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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일 복잡하게 풀어볼까 … 커피 한 잔 따르는 데 17단계

‘버츠 교수와 자동 냅킨’. [사진 루브 골드버그]
한양대 기계공학부에 다니는 장재혁(26)씨는 대입 전공을 선택할 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건축이나 토목을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전공을 기계공학으로 선택했다. 그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준 건 ‘골드버그 장치’였다. 장씨는 “고교 시절 골드버그 장치를 접하면서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됐고, 내가 기계에 적성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요즘 영재교육이나 창의교육 현장에선 골드버그 장치가 빠지지 않는다.

 골드버그 장치는 미국의 만화가 루번 개럿 루시우스 골드버그(1883~1970)가 1910~20년대 그렸던 ‘루브(루번의 애칭) 골드버그의 발명품’이란 만화에서 비롯됐다. 그는 정치 풍자만화로 194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아주 복잡한 단계를 거쳐 아주 간단한 일을 하는 과정 또는 장치를 뜻한다. 그의 만화 ‘버츠 교수와 자동 냅킨’(1915년)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그림). 버츠 교수가 스푼을 입에 가져가면(A) 줄이 당겨져(B) 국자를 휙 잡아당긴다(C). 그러면 국자 안에 담긴 크래커가 던져진다(D). 앵무새(E)가 크래커를 먹으려 날아오르면(F) 균형이 무너져(G) 씨앗이 양동이에 쏟아진다(H). 무거워진 양동이가 줄을 당겨(I) 라이터를 켠 뒤(J) 폭죽을 발사해(K) 낫으로(L) 줄을 끊는다(M). 냅킨이 달린 시계추가 움직여 버츠 교수의 입을 닦게 만든다. 그냥 손으로 냅킨을 집어 입을 닦으면 될 것을 버츠 교수는 동작이 10단계가 넘는 복잡한 장치를 사용한다. 한마디로 ‘최소 노력에 최대 효과’가 아니라 ‘최대 노력에 최소 효과’다.

골드버그 장치가 요즘 교육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가능성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17단계를 거쳐 커피를 따르는 ‘루브 골드버그 커피머신’. [사진 디나 벨렌코]▷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골드버그는 모든 걸 기계에 맡기려는 세태를 풍자하려고 했다. 그의 만화가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골드버그 장치(Rube Goldberg Machin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1931년 웹스터 사전에선 ‘루브 골드버그’는 형용사로 ‘간단한 일을 복잡한 수단으로 달성하는’이란 뜻으로 등재됐다. 영국과 덴마크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골드버그가 원조로 꼽힌다. 이명재 상지대 환경공학과 겸임교수는 “조선시대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 ‘자격루’에서 물이 차면 잣대가 떠올라 구슬을 건드리고, 이 구슬은 굴러가다 떨어져 십이지신 모양의 인형을 움직였다”며 “여러 단계를 거쳐 하나의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골드버그 장치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1949년 미국 퍼듀대학의 공학 동아리 학생들이 재미 삼아 골드버그 장치를 현실로 구현하는 대회를 시작했다. 대회는 55년까지 열리다 맥이 끊겼다. 그러다 83년 동아리방에서 오래된 골드버그 장치 대회 트로피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대회가 부활했고, 골드버그의 후손들이 세운 ‘루브 골드버그’가 87년 첫 골드버그 장치 전국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콘테스트 참가자들은 최소 3명으로 팀을 짠 뒤 과제를 수행하는 골드버그 장치를 가로 3m, 세로 3m, 높이 2.4m 공간 안에 만들어야 한다. 올해 과제는 ‘칠판을 지우라’였고 내년은 ‘우산을 펴라’다. 중등부의 경우 10단계 이상, 고등부와 대학부는 20단계 이상의 과정을 거쳐 과제가 이뤄져야 한다. 제한 시간 2분이 주어진다. 이 같은 룰을 제일 잘 따르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관객의 호응이 제일 많은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 평가 항목엔 팀워크도 있다. 우승자들이 ‘투나잇쇼’ ‘굿모닝 아메리카’ 등 유명 TV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초대될 정도로 콘테스트의 지명도가 높다. 그래서 다국적 기업들은 콘테스트 스폰서에 나서고 있다. 음료 회사인 미닛메이드가 후원했던 2007년 과제는 ‘오렌지 주스를 짜라’였다. 지퍼 제조사인 YKK가 후원사였던 지난해에는 ‘지퍼를 올려라’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골드버그 장치는 대중문화에서 엉뚱함이나 기발함을 상징하는 장치로 많이 활용됐다. 영화 ‘백투더 퓨처’ ‘구니스’나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에서 등장인물이 괴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에 나온다. 2003년 일본 자동차 회사 혼다의 어코드 TV 광고와 2010년 미국 인기 록그룹 OK Go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일본에선 NHK의 인기 프로그램 ‘피타고라스위치(피타고라스+스위치)’를 통해 ‘피타고라 장치’로 소개됐다.

