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대부'(1972)

3 영화 ‘대부’ 포스터 [사진 마티]



 

[영화 속에서]?기업화·보수화의 길 걷는 사회?코폴라가 그려낸 건 지금의 세상

‘대부’로 불리는 돈 코를레오네는 미국 마피아 조직의 보스다. 고향 시칠리아에서 가족이 몰살당한 후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복수를 위해 조직을 일궜다. 어느 날 라이벌에 의해 저격당해 중상을 입자, 조직과 무관하게 엘리트의 길을 걷던 막내아들 마이클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면서 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 법. 시칠리아로 피신한 마이클은 그곳에서 만난 아내를 적에 의해 잃고, 그사이 배신과 죽음이 끊이지 않아 위기에 몰린 조직을 맡기 위해 귀국한다. 노인이 되어 쇠약해진 돈 코를레오네는 돌아온 마이클에게 “너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면서 배신자를 감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긴 돈 코를레오네는 텃밭에서 손자와 놀다가 심장마비로 죽는다.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해 두 번이나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마리오 푸조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했다.



강신주·이상용의 영화 속 철학 산책

‘대부’는 마피아 돈 코를레오네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대부라 불리는 돈 코를레오네가 마약이라는 신흥 사업을 시작한 다른 조직에 의해 저격당하고, 막내아들 마이클이 아버지를 위한 복수 전쟁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대부로 탄생하게 되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검은 돈을 둘러싸고 있는 신뢰와 배신, 그리고 타락한 경찰의 모습이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장면은 복수를 마친 마이클이 아버지의 고향 시칠리아에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뿐이다.



냉혹한 세상과 마피아는 다르지 않아



‘대부’는 범죄 집단을 다루고 있지만 관객들은 돈 코를레오네 역을 맡은 말런 브랜도를 비롯한 극중 인물들에게 호감과 연민을 느낀다. 이유 중 하나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피보다 진한 의리로 묶인 인물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악한 조직이라도 안쪽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수긍이 가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돈 코를레오네가 이끄는 마피아는 그들만의 전통이 있으며, 이것은 법보다 더 철저하게 지켜진다. 그들은 허술한 악당이 아니라 ‘마약’과 같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해로운 사업은 오히려 건드리지 않는 윤리성마저 지니고 있다. ‘대부’의 첫 번째 충격은 여기에 있다. 냉혹한 세상이나 엄혹한 마피아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자신만의 윤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것은 돈 코를레오네의 죽음을 보는 관객에게 “꼴좋다”가 아니라 어떤 연민을 갖도록 이끈다. 심지어 돈 코를레오네가 아들 마이클에게 충고를 던지는 장면들은 현실의 엄혹함에 대한 세상 선배들의 충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의 패밀리와 반대편에 놓인 악은 배신자들이다. 배신자들은 악한 마피아에게 더 큰 악으로 여겨진다. 배신자는 존재 자체가 악마적이라기보다 대부가 세운 ‘패밀리’의 논리를 따르지 않은 자들, 한마디로 불충한 자들이다. 이 또한 세속의 논리와 맞물린다. 한 집단이 규정하는 악은 정직성과는 상관이 없다. 학교에서는 정직을 윤리의 모범처럼 가르치지만, 세상에 나오면 알게 된다. 조직이나 공동체의 논리를 앞세워 한 개인을 공격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불충함이다. 오히려 정직하고 담대한 개인의 경우 조직에서는 불편해할 때가 있다. 그들은 핀잔을 듣기 마련이다. “그렇게 잘났어?”



‘대부’는 세상 논리와 잘 호응하는 영화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는 그 유명한 대사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나오는 장면이다. 이 말의 실체는 저렴한 제안(십만 달러로 해결할 일을 단돈 천 달러에 하거나)과 ‘총알 세례’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보면 선택지가 전혀 없는 문제지만 대부는 고집스럽게 제안이라고 부른다. 대부의 제안을 거절한 영화제작자의 침대 머리맡에 피가 흥건한 ‘말머리’가 놓여 있는 충격적인 장면은 마피아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폭력을 배경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마피아는 미국의 지하경제를 담고 있는 신화 속 이름이 아니다. 마이클이 케이에게 청혼하며 “5년 안에 합법적인 조직 혹은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장면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46년을 배경으로 시작한 ‘대부’는 당대의 미국 사회가 폭력(돈 코를레오네)에서 출발하여 합법화(마이클)의 길로 들어가리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1 영화의 오프닝. 돈 코를레오네의 딸 코니의 결혼식 장면.



