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배심원 평결, 재판부 판단과 일치율 93% ‘A학점’







지난해 8월 말 술에 취한 이모(40)씨는 집에서 배와 등을 흉기에 찔려 숨졌다. 아버지 이모(72)씨가 아들 살해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아버지 이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이씨는 같은 해 11월 중순 울산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살인죄의 법정 최하형은 징역 5년이다. 이례적인 결과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7명의 배심원들을 향해 “아버지로서 아들의 미흡한 행동을 포용하지 못하고 생명을 앗아간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변호인 측은 “사건 당일 만취해 자해 소동을 벌이던 아들로부터 흉기를 빼앗아 실랑이를 하던 중 순간 화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렀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또 ▶숨진 아들이 40세가 되도록 별다른 직업 없이 부모에 얹혀 살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술에 취하면 욕설을 일삼고 칼로 자해하거나 가족을 위협하는 등 20년 가까이 아들로 인해 고통받아 왔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이씨는 재판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잘못했다”는 말만 되뇌었다. 배심원들의 마음은 아버지 쪽으로 움직였다.

 배심원 7명 중 2명만이 징역 4년을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반면, 나머지 5명은 집행유예를 선택했다. 재판부는 배심원 다수의 평결을 받아들여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를 사회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11일 “사법부가 살인죄의 형량을 강화하는 추세지만 친족 살인은 ‘참작 동기 살인’으로 분류해 감경을 고려하는 편”이라며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표출된 일반인의 법 감정을 재판부가 적극 수용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이 올해로 시행 8년째를 맞았다. 2008년 1월 시행 당시 모토는 ‘법원 재판에 건전한 국민의 상식을 반영하고 사법에 대한 신뢰를 향상시킨다’는 것이었다.

 도입 후 올해 6월까지 7년6개월간 국민참여재판 대상이 되는 전체 사건 가운데 4.1%에 해당하는 3796건이 접수됐고 이 중 1556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배제하거나 피고인이 마음을 바꿔 철회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1556건의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 간 일치율은 92.8%(1446건)였다. 배심원 평결은 재판부에 권고적 효력만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일치율은 배심원 평결에 대한 신뢰가 높았음을 보여준다. 배심원 양형 의견과 선고 형량의 차이가 1년 이내로 비슷했던 재판도 89.3%에 달했다. 성적으로 매기면 ‘A학점’인 셈이다.

 지난달 여성으로는 처음 강간죄로 기소된 전모(45)씨 역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9명의 만장일치 무죄 평결에 이어 재판부가 배심원 평결을 그대로 받아들인 대표적 사례다. 이 사건 재판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 이동근 부장판사는 “전씨의 진술 번복을 유죄 근거로 삼는 검찰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배심원들이 ‘피고인도 자기의 유불리에 따라 진술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거짓말은 곧 결정적인 유죄 근거로 받아들여지는 법조계 풍토 속에서 배심원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배심원들은 전씨 혈흔에서 수면제 성분이 나온 점 등 객관적인 증거에 더 주목했다고 한다.

 항소심에 올라가서도 국민참여재판 파기율(2008~2014년)은 27.0%에 그쳤다. 같은 기간 각급 고등법원의 원심 합의사건 파기율은 40.8%. 10건 중 4건이 2심에서 결과가 뒤바뀌는 데 비해 국민참여재판은 2~3건 정도만 결과가 달려졌다는 얘기다.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해 본 판사들은 “현 시대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다”고 입을 모은다. 재경 지역의 한 판사는 “법조문 자구에 매여 사건을 판단한 것이 아닌가 돌아보는 계기가 될 때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3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가 선고된 ‘정당방위 사건’도 정당방위의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 조명을 받았다. 사건은 이랬다. 아내가 시어머니를 한쪽 팔로 부축하고 집을 나서려고 할 때 술에 취한 남편이 뒤에서 아내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아내는 다른 팔로 남편을 뿌리친 뒤 돌아서서 발로 남편의 배를 찼다. 남편은 뒤로 넘어져 이튿날 병원에서 뇌부종으로 숨졌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은 “정당방위 판단의 핵심인 사회통념상 상당성 여부가 일반의 보편적 상식에 입각한다고 볼 때 배심원 7명 중 4명인 다수 의견이 그 상당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폭행치상죄로 기소된 아내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은 팔로 남편을 뿌리친 이후에 다시 발로 배를 찬 행위는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봤다. 원심을 깨고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같은 법원에서 지난해 말 선고된 ‘몰래카메라 촬영 사건’은 1심 국민참여재판 무죄 평결을 2심도 정당하다고 받아들인 사례다. 피고인은 40대 남성. 지하철에서 허벅지가 거의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내려다보는 각도로 찍은 혐의(카메라 등 이용 촬영)로 기소됐다. 배심원 다수 의견은 “성적 수치심을 야기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거였다.

