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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열병식 뒤엔 ‘권력은 총구에서’ 마오쩌둥의 메시지

중국 정부는 지난 3일의 전승절 열병식을 국내적인 정치 통합과 대외적인 위상을 과시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왼쪽부터 천안문 성루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신화=뉴시스]



중국의 전승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지난 3일 베이징 일대는 주변 지역의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푸른 하늘이 다시 만들어졌다. 베이징 시민들은 이를 ‘열병식 블루’라고 불렀다. 열병식 며칠 전부터는 방송에서 오락 프로그램이 사라졌고 아이돌 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 상영도 중지됐다. 열병식 전날 저녁시간 20여 개의 방송채널에서 항일전쟁 드라마와 기록영화가 동시에 방영됐다. 열병식 당일 중국인들은 삼삼오오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2013년 시작된 강력한 반부패 운동으로 분위기가 위축됐지만 그 와중에도 화려한 열병식을 보면서 중국의 부상을 확인하며 감격해 했다. 이들은 시진핑 체제를 지지하느냐와는 무관하게 ‘공산당이 없었으면 새로운 중국도 없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의 분위기로만 본다면 중국인들의 체제 만족도가 80%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미국 퓨 리서치)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 대통령 방중 이후] 현장에서 본 중국 열병식의 정치학

전승절 기념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천안문(天安門) 광장 일대에서 열린 열병식이었다. 천안문 광장은 중국인들에게 복합적인 기억의 공간이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1949년 10월 1일 투박한 후난(湖南)성 사투리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일어섰다”고 건국을 선언했다. 문화대혁명(66∼76년)의 광풍이 불던 시기엔 홍위병들이 광장을 붉게 물들인 채 “사령부를 포격하라”고 외쳤다. 89년에는 6·4 민주화운동 시위대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세운 곳이다.



 

열병식은 첨단 군사 장비의 공개장이기도 하다. ‘항모 킬러’로 알려진 대함탄도미사일인 둥펑(DF)-21D를 실은 차량 행렬이 천안문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스스로 이룬 투쟁의 역사 강조 건국기념일이 아니라 일제가 맥아더 사령관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45년 9월 3일을 기념해 시진핑이 천안문 성루에 올랐다. 그리고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등 전임 국가지도자를 대거 배석시켰다. 이런 가운데 2021년 공산당 창당 100년과 2049년 건국 100년이라는 ‘두 개의 백년’을 향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국내외에 선언했다. 지금 시진핑이 꾸는 ‘중국의 꿈(中國夢)’은 총과 돈을 함께 가진 ‘강성대국’을 후세에 물려주는 것이다. 중국의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회주의 핵심가치관 간판의 첫 구호도 ‘부강(富强)’이다. 다시 말해 외세에 의해 강제로 열린 근대사의 치욕을 극복하고 중국의 가치와 담론으로 철저히 무장한 중국적 근대로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는 이번 전승절 행사의 의미를 우연히 찾아온 해방이 아니라 중국 스스로 피와 땀으로 이룬 투쟁의 역사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번 열병식에서 또 하나 우리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의전이었다. 여기에는 31개국(파푸아뉴기니 대통령 추가)의 외국 정상과 정부 대표단 등에 대한 의전과 좌석 배치, 악수 순서 등에도 정교한 정치적 계산과 장치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중국은 미국의 양자 동맹국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을 각별하게 배려했다. 역대 최상의 관계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제공하지 않은 단독 특별오찬, 정상회담, 향후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참석할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연쇄회담도 했다. 특히 54년과 59년 두 차례나 천안문 성루(城樓)에 올라 마오쩌둥 옆에서 열병식을 참관했던 김일성의 자리에 박 대통령을 배치해 오늘날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진입·행진·열병·분열·해산으로 구성된 70분 동안 열린 군사 퍼레이드였다. 이것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의 말을 시진핑 시대에 재현한 것이다. 1만2000명의 병력과 200여 대의 군용기, 항공모함 킬러로 알려진 둥펑(東風)-21D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방공미사일 시스템, 대전차 미사일 등 중국이 자체 기술로 생산한 신형무기를 대거 선보였다. 군사 퍼레이드를 보면서 해외 언론들은 중국이 ‘군사적 근육’을 과시했다며 중국위협론을 다시 점화하려고 한다. 이를 사전에 의식한 중국은 둥펑 계열의 차세대 전략미사일인 둥펑-41, 중국식 차세대 스텔스기인 젠(殲)-20과 젠-31 등 최신예 전략무기는 공개하지 않았다. 시진핑도 기념연설에서 “앞으로도 평화발전의 길을 걷고 결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고, 30만 명의 병력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정상회담 앞두고 과도한 자극 피해 중국의 전승절 행사를 본 국제사회의 반응은 다양했다. 우선 주중대사를 행사장에 보낸 미국은 “중국의 권리와 권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도전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이 같은 형태의 행사가 화해와 치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고 싶다”는 속내를 조심스럽게 표현했다. 군사적 힘을 과시하는 중국에 불편함과 부담을 느꼈지만 9월 말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점차 동아시아의 아웃사이더로 밀려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의 반발은 좀 더 직접적이었다. 일본 정부는 항일전쟁의 역사를 강조한 중국에 대해 “중국은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일본 외무성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전승절 행사 참석을 유엔의 중립위반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일본 언론은 중국이 군사근육을 과시하는 데 한국이 참여한 것을 비판하면서 향후 한·일 관계가 한국의 친중국화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이번 전승절 행사는 단순한 열병식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분수령으로 볼 수도 있다. 외교 관계는 인간 관계의 연장이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9월 3일을 전후해 중국이 상대 국가를 대하는 새로운 정책을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특히 한·중 관계가 그렇다.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친 중국의 요청을 받고 숙고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협상을 전개했고 중국도 한국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하는 대담한 양보를 했다.



