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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부장 딸 숙제에 사장 빨래까지 … 왜 참느냐고요? 인턴이니까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어야 하는 청춘들이 인턴 모집에 몰려드는 시기입니다. 요즘은 인턴 채용 역시 바늘구멍이어서 많게는 100대 1의 경쟁률을 훌쩍 넘어서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생 인턴사원은 우리 사회에서 을(乙) 중의 을로 여겨지고, 일부 기업은 그들에게 갑(甲)의 횡포를 마구 휘두르곤 하죠. 저 유명한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 역시 인턴사원 아니었던가요? 장그래가 그랬듯 인턴사원들은 회사가 요구하는 ‘막일’에 동원되기도 합니다.

상사에게 아무렇게나 휘둘리는 인턴들을 일컬어 ‘인턴 셔틀’이라고 부르는 자조적인 표현도 등장했을 정도죠. 청춘리포트는 요즘 인턴사원들의 눈물겨운 적응기를 취재했습니다.

‘인턴 셔틀’의 기막힌 현실이 장그래 사원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먼지 같은 일을 하다 먼지가 되어버렸어.”


말은 한 시대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예컨대 ‘셔틀(Shuttle)’이라는 영어 단어의 뜻이 휘어져 사용되는 세태는 어떠한가. 셔틀이란 본디 특정 지점을 오가는 탈것(버스·기차 등)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학교 폭력의 한 양태로 이 말이 사용됐다. 우리 사회에서 ‘셔틀’이란 말이 재정의된 것은 다음과 같다.

 ‘셔틀(Shuttle) : 학교 폭력의 일종으로, 가해 학생들의 강요에 의해 심부름을 하는 학생들을 총칭하는 신조어’. 이처럼 셔틀은 이른바 ‘일진 학생’들로부터 심부름을 강요당하는 힘이 약한 학생들을 일컫는 말로 그 뜻이 바뀌었다. 빵 셔틀, 가방 셔틀, 숙제 셔틀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여기 ‘우리도 셔틀이다’고 외치는 또 다른 청춘들이 있다. 다름 아닌 기업·공기업 등에서 일하는 인턴사원들이다. ‘중·고등학교도 아니고, 알 만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웬 셔틀?’ 얼핏 고개가 갸우뚱해질 법하다. 하지만 “우리는 취업에 저당 잡힌 약자”라고 자조하는 인턴들에게 셔틀은 그리 멀지만은 않은 단어다. 청년실업자 44만 명 시대(2015년 상반기 기준), 직장 구하기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취업 전쟁 속에서 인턴은 취업준비생과 대학생들이 거쳐야 할 필수코스처럼 인식되고 있다.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는 귀한 경험인 셈이다.

 인턴활동은 이런 그들이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취업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친구, 대학 선후배들과는 전혀 다른 직장 선배들을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든 게 얼떨떨하고 조심스러운 인턴들에겐 부당한 상사의 개인적 심부름 따위는 문제 삼을 여유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 여름방학에 한 대기업에서 인턴활동을 했던 강모(24)씨는 “내가 왜 이틀에 한 번꼴로 상사의 개인 심부름을 하고 있나 하면서도 회사 사람들에게 밉보이기 싫어 내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청춘리포트팀이 최근 1년 내에 인턴활동 경험이 있는 20대 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66%가 “업무와 상관없는 상사의 개인 심부름을 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심부름을 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주 3일 이상 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39%였고, ‘사비로 심부름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도 23%에 달했다.

 청춘리포트팀은 설문에 응답한 청춘 4명을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회생활의 사각지대에서 앳된 얼굴로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셔틀이었나요.’


상사 자녀 자소서 셔틀=서명희(가명·25)씨는 올 1월부터 6월까지 한 공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처음 해 보는 인턴활동이라 ‘열심히 해서 인정받자’는 의욕도 충만했다. 며칠 뒤 부서 A부장이 서씨를 불렀다.

 “명희씨 영어 잘한다며?”

 A부장은 한글로 된 발표문 뭉치를 서씨에게 건네며 영어 작문을 시켰다. 업무와 관련된 일인 줄 알고 열심히 작문했지만 알고 보니 대학생인 부장의 딸이 광고 공모전에 낼 과제였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명희씨는 PPT도 잘 만들잖아.”

 부장은 발표문 영작도 모자라 PPT까지 만들라고 지시했다. 서씨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부장 딸의 과제를 하느라 그로부터 2주 동안 매일 오후 9시를 넘어 퇴근했다.