바탕에 깔린 건 여성 희생과 남성 폭력‘대부’는 현대사회가 점점 더 기업화와 보수화의 길로 가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자리는 배제된다. 우리는 대부를 찾아왔던 장의사 보나세라가 성폭행을 당한 자기 딸의 문제로 대부에게 살인을 의뢰하는 장면을 본다. 그것은 이날 결혼식을 치른 딸 코니의 문제(남편 카를로에게 맞고 사는 여인이 된다)와 시칠리아 여인의 죽음, 마이클이 케이에게 카를로를 처벌한 사실을 거짓말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연결되면서 ‘대부’의 조직 논리가 여성의 희생과 남성의 폭력 속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돌아보게 한다. 이 끔찍한 보수성에 대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유려한 카메라로 역사를 스케치하듯 따라갈 뿐이다. 우리는 그 매끈한 흐름 속에서 시력을 잃으면 곤란하다. 냉혹한 시선으로 조직의 논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속에 지금의 세상이 있다.



이상용영화평론가



 

[영화 밖으로]?거절 못 할 제안 할 수 있어야?친구와 적 구분 가능한 권력자



이 영화가 이토록이나 걸작으로 남은 비결은 무엇일까. 시공간과 상관없이 마이클과 그의 조직이 삶을 영위하는 그 씁쓸한 풍경이 우리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 아닐까. 마피아가 마주치는 현실이 사실은 우리 삶의 현실이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풍경, 어떤 현실인 걸까.



우리는 모두 정치적인 것에 관여돼 있다

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그것은 죽을 때까지 우리가 정치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숙명과 관련된 살풍경이다. 나치 시대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코폴라 감독은 ‘대부’로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인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직업 정치인이 하는 일이 ‘정치’라면, ‘정치적인 것’은 우리 모두에게 연루될 수밖에 없다. 슈미트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정치적인 것’이란, 다시 말해 어떤 행위를 정치적이라고 말하려면, 우리의 행위가 ‘적과 동지’라는 범주 안에 지배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역 감정도, 학벌이나 학연, 혹은 혈연이나 지연도 모두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슈미트는 “모든 종교적, 도덕적, 경제적, 인종적 또는 그 밖의 대립은 그것이 실제로 인간을 적과 동지로 분류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한 경우에 정치적인 대립으로 변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첫 장면을 떠올려보자. 마피아의 대부 돈 코를레오네는 살인 청탁을 이렇게 말하며 거절한다. “나에게 우정으로 왔다면 그놈들은 당장 죽어 없어질 거다. 자네에게 적이 있다면 바로 나의 적일 테니.” 돈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대등한 계약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다. 대부가 원하는 것은 계약이 아니다. 그는 지배를 원했다. 우정과 존경을 맹세하자 대부는 살인 청탁을 받아준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돈 코를레오네는 임시적이고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영구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맺은 것이다. 생명과 안전을 대가로 삼는 제안,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너의 생명과 너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제안. 권력이란 바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수 있는 힘이다.



왕조나 독재 시절이 아니더라도, 국가 권력이란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거절 못 할 제안을 쉽게 한다. 징집 명령서, 철거 명령, 거주 이전 합의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누구나 생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의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 어디 정치권력뿐인가. 자본가, 직장 내 상사, 거래처 등 생계 터전에서 거절 못 할 제안은 판을 친다. “어이! 김 부장. 내일 골프 치러 같이 가야지.”“납품 좀 받으셔야죠? 남은 건 알아서 처리하시고요.”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갓 결혼한 새댁에게 걸려온 시어머니의 전화. “얘야, 이번 명절에는 이틀 먼저 오겠니?”



거절 못 할 제안을 할 수 있는 권력자만이 친구와 적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주권자다. 아버지의 피습, 패밀리 사이에서 벌어진 배신과 동요를 겪으면서, 마이클은 ‘정치적인 것’의 핵심을 몸으로 익힌다. 적과 싸우고 친구를 돕는 메커니즘이 패밀리를 번성케 하는 비밀이라는 것, 그러기에 거절 못 할 제안을 하는 잔인함과 단호함도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애인에게 청혼하며 나누는 대화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먼저 마이클이 말한다.



권력 혹은 정치적인 것의 알레고리



“아버지도 다른 힘있는 사람들과 다를 게 없어. 다른 사람들을 책임지는 의원이나 대통령처럼.”“아주 순박하게 들려요.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을 안 죽여요.”“누가 순진한지 모르겠는걸.”코폴라 감독의 걸작 ‘대부’는 국가 권력, 혹은 정치적인 것의 알레고리로 읽혀야 한다. 꼭 국가 권력이 아니더라도 곳곳에 정치적인 것은 편재돼 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은 비수들처럼 날아들고, 우리는 적이 아니면 동지가 되어야 하는 부당한 양자택일에 내던져 살아간다. 하여 우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다시 ‘대부’를 본다. 각자가 맞닥뜨린 조폭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며 하나의 엄연한 현실로, 이 오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영화를 바라본다. 언제일까. ‘대부’가 너무나 낡은 이야기로 보일 때는.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때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그런 세상일 것이다.



강신주대중철학자

?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