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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원 2만 명 야쿠자 내분 … 일본 경찰 ‘나 떨고 있니’

일본 야쿠자 세계의 갈등과 배신을 다룬 영화 ‘신 의리없는 전쟁-음모’(2003)의 한 장면. [중앙포토]


두목 시노다(왼쪽)와 야마켄파의 리더 이노우에.
일본 최대 야쿠자(폭력조직)인 야마구치파(山口組)가 내부 갈등을 빚으며 분열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은 7일 야마구치파 산하 단체 중 규모가 가장 큰 야마켄(山健)파의 직계 두목 13명이 조직을 이탈해 새로운 폭력조직을 결성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야마켄파의 두목인 이노우에 구니오(井上邦雄·67)를 새 조직의 리더로 추대했다.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새 조직의 이름은 야마구치파의 발상지인 고베를 넣어 ‘고베 야마구치파’로 정했다. 오카야마(岡山)현과 후쿠이(福井)현, 구마모토(熊本)현을 중심으로 조직원 3000여 명이 합류했다. 일본 경찰은 야마구치파의 회유 공작도 진행되고 있어 새 조직의 세력은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좌익 탄압해 세 키운 야마구치파
‘넘버 2’ 이탈해 새 폭력조직 결성
25명 숨진 30년 전 ‘전쟁’ 재연 우려



 야마구치파의 분열은 6대 두목인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72)가 나고야(名古屋)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파벌 고도카이를 비호하면서 비롯됐다. 다른 파벌 간부들을 중용하지 않고 직계 두목들에게 부과하는 상납금을 계속 늘리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이 과정에서 야마켄파가 이탈해 새로운 파벌을 결성하게 됐다.



 야마구치파는 1915년 야마구치 하루키치(山口春吉)가 고베항 노무자 30여 명과 함께 결성한 동네 폭력단으로 출발했다. 60년대 좌익 학생운동을 탄압해 우익 정치인들의 특혜를 받으며 조직을 키웠다. 마약 밀매와 매춘은 물론 연예기획사, 부동산 투자 등 돈이 되는 각종 사업에 손을 댔다. 불우 이웃을 돕거나 지진과 태풍 피해 현장에서 구호에 나서는 등 이미지 관리까지 하며 100년 만에 준(準) 조직원을 포함해 2만3000여 명을 거느린 최대 야쿠자 조직으로 성장했다.



  올해 초 뉴스위크와 일본 언론은 야마구치파가 100년간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현대 기업의 성공적인 경영 모델을 따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일본 정부가 야쿠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 위기에 처한 소규모 조직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키웠다. 거품 경제가 꺼져가던 1990년대에는 부실 채권 정리업에 발 빠르게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다. 지난 1월엔 고베 총본부에서 두목 시노다의 생일잔치를 겸해 10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전국 70여 명의 직계 부두목과 조직원들이 대거 몰리는 등 세를 과시했지만 이번 분열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 경찰은 전국 야쿠자의 40%가 소속돼 있는 야마구치파의 분열에 바짝 긴장하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세력 범위와 수입원 등을 둘러싸고 조직 간에 충돌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야마구치파는 1985년부터 87년까지 벌어진 분열 과정에서는 대규모 충돌을 빚어 다케나카 마사히사(竹中正久) 4대 두목 등 조직원 25명이 숨졌다. 경찰관과 일반 시민 등 70명도 부상을 입었다. 97년 내분 당시에는 넘버 2가 고베시 호텔에서 사살됐고 옆에 있던 치과의사가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



 일본 정부는 1992년 야쿠자 근절을 목표로 ‘폭력단 대책법’을 만들어 폭력조직에 대한 본격적인 단속을 시작했다. 2008년에는 조직원이 위력을 과시하며 돈을 빼앗은 경우 해당 조직원은 물론 두목에게도 배상 책임을 물리는 조항을 신설했다. 2012년엔 ‘폭력단 대책법’을 한층 강화해 5명 이상의 야쿠자가 모여서 경쟁 관계의 상대 조직 사무실 근처를 서성거리기만 해도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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