 ‘과제 셔틀’의 악몽은 끝이 아니었다. 부장은 이후에도 딸이 대학생 기자단, 기업 서포터스 등을 지원할 때마다 자기소개서와 발표문 작성을 서씨에게 맡겼다. “발표문 양식을 좀 더 깔끔하게 바꿔보지?” “분량이나 주제가 좀 안 맞는 것 같은데….” 부장의 요구는 점점 까다로워졌다. 서씨는 “공기업 특성상 위계가 엄격해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인턴한테 맡겨 점수 못 받았다’는 얘기가 나올까 봐 근무시간을 넘겨가며 매달리면서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밥 셔틀=올 7월부터 두 달간 한 유명 외국계 은행에서 회계 사무직 인턴으로 일했던 김진아(가명·21)씨는 “내가 인턴인지 음식점 배달 직원인지 헷갈린 적이 많았다”고 했다. 떨리는 첫 출근을 하고 난 다음 날 아침, 김씨의 휴대전화에 B팀장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떴다.

 ‘회사 옆 분식집에서 김밥 좀 부탁.’

 김씨는 오늘 팀장님이 바쁜가 보다 싶어 군말 없이 김밥을 사서 팀장에게 전해 줬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B팀장은 다음 날 아침엔 샌드위치를, 그다음 날엔 도시락을 주문했다. 팀장의 카톡엔 부탁이란 말은 사라지고 메뉴 이름만 남았다. 아침뿐 아니라 점심, 심지어 저녁 식사를 사오는 일까지 있었다. 팀장이 먹고 남긴 음식이나 쓰레기 등의 뒤처리도 김씨의 몫이었다.

 더욱 힘들었던 건 ‘밥 셔틀’을 할수록 김씨의 주머니도 가벼워졌다는 점이다. 팀장이 바쁘다는 핑계로 종종 밥값을 주지 않으면서다. 김씨가 인턴활동을 하면서 받은 돈은 한 달 120만원, 이 중 25만원 정도가 팀장의 식비로 나갔다. ‘밥 셔틀’은 한 임원이 음식을 싸 들고 뛰어가는 김씨를 우연히 발견한 뒤 B팀장에게 불호령을 내린 뒤에야 끝났다. 김씨는 “지방에서 올라와 고시텔에서 살면서 밥을 못 챙겨 먹는 일이 많았다. 일은 배우지도 못하고 팀장님의 음식 심부름꾼이 된 것 같아 너무 비참했다”고 말했다.

 주차장 대기 셔틀, 빨래 셔틀까지=올 4월부터 3개월간 한 공기업의 청년인턴으로 일했던 강하나(가명·25)씨. 강씨의 일과는 매일 아침 건물 주차장에서 C위원장의 차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위원장이 차에서 내리면 강씨는 미리 준비한 녹차나 커피를 건넸다. 하루는 지각을 했더니 부장이 “왜 위원장님 커피를 준비해 놓지 않았느냐”고 나무랐다. 다음 날부터 강씨는 출근 시간보다 10~20분 먼저 와 주차장 근처에서 대기했다. 강씨는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혹시라도 취업에 불이익이 생길까 봐 항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3개월의 인턴생활 동안 강씨가 가장 듣기 싫었던 것은 “여기만큼 일하기 좋은 데도 없다”는 부장의 입버릇 같은 말이었다.

 한 외국계 기업에서 올 3월까지 3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했던 최영현(가명·24)씨도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이 기업의 D사장이 사무실 내부 공사를 감독하던 중 더러워진 바지와 셔츠를 건네며 “빨래 좀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세탁 용품도 갖춰지지 않은 회사 화장실에서 최씨는 비누와 찬물로 사장의 옷을 빨았다. 이런 ‘빨래 지시’는 이후 세 번이나 계속됐다. 빨래의 충격이 겨우 가실 때쯤 사장은 최씨에게 아들 자취방에 있는 짐을 사무실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결국 참다못한 최씨는 퇴사를 했다. 최씨는 “힘없는 인턴이라 이런 대우를 받는 건가 하는 자괴감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생’인 동시에 ‘근로자’라는 이중적 시선을 받는 인턴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진국들은 인턴의 성격을 교육생과 실무노동자로 나누어 법적으로 다르게 취급한다”며 “교육 목적이 분명한 인턴의 경우 확실한 교육 기준을 명문화하고, 실무노동형 인턴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합당한 처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foneo@joongang.co.kr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강해라·김유라·이명진·조희형 대학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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