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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배신의 정치를 허하라

이훈범
논설위원
퀴즈 하나. 대구에는 없지만 인천에는 있는 것은?

 정답은 대통령 수행 의원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우리 대통령이 며칠 전 대구에 갔을 때 그곳 국회의원들은 한 명도 초대받지 못했다. 12명 전원이 여당 소속인데도 말이다. “대통령이 시민들과의 소통에 집중하기 위해 의원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거였다. 청와대 사람들만 뺀 모든 이들이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 유승민’.

 이틀 뒤 명백해졌다. 대통령이 인천에 갔는데 거기선 시민들과의 소통에 집중할 필요가 없었나 보다. 지역구 의원 12명을 모두 초청했다. 올 리 없는 야당 의원들까지 불렀다. 사람들은 같은 이름을 머리에 그렸다. ‘맞네. 유승민’.

 사실은 보름 전에 드러난 거였다. 새누리당 의원 전원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했을 때다. 의원들은 오찬장에 들어서면서 문간에 있는 국방위원회 테이블을 봤다. 대통령이 입장하는 문과 헤드테이블에서 가장 먼 곳이었다. 모든 의원들 생각이 같았을 터다. ‘허허, 유승민’.

 “확대해석을 하지 말라”는 게 청와대 해명이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해주지 않으면 청와대의 의도는 실패한 거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의미와 메시지가 있는 정치행위인 까닭이다. 누누이 봐왔던 터 아닌가. 2013년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때 동행할 경제사절단 79명 명단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은 없었다. “신청하지 않았다”는 해명보다 ‘사퇴 압박’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두 사람은 두 달 뒤 자진 사퇴했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전날 용산의 노인복지관에서 배식 봉사를 했다. 용산은 친박 핵심 이한구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진영 의원 지역구다. 두 사람은 치열한 삼파전의 승자가 됐다.

 유승민의 경우는 해석이 훨씬 쉽다. 이미 대통령 스스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목청을 돋우지 않았던가. 이번 무(無)의원 대구 행차는 그것의 액션 버전일 뿐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유승민의 지역구가 있는 대구의 유권자들에게 대통령의 의지를 확실히 일깨운 거다. 최소한 유승민의 측근으로 일컬어지는 김희국·김상훈 두 의원에 대한 경고 효과를 노렸겠다. 그날 대구에 있었으면서도 초청받지 못한 두 사람이다.

 내가 안타까운 건 유승민이 아니다. 대통령이 왜 그런 일로 에너지를 소모하냐는 거다. 적절했던 대북·대중(對中) 대처로 모처럼 얻은 정국운영의 호기를 왜 그런 일로 내던지냔 말이다. 주나라 여왕(<53B2>王)의 고사가 떠오르는 이유가 그래서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자 여왕은 원망의 말을 입에 담는 걸 금지했다. 가혹한 처벌도 뒤따랐다. 그러자 사람들은 길에서 마주쳐도 눈빛만 교환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득의양양 여왕이 말했다. “내가 비방하는 말을 모두 없애버렸다(吾能<5F2D>謗矣).”

 지금 대통령은 진언(盡言)을 모두 없애버리는 결과를 자초하고 있는 거다. 누가 지금 대통령 앞에 가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불가하다”고 말할 수 있겠나 말이다. 진언이 사라진 자리엔 감언과 아부만 남는다. 그걸 뼈저리게 느꼈을 이회창 전 총재의 얼마 전 고언이 다른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대통령만큼 노력하는 사람도 없을 터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여당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벌 준다고 얻어지는 성공이 아니다. 포용력을 발휘하고 더 많은 다른 목소리를 들을 때 성공 확률은 따라 올라가는 것이다. 한(漢) 문제의 성공이 괜한 게 아니다. 그의 말이다. “옛날에는 올바른 진언을 위한 깃발과 비방할 수 있는 나무 팻말을 세워 간언하는 이들을 오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조정을 비방하면 혹세무민으로 간주돼 죄가 되니 이는 신하들이 마음속 생각을 다 쏟아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자 황제에게 자신의 허물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없애는 것이다. 이 죄목을 없애도록 하라.” “배신의 정치를 허하라”는 얘기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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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