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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아이를 키울 엄마의 권리

양선희
논설위원
‘모든 엄마는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다.’ 의무가 아니라 권리다. 이 명제는 미국인 안과의사 리처드 보아스 박사가 우리 사회에 던졌다. 지난주 대구미혼모가족협회가 서울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열었던 후원 행사에서도 이 말은 슬로건처럼 쓰였다. 이 단체는 서울 밖에선 유일하게 아이를 키우는 양육 미혼모들이 서로 돕는 단체인데, 행사 규모는 단체 관계자와 봉사자가 대부분이었을 만큼 조촐했다. 별 연고 없이 순수 후원을 위해 찾은 이는 별로 없어 보였다. 몇몇 매체가 꽤 큼직하게 행사 예고 보도를 했었는데도 그랬다. 어쩌면 양육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 크기가 그 정도인지도 모른다.



 ‘미혼모의 자녀는 입양시킨다.’ 이는 오래된 ‘한국인의 상식’이다. 경제 규모로 세계 10위권이 돼서도 최근까지 연간 20만 명 규모의 아이들을 해외 입양시키며 ‘아이 수출대국’의 자리를 지켰던 미스터리는 이런 상식에 기인했다. 조금 진보한 것이 해외 입양보다 국내 입양을 늘리자는 거였다. 이를 위해 입양의 날(5월 11일)을 제정했고, 양육 미혼모보다 입양 가족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법도 시행했다. 미혼모에 대한 차별의식이 확고한 우리사회에서 입양이 미혼모 자녀를 위한 최선이라는 믿음은 강고하다.



 “왜 한국 같은 부자 나라에서 미혼모는 무능력하고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비난받는지 궁금하다.” 한국인의 상식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 건 미국인 보아스 박사였다. 그는 한국 여자아이를 입양해 기른 후 왜 딸이 입양돼야 했는지 뒤늦게 궁금해져 한국을 찾았다가 출산도 하기 전에 입양을 결정하는 많은 미혼모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에 2007년 그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한국에 ‘미혼모지원네트워크’를 설립했다. 입양이 딸과 그 친모에게 최선이 아니었다는 각성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우리 후원·봉사자의 95%는 미국인이다.”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이렇게 전했다. 협회의 좁은 사무실엔 온통 미국인 봉사자들로 북적이고, 각종 물품이 미국에서 직배송된단다. 이렇게 된 데엔 사연이 있다. 3년 전 입양특례법 시행 후 입양기관들의 미혼모 출산 시설이 철수하면서 대구에 대체 시설이 없어 미혼 임신부들이 노숙을 하는 처지로 내몰렸단다. 이에 올여름 김 대표가 빨리 시설을 마련해 달라며 시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국내에선 호응이 없었다.



 그러다 이 광경을 대구에 있던 입양인 출신 미국인들이 페이스북에 올리고 퍼나르기 시작했다. 즉각 전국 각지에 와 있던 입양인들이 자기 집을 비운 후 미혼모 쉼터로 쓰라며 열쇠를 보내고, 미국 매체에 보도되면서 미국인들의 후원이 시작됐단다. 입양인들끼리 모금을 해 협회에서 게시한 필요 물품들을 마련해 트럭으로 실어다 주고, 국내에 있는 미국인과 미국 현지인들도 물품 기부 및 봉사에 가세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게 해줘 감사하다.”



 김 대표는 개인의 금전 기부는 받지 않는다. 그는 ‘돈 주는 복지는 독’이라고 일갈한다. 미혼모는 스스로 돈을 벌어 자립해야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데 금전 지원은 자립의지를 약하게 한다는 거다. “엄마가 미혼모라고 부끄러워 하는 아이는 없어요. 의존적이고 자립하지 못할 때 부끄러워합니다.”



 미혼모에게 꼭 필요한 지원은 이런 거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육체적·정신적으로 돌봐 주는 것, 양육 미혼모가 차별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미혼모를 정신적으로 돌봐 주는 멘토 봉사자가 늘었으면 하는 건 희망사항이다. 행사장에서 만난 미혼모와 아이들은 밝았다. 엄마는 아이와, 아이는 엄마와 있어야 한다. 당연한 명제였는데, 우리 사회는 미혼모와 자녀들은 예외로 쳤다. 그리하여 2015년 대한민국의 엄마와 아이들을 아직도 미국인들이 돕는다. 미혼모에 대한 한국인의 상식은 비겁하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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