이러한 공감대는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한·중 양국이 공동성명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양국 간 현안을 모두 논의하면서 인식의 차이를 상당히 좁혔다. 박 대통령이 어려움을 함께 나눈 환난지교(患難之交)를 강조하자 시진핑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화답한 부분은 6자회담, 북핵 문제, 한·중·일 정상회의, 통일 문제를 깊이 논의하고 교감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중 관계는 북·중 관계를 보는 창과 거울이다. 북한 대표단 단장으로 참석한 최용해 노동당 비서는 2013년 5월 김정은의 특사로 방중해 시진핑을 만난 북한의 중국 창구다. 하지만 이번엔 중국 지도부와 면담도 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평양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를 대하는 중국의 전략적 차등, 그리고 북·중의 정치적 거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물론 그것만으로 한국 외교의 승리로 자축하기는 이르다. 무엇보다 한·중 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압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남 북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은 체제의 속성을 고려할 때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의 온도차를 확인한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70주년을 계기로 열병식과 함께 무력도발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무엇보다 중국을 결박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균열을 시도할 수도 있다.



시진핑, 방미 후 중·일 관계 개선 나설 듯 축제는 끝났다. 국제사회는 축제 이후의 질서에 대한 순응·적응·대응 방식을 놓고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우선 9월 말 시진핑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에 이어 10월 16일엔 한·미 정상회담도 열린다. 이후에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동아시아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 외교무대가 계속 열린다. 이를 계기로 동북아 질서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우선 악화일로의 중·일 관계도 대화의 실마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도 ‘일본 때리기’가 결과적으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을 강화하는 역설적 효과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일본도 중·일 관계 악화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양측은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도 이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담화에 대해 ‘절제 있는 비판’을 내놓으면서 역사와 안보 문제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관계에도 진전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좀 더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한·중 정상이 이번에 공감대를 이룬 한·중·일 정상회담이 연내에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고위급 회담으로 조성된 남북관계의 대화 국면을 동북아의 선순환 기제에 올려놓는 것이다. 변화하는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절제·인내·관성을 뛰어넘는 대담한 돌파가 필요하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짧게는 임기 후반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멀리 보면 미·중 관계가 고착되면서 한반도 문제를 우리 스스로 주도할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번 전승행사 참여를 통해 한국 외교는 사안별 선택적 지지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문제는 이를 제도화하고 외교적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방중 성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희옥 성균관대 중국대학원장 겸 성균중국연구소장. 한국외대 중국학과 졸업. 정치학 박사. 현대중국학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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