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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서정주 ‘화사’ 에 깃든 억눌린 욕망 … 이어령이 풀어본 한국 애송시 32편

명시 해설집 ?언어로 세운 집?을 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사진 아르테]

언어로 세운 집
이어령 지음, 아르테
392쪽, 1만8000원


이 시대의 탁월한 ‘문화 해설가’인 이어령(81) 전 문화부 장관. 그가 필명을 떨친 건 1950년대 후반 문학평론을 쓰면서부터다. 날카로운 감식안에 포부도 당찼던 듯 그는 ‘우상의 파괴’, ‘화전민의 선언’ 등 논쟁적인 평론을 잇따라 발표해 당대 문단의 권위에 도전했다. 서정주·황순원·조연현 등 대가들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분류하며 문단 질서의 재편을 시도했다(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비타협적 기질은 6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했다. 잡지 ‘사상계’ 등을 통해 참여문학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시인 김수영과 지상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어설퍼서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어려운 법. 『언어로 세운 집』에는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문학작품 해부 솜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정지용의 ‘향수’, 윤동주의 ‘서시’ 등 한국인의 대표적인 애송시 32편을 감칠맛 나게 해석했다.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시 작품 안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와 상징에 주목해 숨은 뜻을 파헤친다. 96년 일간지에 ‘다시 읽는 한국시’라는 이름으로 연재했던 글들인데, 지면 사정상 다 싣지 못했던 원문을 모두 살려 펴냈다.

 저자의 집필 포인트는 누구나 잘 안다고 여기는 애송시들도 자세히 뜯어 보면 그 뜻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노래로도 만들어진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시의 화자가 아빠와 형님이 아니라 굳이 엄마와 누나를 부른 건 남녀를 구별하는 ‘젠더(gender) 공간’을 불러내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때문에 화자가 서 있는 자리는 남성 공간이라는 얘기다. 곧이어 ‘강변 살자’라는 말을 갖다 붙인 이유도 화자가 서 있는 공간이 녹색, 생명의 이미지인 강변에 대비되는 경쟁과 투쟁의 공간, 도시 문명의 회색 공간이기 때문이다. 네 줄로 이뤄진 짧은 시의 첫째 줄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부터 이처럼 다채로운 숨은 공간을 거느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책을 5부로 나눴지만 손길 가는 대로 궁금한 시부터 찾아 읽으면 될 것 같다. 서정주 시인의 대표작 ‘화사(花蛇)’ 해설이 특히 눈길을 끈다. 첫 연의 뒷부분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에서 시인이 시적 음운을 교묘하게 구사해 뱀의 징그러움을 거의 생리적인 현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얼마나’ 대신 ‘을마나’, ‘커다란’ 대신 ‘크다란’을 써, 징그러울 때 어금니를 물고 ‘으―’ 하는 생리현상과 가까운 소리를 내게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으―’ 소리는 유교적 억압 아래 뭔가 성적 충동을 느낀 한국 여인네들이 신음소리처럼 내던 징그러움의 원형적 체험과 동일한 것이 된다고 해석한다. 이런 분석 과정을 거쳐 ‘화사’는 “욕망의 착종과 모순의 뜨거운 피”에서 태어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100쪽을 넘는 책 뒤편의 주석도 책의 읽는 맛을 더한다. 저자의 애제자인 문학박사 김옥순(65)씨가 구할 수 있는 경우 원본 시 사진을 싣고 시인 소개, 이씨 해설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덧붙였다. 가령 ‘젠더 공간’이라는 말이 나오면 ‘젠더’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어디서 유래했는지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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