미국 골드버그 장치 콘테스트에서 한 대학생이 장치를 작동하고 있다(위). 지난해 과천과학관 골드버그 대회에 출품된 서울 영도초등학교 ‘바쿨루스’팀의 비상통신망 설계도. [사진 퍼듀대, 국립과천과학관]
 국내에선 2006년 당시 과학기술부가 ‘우주인 선발대회’에서 과학적 창의력과 협동심을 평가하는 과정으로 도입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당시 후보자들은 두 팀으로 나눠 로켓을 발사해 과녁에 맞히되 반드시 15단계를 거쳐야만 하는 미션을 수행했다. 당시 과기부에 조언한 이 겸임교수는 “영화 ‘아폴로 13호’에서 우주 비행사들이 양말·테이프·매뉴얼 등 우주선 안에 있는 사물로 임시 이산화탄소 제거기를 만든다”며 “실제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 비행사의 위기 대처 훈련 과정에 골드버그 장치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후 발명교실·과학교실 등 과학 관련 특별활동을 중심으로 교육현장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골드버그 장치 대회를 열고 있다. 매년 300팀 이상이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높다.

  교육계는 골드버그 장치를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 강동·송파교육지원청 발명교육센터 전담교사 박인수씨는 “골드버그 장치엔 정답이 없다. 주어진 시간과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장치를 작동시키면 된다”며 “학생들은 다양한 가능성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을 스스로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남부교육지원청 발명교실 전담교사인 박상민씨는 “골드버그 장치는 이론이나 실험을 통해 가르치는 것보다 더 재밌고 쉽게 아이들이 과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 교육이 추구하고 있는 STEAM[Science(과학), Technology(기술), Engineering(공학), Arts(예술), Mathematics(수학)의 각 첫 글자]과도 잘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한 초등학교의 영재학급·발명동아리 학생 38명을 대상으로 한 달여간 20차례 골드버그 장치를 활용한 수업을 진행한 뒤 창의적 인성검사를 해봤다. 그 결과 수업 이전보다 창의적 인성이 향상됐다는 연구가 있다(김영준·손정우, ‘골드버그 장치 수업 프로그램이 초등 영재 학생들의 창의적 인성에 미치는 영향’). 참을성을 기르는 부수효과도 있다. 제주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재학생 정선우(15)군은 “골드버그 장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데 당초 설계한 대로 움직이지 않아 100번이나 고쳤다”고 말했다. 박인수씨는 “실패는 늘, 그리고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고 평가했다. 기업에서도 골드버그 장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삼성 에버랜드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연수 프로그램에 도입했다. 신입사원은 협동심을 기를 수 있고, 간부사원에겐 창의성 개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S BOX] ‘골드버그 장치’ 유튜브 동영상 많아 … 아이와 함께 만들어 보세요

집에서도 가족이 모여 골드버그 장치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먼저 골드버그 장치의 기본 개념과 작동 원리를 파악해 보자. 백 마디 설명을 하기보다 유튜브 등에서 영어 ‘goldberg machine’과 같은 검색어로 동영상을 찾으면 된다. 수많은 골드버그 장치 동영상이 나온다. ‘동작예술가(kinetic artist)’로 유명한 조지프 허셔(www.josephherscher.com)나 골드버그 장치로 2013년 미국 TV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입상한 스티브 스프라이스(www.spricemachines.com)의 홈페이지에서도 재밌는 골드버그 장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다 함께 골드버그 장치의 과제를 정하자. 지금까지 골드버그 장치 대회에 출제됐던 과제들을 참고해도 좋다. 골드버그 장치로 치약을 짜거나 풍선을 터뜨리기 등이다. 일상에 관련된 과제라면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

 다음 단계는 골드버그 장치의 부품을 준비하는 것이다. 전용 교구가 있지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생활용품도 훌륭한 부품이 된다. 에너지를 다음 단계로 전달하는 구슬이 많이 쓰인다. 도미노 블록과 장난감 자동차도 좋다. 수판·고무줄·빨래판·플라스틱자 등은 구슬의 레일로 사용된다. 종이컵·나무젓가락·아이스크림 막대·빨대 등으로 지지대를 만든다.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골드버그 장치가 작동 중간에 멈출 수 있다. 골드버그 장치 대회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서울시 남부교육지원청 발명교실 전담교사 박상민씨는 “실패와 시행착오도 골드버그 장치를 활용한 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며 “부모가 격려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골드버그 장치가 제대로 움직인다면 아이에게 관련 과학지식을 설명해 준다.

[골드버그 장치 동영상 보기]

* 영화 ‘구니스’(1985년)



* 혼다 어코드 광고 ‘Cog’(2003년)



* 일본 NHK의 ‘피타고라스위치’ 타이틀 화면(2009년)



* OK Go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뮤직비디오(2010년)



* ‘동작예술가’ 조지프 허셔의 ‘페이지 넘기개(Page Turner)’(2011년)



* 삼성 TV 데모 영상(2013년)



* 내셔널지오그래피의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알람시계’(2015년)



* 스티브 스프라이스의 ‘피자배달 장치’(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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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