껏 저만 바라보고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께도 너무 죄송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금(金)인 취준생들은 불금에도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두 시간을 넘지 않았다. 이들은 “요즘 기업 공채 시즌이라 바쁘다”며 맥주 한 잔을 비운 후 자리를 떴다.





사회초년생, 취업보다 어려운 결혼  



막걸리 데이트, 사회초년생 커플
새벽 1시, 신촌의 한 빈대떡집에선 사귄 지 3년된 동갑내기 커플의 나지막한 설전이 30분째 이어지고 있었다. 주인공은 대학생 때 연애를 시작해 현재 각각 2년차 직장인인 남하직(가명·26)씨와 여설운(가명·26·여)씨. 테이블엔 서운함과 함께 막걸리·소주·복분자 등 각종 술병들이 쌓여 갔다. 기자에게 털어놓은 이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여) 왜 싸우냐고요? 요새 결혼 얘기 하다가 자꾸 싸워요. 저희 사귄 지 오래됐거든요. 전 준비를 시작해 2년 뒤 식을 올리고 싶은데, 남자친구는 30대 중반에 하고 싶대요.



 -(남) 보통 남자들이 다 비슷해요. 20대 때 결혼하는 사람이 몇 안 되는 건 사실이잖아요.



 -(여) 그건 취업을 늦게 했을 때 얘기죠. 남자친구도, 저도 일한 지 2년이 넘었는데….



 -(남) 전 좀 상황이 달라요. 제가 대인관계가 너무 힘들어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재취업한 지 1년이 약간 안 됐어요. 아직 회사에서 자리도 잡아야 하고…. 모은 돈도 부족해요. 아 이런 얘기를 꼭 해야 하나….



 이 말에 옆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이들의 고등학교 선배 김주훈(28)씨도 “나도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결혼은커녕 연애도 망설여진다”고 거들었다.



 -(여) 시작은 작게라도 할 수 있잖아요. 이럴 때마다 ‘날 꼭 붙잡을 만큼 좋아하진 않는구나’ 싶어 너무 힘들어요.



 -(남) 그건 아니야. 저희가 이 문제로 다툰 지 좀 됐는데, 저런 생각이었으면 벌써 그만뒀죠. 제 여자친구만 한 사람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요. 그냥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거예요.



 -(여) 불안하다는 말, 이해 못하는 거 아니에요. 요새 결혼하는 데 돈이 1억원도 넘게 든다고 하잖아요. 막상 당장 준비하자고 하면 저도 겁먹을지 모르죠. 그래도 이 불안한 세상에서 내 편인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건데….



 -(남)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저희가 결혼하지도, 헤어지지도 못하고 끝나지 않는 다툼을 계속 반복하는 거겠죠?



30대 직장인 “차라리 화성으로 가 버릴까”

위스키로 독하게 취할까, 직장인. 지난 4일 본지 청춘리포트팀 기자들이 서울 신촌의 술집 네 곳에서 2030세대를 만났다. 사진은 기자와 2030들이 건배하는 모습.
밤 10시, 신촌의 한 위스키·칵테일 바에서 여행 도중 만나 친해졌다는 박모(28·공무원)씨, 윤모(34·공무원)씨, 장모(33·여행가이드)씨를 만났다. 모두 미혼인 직장인 남자 셋은 위스키를 두 병째 마시며 “어떻게 하면 화성에 갈 수 있을까”를 제법 진지하게 논하고 있었다. ‘여자 얘기도 아니고 왜 그런 공상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왜긴 왜야, 직장 다니며 사는 게 힘드니까 그렇지!”



 “남자는 꿈을 잃으면 죽는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30대 직장인 남성은 죽기 일보 직전이거든요. 꿈꾸는 20대를 살다가 이제 ‘현실’ ‘책임’ 이런 것들을 목전에 두고 있죠. 어릴 땐 취업만 하면 세상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죠. 막상 직장에 다니면 기가 탈탈 털린다고 할까…. ‘이게 아니다’ 싶은 경우도 많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란 고민을 하게 되죠. ‘한국을 떠날까’ 하는 생각도 안 해 본 건 아니고.”(장)



 “20대 때는 그래도 선택은 내 몫이거든요.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 이제 선택을 사회로부터 강요당하는 입장이에요. 직장에선 상사가 괴롭히지. 또 사회에선 ‘결혼을 해라’ ‘집을 사라’ 끝이 없죠. 부모님 세대는 ‘고생하면 나아진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우리 세대는 그게 아니거든.”(윤)



 “결혼한 형들 보면 고민을 떠안고 살아요. 육아, 재테크, 아파트. 결혼 전엔 취미생활도 하더니 그런 건 다 죽었어. 저렇게 살기 싫단 생각에 한숨이 푹푹 나와요.”(박)



 “그게 남자가 불쌍하다는 거야.”(장)



 “요샌 결혼한 30대들도 재테크 안 하고 패션·액세서리 얘기 많이 해요. ‘작은 사치’가 트렌드예요. 어차피 아파트 사도 빚이라고 하잖아. 만족감을 주는 소소한 행복을 찾겠다는 거죠.”(윤)



“결혼해도 마찬가지야. 가족끼리 소소한 행복 찾으면 되죠. 자식들 학원 하나 더 보내줘도 나중에 고마운 거 하나 몰라요. 우리처럼! 하하. 재테크를 통장으로 하지 말고 머리랑 가슴에다 하는 건 어떨까요? 부부 생활 다 망가지기 전에 와이프랑 남미로 여행도 한번 가고. 아이들이랑 농사도 지어보고.”(장)



 “세상아, 듣고 있냐? 우린 쓸려가기 싫고, 매여 있기 싫다고! 아직 나만의 꿈을 찾고 싶다고!”(장·윤·박)



조혜경·박병현 기자, 이지현·정현웅 인턴기자 wisel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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