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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두드리고 정교하게 붙이고

조선 15~16세기에 만들어진 백자 편병. 앞에서, 옆에서 볼 때 각각 느낌이 다르다.



지금 서울 신사동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 신사분관에서는 보기 드문 전시가 열리고 있다.



호림박물관 ‘선과 면의 만남, 편병’전

10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는 ‘선과 면의 만남, 편병(扁甁)’전이다. 조선시대 자기 병의 일종인 편병만 모아놓았다.



편병은 말 그대로 몸체가 납작한 병이다. 두드리고 뭔가 붙여 손질을 가했다.



호림박물관이 특별한 형태의 도자기만 모아 전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릇을 형태별로 구분한 전시는 관람객, 특히 도자사를 공부하는 전공자로서는 더 없이 고마운 자리다.



게다가 이번에 나온 70여 점의 작품 중 절반 가까이가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니, 만남 자체가 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분청사기 박지연어문 편병. 조선 15세기, 국보 179호로 분청사기편병을 대표하는 명품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청동기서 비롯돼 편병의 기원은 중국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청동기로 처음 제작됐다. 제사용 그릇의 일종인데, 당시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이나 원형 및 사각형 등의 기본적인 형태 이외에 한쪽 면 혹은 양쪽 면을 납작하게 만든 편병이 사용됐다.



일찍부터 토기로도 제작됐지만 청자로 만들어진 것은 한나라 때다. 월주요 청자가 그 효시다. 이후 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납작한 편병은 중국 북방 이민족에게 둥그런 병보다 더 사랑받았다. 유목민들에게 필수적인 말 안장에는 납작한 편병이 운반하기에도 수월했고 그들의 미감에도 더 맞았다. 수나라와 당나라를 거치면서 청자와 백자, 당삼채 등 다양한 편병이 제작됐다. 형태도 원판형뿐 아니라 타원이나 직사각형에 가까운 것도 등장했다.



이민족의 나라인 요와 원에서 편병의 유행은 거의 절정기를 맞았다. 특히 편병을 눕힌 형태인 와식(臥式)편병, 소위 자라병이라고 불리는 키 낮고 몸체 납작한 편병이 새로 선보였다. 자라병은 조선 초기 상감백자나 분청사기, 청자로 제작된 유물이 남아 있다.



또 10세기 이후에는 중국 뿐 아니라 이슬람 세계에서도 몸체가 원판형인 편병이 금속기와 도기로 많이 제작됐다. 가히 편병 전성기인 셈이다. 이슬람의 편병 제작 붐은 역으로 원나라 때 동서교류의 일환으로 청화백자 편병의 유행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편병이 만들어진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몸체의 한면만 편평하게 두들긴 형태로 삼국시대 토기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 토기들에서도 한쪽 면만 두드린 편병 토기들이 제작됐는데, 동 시기 중국의 편병과는 완연하게 다르다. 고려시대 청자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자기가 탄생하는데, 바로 고려 후기 상감청자 시대에 나타난 편병들이다.



이들 편병들은 양쪽 면을 두들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편병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들 편병은 의례용이나 음식용 그릇으로 술이나 물을 담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분청사기와 백자 뿐 아니라 흑자로도 제작되고 제작기법도 진화한다.



 





아무 무늬없는 기하학적 추상의 극치 전시는 2, 3층 두 개 층에서 열리고 있다. 먼저 전시장 2층에는 조선 전기, 가장 조선적이라 불리는 자유분방하고 대담한 분청사기 편병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이들 분청사기 편병들은 하나같이 물레에서 원래 둥근 몸체를 만들고 양쪽 면을 방망이로 조심스럽게 두들겨 면을 만든 형태를 보이고 있다. 몸체는 다양한 분청사기 장식 기법과 미감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국보 179호로 지정된 ‘분청사기 박지연어문 편병’은 관람객의 시선을 오랫동안 잡아두기에 충분하다. 물레질이 끝나고 한참을 건조시킨 후 방망이로 양쪽 면을 번갈아 두들기며 남다른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장인을 한번 상상해보라.



좌우 대칭이 분명치 않아 울퉁불퉁하고 완전히 납작하지 않아 배부른 모습일지언정, 대담하게 적당히 두들기고 나면 백토를 바르고 조각을 시작한다. 몸체를 정면과 양 측면, 후면의 문양대로 나누고 그 안에 원근과 크기를 무시한 연꽃과 잎을 음각하고 그 사이를 이름 모를 물고기가 마냥 즐겁게 헤엄쳐 가는 모습을 음각했다. 그 물고기가 자기를 만드는 장인 자신인양.



윤곽선 조각이 끝나면 끝이 넓적한 조각칼로 백토를 긁어냈다. 소위 박지(剝地)기법이다. 이런 박지기법의 분청 편병들과 덤벙, 귀얄기법의 분청사기 편병들이 적당한 조명 아래 투명유를 반사하며 잘 꾸며진 전시장 여기저기에 포진하고 있다. “그래 우리는 우리 식이 있어”라는 조선식 편병의 외침을 듣는 듯하다.



