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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순간을 냄새로



콧속에 400개가 넘는 후각수용기를 가진 인간은 수천 가지, 아니 수백만~1조 가지 냄새와 냄새 기억을 구분할 수 있다. 또 냄새 기억은 좋든 나쁘든 거의 영원히 지속된다. “시각 기억은 3개월이 지나면 30%밖에 안 남지만 냄새 기억은 1년이 지나도 100% 남는다”고 베를린의 향기 예술가 시셀 톨라스가 말했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그런 특성을 이용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뉴스위크] 인생의 중요한 일들을 맞춤 향기로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냄새 기억 키트’ 개발해



머지 않아 그렇게 될 것 같다. 톨라스는 최근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슈퍼센스 랩과 손잡고 ‘냄새 기억 키트(Smell Memory Kit)’를 개발했다. ‘냄새 스냅 사진(smell snapshots)’을 찍는 최초의 상품이다. 이제 멋진 휴가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셀카를 포스팅하듯이 냄새 기억을 남길 수 있다. “결혼식이나 여행 등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냄새를 부여해 저장하는 기능”이라고 톨라스는 말했다.



200개 한정판으로 나온 첫 번째 키트는 슈퍼센스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입 할 수 있다. 이 키트의 저장고에는 공기부터 사업, 도시, 예스(Yes), 동물원까지 26개의 큰 항목 밑에 총 1000가지의 냄새가 들어 있다. 가격이 109달러인 이 키트에는 금속제 캡슐 1개와 3가지 냄새 견본이 봉인된 앰플 속에 들어 있다.



내가 베를린의 실험실로 톨라스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앰플 몇 개를 들고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안에 담긴 냄새가 밖으로 퍼지게 했다. 한 앰플에서는 감귤과 석류향이, 또 다른 앰플에서는 선탠 로션과 피튜니아를 연상시키는 냄새가 났다. 쉽게 설명할 수 없고 꽃 향기와는 거리가 먼 냄새였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당신이 맡아본 어떤 냄새와도 다른 종류”라고 톨라스는 설명했다. “이 키트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은 뭔가에 실제 냄새와 일치하지 않는 ‘냄새 코드(smell code)’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해준다.



‘냄새 스냅 사진’을 찍으려면 먼저 뭘 기억하고 싶은지 정한다. 그런 다음 한 앰플을 열어 냄새를 맡는다. 나중에 그 순간(또는 도시, 날씨, 감정, 함께 있었던 사람 등)을 기억하려면 그 냄새를 다시 맡으면 된다(앰플의 냄새는 온라인으로 다시 주문할 수 있다. 5㎖에 11달러). “냄새는 인간의 감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고 톨라스는 말했다.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에서 태어난 톨라스는 예술과 화학, 수학, 언어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낭만적이고 상투적인 향기(첫사랑이 사용했던 향수나 어머니가 주방에서 요리할 때 나던 냄새)의 영역에서 냄새의 문화적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예술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1990년부터 냄새 기록보관소를 확장해 왔다. 냄새의 위키피디아라고 할 수 있는 이 보관소에는 현재 6000가지 이상의 냄새가 등록돼 있다. 이 작업은 향기와 맛을 제조하는 회사 IFF(이 회사는 비욘세의 ‘라이즈’ 향수 제작에 도움을 줬다)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IFF는 톨라스의 실험을 재정적·기술적으로 지원하고 톨라스는 이 회사의 연구를 자문한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냄새를 제조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냄새는 독일 드레스덴의 군사역사박물관에서 상설 전시 중이다. “그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거의 다 사망해 역사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죽은 말과 최루가스, 시체와 땅의 냄새가 뒤섞인 혐오스런 냄새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맡고 나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게 된다. 하지만 박물관 측은 역사가 잊혀지기 전에 사람들에게 정보를 줄 목적으로 이 냄새의 전시를 기획했다.”



톨라스의 냄새 기록보관소(그녀는 이것을 ‘NASALO’ 냄새 사전이라고 부른다)에 등록된 냄새는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갖고 있다. 이 사전에 기록된 모든 단어가 그렇듯이 NASALO도 톨라스가 만들어낸 언어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의 저자 노트에 ‘과학자들이 색상을 나타내는 언어를 개발한 사실을 생각할 때 냄새를 나타내는 언어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썼다. ‘이 단어들을 내가 만들어내긴 했지만 임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실험실에 냄새를 알파벳 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일례로 콘크리트 냄새에는 ‘BEETEE’, 패스트푸드의 냄새에는 ‘FAFEES’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냄새 중 일부는 톨라스가 1998년부터 진행해 온 ‘시티 스멜스케이프(City SmellScape)’ 프로젝트의 일부로 하수도부터 연주회장까지 다양한 곳에서 채집됐다. 2004년 그녀는 베를린의 4개 지역을 상징하는 냄새를 제조했다. 또 프랑스 파리와 스웨덴 스톡홀름, 멕시코 멕시코시티, 미국 디트로이트, 노르웨이 오슬로를 상징하는 냄새도 만들었으며 현재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냄새를 만드는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또 다른 프로젝트는 세계 5대양의 냄새 지도 제작이다. 2006년에는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리스트 비주얼 아트센터에서 섬뜩한 전시회를 열었다. 관람객이 벽을 긁으면 불안장애를 앓는 이름 모를 남자들의 땀 냄새가 풍겨 나오도록 장치됐다.



톨라스 외에도 현재 향기 예술 부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몇 명 더 있다. 뉴욕의 마티나 워지니액은 지난해 하퍼스 바자 잡지에 향수 광고를 가장해 자신의 땀 냄새를 실었다. 브라이언 괼첸로이터는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로스앤젤레스 10개 지역의 냄새를 제조했다. 그렇게 제작된 ‘센트-스케이프(scent-scape)’ 지도를 지난해 샌타모니카 미술관에서 전시했다. 한편 ‘뉴욕의 냄새는(NY Smells Like)’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페터 드 퀴페르는 뉴욕 주민들로부터 냄새를 수집했다. 그는 또 최초의 냄새 인식 아이패드 앱 올패키오(Olfacio)를 공동 개발했고 ‘향기 소나타’를 연주하는 최초의 향기 피아노 올팩티아노(Olfactiano)를 발명했다.



톨라스는 자신의 작품 판매를 대행할 갤러리를 지정하지 않았으며 웹사이트 개설 제안도 거절했다. 그녀는 “냄새를 웹에 올릴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 모른다. 하버드대학의 데이비드 에드워즈가 스마트폰 앱 오스냅(oSnap)을 이용해 특정 음식 냄새를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냄새 기억 키트’는 톨라스와 비엔나에서 활동하는 생물학자 플로리안 캅스와의 오랜 동료관계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두 사람은 친구 소개로 만났는데 캅스가 톨라스에게 그녀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상품으로 생산하라고 독려했다. 그들은 함께 이 키트의 아이디어를 내고 지난 1년 동안 작업해 왔다. 지난 6월 캅스와 톨라스는 안드레아스 횔러, 니나 우그리노비치와 함께 비엔나에 슈퍼센스 스토어를 공동 창업했다.



톨라스는 이 아이디어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말했다. “20년 동안의 내 작업을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캅스는 “이 상품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코가 지닌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첫 단계”라고 말했다.



글=나자 사예즈 뉴스위크 기자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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