 한연규 국선전담변호사는 “몰카를 이용한 성폭력 범죄가 늘면서 근래 들어 성적 수치심을 넓게 해석해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몰카 사건의 경우 일반의 법 감정을 반영해 재판부가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법원의 배심원단 평결 수용률이 높아지면서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부터 검사와 변호인 간의 두뇌싸움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각기 유리한 후보자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불리한 후보자를 걸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10명의 범죄자를 풀어주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처벌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 1명의 억울한 사람이 나오더라도 10명의 범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보느냐.”

 누구든 배심원 후보로 선정돼 법원에 가게 되면 받게 될 질문이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후자를 답한 배심원 후보자를 가급적 배제하려고 한다. 검찰 측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폭행 또는 살인사건을 다룬다면 “가족이나 지인 가운데 폭행 혹은 살인사건 가해자나 피해자가 있는가” “피해자는 거짓보다 진실을 말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양측은 갖가지 질문을 통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는 배심원 후보자에 대한 기피 신청을 재판부에 제출한다. 김형국 국선전담변호사는 “배심원 구성이 어느 일방에게 유리해질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15만6636명이 배심원 후보자 선정 통지를 받았고, 이 중 4만3526명(27.8%)이 출석했다. 최종적으로 1만1669명이 배심원·예비배심원으로 선정돼 재판에 참여했다. 여성·40대·회사원 비율이 약간 높다(법원행정처 ‘2008~2014년 국민참여재판 성과 분석’ 자료).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7.8%)은 전국 법원의 형사합의사건 1심 무죄율(4.0%)을 매년 웃돈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을 ‘감성재판’ ‘여론재판’으로 보는 시각도 법조계에 존재한다. 이에 대해 한 부장판사는 “배심원들의 판단능력을 폄하하는 법조인들의 우월적 시각이 깔린 비판에 불과하다”며 “배심원을 두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유·무죄 입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들을 겸허하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S BOX] 조희연 교육감 담당 변호사 “1심 유죄는 강남 배심원 탓? 말도 안 돼”

“강남지역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죄 판단을 했다.”

 조희연(59)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4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7명 배심원 만장일치로 당선무효형(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자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조 교육감은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상대 후보인 고승덕 변호사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지방교육자치법 위반)로 기소됐다.

 현행법상 배심원 후보는 만 20세 이상 주민 중 무작위로 추출된다. 조 교육감 참여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의 관할 구역에 강남·서초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이런 소문은 설득력 있게 퍼졌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에서 조 교육감을 대리한 이용구(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는 “당시 여러 구의 주민이 골고루 배심원으로 선정됐다”며 “강남 배심원 얘기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 변호사는 “이틀째 증인신문에서 우리 측이 (검찰 측의) 배심원 설득에 밀린 게 패착이었다”고 말했다. 하루 안에 끝나는 참여재판이 90% 이상인 가운데 조 교육감 재판은 나흘간 진행됐다. 마지막 날은 재판 개시부터 선고까지 12시간이 걸리는 등 공방이 치열했다.

 역대 가장 오래 이어진 국민참여재판은 2011년 11월 29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진행된 살인사건 재판이었다. 재판 개시부터 배심원 평의까지 25시간이 걸렸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