3층으로 올라서면 약간은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뽀얀 백자 편병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 백자 편병들은 여러 면에서 분청사기 편병과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원료 및 굽는 온도의 차이는 물론 같은 편병이라도 제작기법이 다르다. 물레에서 원형의 몸체를 만들고 두드린 것이 아니라 몸체를 좌우 별도의 접시로 만들어 붙이고 굽과 구연부도 따로 제작해 붙였다.



이런 기법은 두드려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납작한 형태의 편병을 제작할 수 있다. 중국이나 이슬람 지역의 편병과 같은 보편적인 형태와 기법으로 조선도 세계적인 추세를 따랐다.



그런데 세상 어디에 이런 편병이 있을까. 아무런 문양 장식없이 오직 백색과 둥글넓적한 형태만으로 그 자태를 드러낸 자기라니. 조선 후기 백자 달항아리에 넉넉하고 원만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원판의 몸체와 사각의 굽, 원통 같은 구연부를 갖춘 백자 편병은 기하학적 추상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미 몇 세기 전 이런 제작 기법과 형태가 이웃 중국과 이슬람 등지에서 유행했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미적 기준과 취향에 맞춰 편병을 제작했다. 외래 문화의 주체적 도입과 적용, 한국 도자 전체를 관통하는 고집과 전통이 편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백자 청화산수초충문 양이편병, 조선 18세기

백자 청화산수문 양이편병, 조선 19세기

백자 청화매조죽문 양이편병, 조선 19세기



변화무쌍한 매력 발산하는 흑자 편병 전시장에는 무문의 백자 편병 외에도 시기별로 15세기 상감백자 편병과 17세기 철화백자 편병, 19세기 청화백자 편병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백자 상감모란문 편병’은 고려시대 상감기법을 전승·변형시켜 회백색 바탕 위에 펼쳐 보인다. 문양을 거칠게 음각하고 흑상감토를 바르긴 했지만 고려청자와는 달리 긁어내지 않고 살짝 점을 찍거나 붓질을 한 그대로다. 바탕색도 아직 철분이 덜 가신 회백색이다. 몸체와 구연부, 굽을 별도로 만들어 붙인 이 편병의 마치 빈대떡을 연상시키는 아담한 몸체와 여기에 간략하게 상감된 모란은 과도한 장식 대신 자연 그대로를 중시했던 조선 사대부의 미감을 한눈에 보여준다.



‘백자 철화국죽문 편병’은 17세기 철화백자 전성시대를 대표한다. 한 면에는 세필로 농담을 기가 막히게 조절한 전형적인 17세기 대나무 잎과 가지를, 다른 한 면에는 커다란 갈색 점 몇 개로 국화잎을 멋들어지게 그려냈다. 편병의 특성상 입체적인 둥근 항아리보다 그리기가 수월하긴 하지만 도톰한 구연부와 상대적으로 좁아진 굽바닥이 여백을 잘 활용한 몸체와 어울려 절제된 형태미와 회화의 세계를 열어준다. 17세기 국난 극복의 어려움 속에서 중국에서 수입해야하는 값비싼 청화백자를 대신했던 철화백자, 그것도 편병은 이렇게 선조들의 삶을 채웠다.



그런가하면 ‘백자 청화산수초충문 양이편병’은 달라진 수요층의 기호에 맞추는 편병의 변화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청백의 색상을 바탕으로 각이 진 굽과 몸체 양 측면에 부착된 다람쥐는 이제껏 보던 조선백자 편병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를 휩쓸던 중국풍 양식인 것이다.



어깨에는 도안화된 수복(壽福) 글자가 장식 문양처럼 적혀있고 몸체 양면에는 테두리 안에 소상팔경(瀟湘八景圖)의 한 장면인 동정추월(洞庭秋月)같은 산수문과 괴석·국화·나비가 어우러진 초충문을 그려 넣었다. 필치는 조방한 편이지만 이전에 비해 화사하고 훨씬 장식적이다. 전시장에는 측면에 다람쥐나 고리를 부착한 19세로 추정되는 백자 편병들이 여러 점 있어 시대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더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뜻밖의 편병들이 진용을 갖추고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흑자 편병이다. 백자 태토 혹은 더 철분이 많이 섞인 태토에 산화철이 5~10% 정도 함유된 흑유를 시유하여 가마 불꽃의 산화와 환원 상태에 따라 변주된 흑색에서 황색까지의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조선에 이런 그릇이 있었나”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할 정도다. 가마 안의 불이 춤추는 것에 맞춰 유약 역시 자연스레 흘러내린 덕분이다. 우리 그릇이 얼마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에 충분하다.



전시된 흑자 편병은 크게 두 종류로 몸체를 두드린 것과 붙인 것으로 나뉜다. 마치 분청사기와 백자 편병의 제작방법을 모아 놓은 듯하다. 몸체는 아무런 문양이 없는 것도 있지만 음각으로 용이나 물고기, 수복의 글자를 새겨 넣은 것도 있다. 19세기의 장식적 특징인 몸체 옆면에 고리와 다람쥐를 붙인 것도 있어서 조선 전 시기 편병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관람객들이 쇄도해 ‘세계 편병전’을 호림에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



 



글 방병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bjsbang@korea.ac.kr, 사진 호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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