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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근혜 대통령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레이건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조지 슐츠. 소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던 그는 세기의 전략가였던 조지 케넌에게 물었다. 봉쇄정책의 입안자였던 케넌이 말했다. “소련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불안정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위신을 세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소련을 무력화시키려는 전면적인 압박정책은 오히려 위험스러운 선제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냉전이 해체된 후 많은 전문가가 말했다. 케넌의 권고를 따랐더라면 소련은 보다 빨리, 그리고 보다 건설적으로 변화했을 거라고.

 이산가족 상봉으로 8·25 합의가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는 단계다. 우리 정부의 입장이 좀 공세적으로 보인다. ‘평화통일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케넌의 아이디어가 중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이야말로 남북이 서로의 위신을 세워줘 가며 대결보다는 공존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북한과의 대화나 외교에 회의적인 여론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이 합의를 제대로 지킨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합의는 국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깰 수 있다. 그것은 국제적인 관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은 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딴소리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번 8·25 합의 제2항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전례 없는 북한식 사과’라고 했지만, 북측은 ‘남조선 당국이 만들어낸 근거 없는 행동’이라며 지뢰 도발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물론 북한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우리도 6·15 공동선언이나 10·4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들 합의를 통일헌장으로까지 격상시키고 있지만 우리는 응할 의향이 없다. 이러다 보니 남북은 도발과 응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달 남북 고위급 접촉은 전쟁이냐 평화냐를 가르는 경계선상의 회담이었다. 이 때문에 위험 부담이 작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경계선상의 회담은 남북관계에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고 또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북한은 변화하지 않을 것인가. 유명한 정치사상가 해나 아렌트가 말했다. “전체주의 체제는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고. 그녀의 불후의 명저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였다. 나치 전체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그녀다. 이런 아렌트의 눈에 전체주의 불변론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렌트의 지적처럼 전체주의는 이전의 독재와 차원이 다른 정부 형태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까지도 ‘전부(total)’ 통제할 수 있는 체제인 것이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독재자가 휘두를 수 있는 근대 과학기술의 덕분 때문이다. 이런 과학기술을 이용한 사회의 ‘전체적인’ 통제는 ‘변화’ 자체를 질식시켜 버렸다. 그래서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없는 한 변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56년 헝가리 혁명은 아렌트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전체주의도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체적 통제를 가능케 했던 과학기술. 이 기술이 거꾸로 전체적 통제를 허무는 외부의 바람 구멍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오늘날의 정보통신 기술은 북한 체제 곳곳에 구멍을 뚫고 있다. 북한이 이것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해 보인다. 비록 우리의 희망일 뿐일지는 몰라도, 우리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면서 정보기술이 뚫어준 구멍을 통해 북한 내부를 ‘건설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외부의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케넌의 지적처럼 우리의 대북정책이 억지(抑止)와 압박에서 외교와 소프트 파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지금까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갈 것이라고 한다. 감정적 여론과 합리적 정책의 충돌을 넘어서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그동안 햇볕정책은 보수세력의 가슴을 찢어 놓았고, 압박정책은 진보세력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햇볕정책이나 억지-압박 정책은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둘 다 자신들의 가슴을 찢어 놓은 실패한 시도들이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다. 케넌과 같은 전략가의 자문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그는 이미 고인(故人)이다. 하지만 그의 지혜는 빌릴 수 있지 않을까.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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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