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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가 사라져야 우리가 산다





[뉴스위크] 92세 짐바브웨 대통령 무가베의 기력 쇠하면서 권력 다툼 극에 달해 … 영부인조차 대통령 꿈꿔

금요일 오후마다 초목이 우거진 수도 하라레에선 짐바브웨의 정신분열증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치피시테 쇼핑센터 뒷편을 둘러싸고 있는 음식점 틴루프에선 햇빛에 검게 탄 전직 백인 농부들이 모여 점심식사로 갈비구이와 차가운 캐슬 맥주를 즐기며 좋았던 지난날을 돌이킨다. 음식점 주인 리스 브레이는 텡웨에서 농장을 운영하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군중에게 쫓겨 도망쳤다. 짐바브웨 정부가 백인 소유 농장을 빼앗아 흑인 군부 인사들에게 넘겨준 탓이다. 요즘 그는 아픈 과거를 웃음으로 떨쳐내고 식당 주인으로서의 새 삶을 꾸려나간다. “짐바브웨인의 삶이 그렇다. 우리는 계획을 세운다”고 브레이는 말했다.



하라레의 중심가 엔터프라이즈 로드엔 골목마다 싸구려 휴대전화부터 맥주 캔으로 만든 코뿔소·코끼리 모형까지 없는 게 없는 노점들이 즐비하다. 이들을 지나 800m 정도 길을 따라가면 보다 현대적인 사람들이 약 1만6000㎢에 펼쳐진 아름다운 정원에서 퓨전 음식을 먹고 남아공산 샤도네 와인을 마신다. 아만지 레스토랑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이지리아 출신 부부 앤드류와 줄리아 마마가 운영한다. 그들은 나이지리아의 종파 간 폭력사태를 피해 보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아프리카 국가 짐바브웨로 이주했다. 외교관·비영리기구 직원·자원봉사자·유럽에서 온 의사들이 아만지 래스토랑의 주요 고객이다. 이들로 인해 하라레는 마치 풍요롭고 평범한 도시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짐바브웨는 풍요나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과 여당 짐바브웨 애국전선(ZANU PF)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면서 나라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경제적으로 파산한 데다 올해엔 기록적인 수준의 기아를 기록했다. 옥수수가 100만t 이상 모자란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무가베 정부는 유엔에 서한을 보내 유엔세계식량계획을 발동시키는 데 실패했다. 야당 국회의원 에디 크로스에 따르면 이 실패는 무가베의 “자존심 아니면 무관심 때문”이다. 수백 만 짐바브웨인의 운명이 무가베의 심기에 달린 듯하다.



동시에 제조업·광업·농업 등 한때 이 혁신적인 소국의 성장 동력이었던 산업 부문은 천천히 숨이 멎어가고 있다. 두 번째로 큰 도시 불라와요는 과거 산업 생산량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1980년 독립 후 제조업은 짐바브웨 국내총생산(GDP)의 27%를 차지했고 15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제공했다. 지난해에만 불라와요에서 100개가 넘는 기업이 문을 닫았으며 영업 중인 기업 가운데 60%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저 버티기에 급급하다. 계획을 세우면서 말이다.



그런 무가베 정권이 35년 간의 독재 끝에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올해로 92세를 맞이한 무가베의 사망 이후 공석을 노리고 파벌이 형성돼 내분을 벌인다. 짐바브웨 온 국민이 무가베의 죽음을 기다린다. 한 달 동안 미개척지부터 시골 지역, 주요 대도시까지 짐바브웨 전역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말을 꺼낼 때마다 “그 늙은이가 죽으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가베의 죽음은 새로운 짐바브웨로 향하는 결정적 순간이 될 것이다. 과거 거국일치내각의 각료였던 데이비드 콜타트는 이후 닥쳐올 혼란을 경고했다. 그는 1980년 짐바브웨가 독립한 이래로 “지금처럼 무력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시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ZANU PF·군대·중앙정보부·경찰이 모두 분열돼 있다. 게다가 권력도 공백 상태다. 짐바브웨는 나라든 국민이든 사상 최악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조이스 무주루(60)다. 암살당한 솔로몬 무주루 장군의 아내이자 전 부통령이기도 하다. 또 한 명의 후보 에머슨 무난가과(69) 부통령은 당내 스탈린주의 강경 보수파의 화신이다. 무주루는 지난해 국회에서 제적됐다. 무가베의 아내 그레이스가 반역 혐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후 무주루는 솔로몬 암살범이 그녀에게 남긴 농장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무가베 이후의 정권을 구상 중이다. 민주화운동(MDC) 정당의 하원의원 에디 크로스는 무주루가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차라리 ZANU PF에서 조용히 지낸다면 목숨은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무가베 정권은 정적들에게 가차없었다. 짐바브웨는 겉으로는 5년마다 선거를 실시하고, 국영 언론부터 반무가베 독립 언론까지 망라하는 언론의 자유를 독려하고, 엄선한 법관들을 통해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등 서구식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실상은 정권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는 요소를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스탈린주의 국가다. 지난 3월 초엔 언론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이타이 자마라가 번호판 없는 차에 실려 납치된 이래 행방불명됐다.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에드워드 친도리-치닝가 전 ZANU PF 광업위원회 의장은 마랑게 다이아몬드 광산과 관련된 부정부패를 공개 비판했다가 운전 중 사망했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교통사고였지만, 야당 정치인들은 그가 운전 중에 머리에 총을 맞아 죽었다고 주장했다. 친도리-치닝가는 사망 후 24시간 내에 매장됐다. 부검도 없었다. 크로스 의원은 친도리-치닝가의 용감한 의회 연설을 돌이키며 “그가 ‘그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10일 뒤 사망했다”고 밝혔다.



당 주요 인사조차도 정권에 위협적이라고 여겨지면 가차없이 숙청당했다. 솔로몬 무주루는 무가베의 신뢰를 받는 장군이자 독립전쟁에서 함께 싸운 전우였다. 그러나 2011년 괴한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무주루가 자신의 농장에 도착하자 괴한들이 그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지시한 뒤 총을 쐈다. 그들은 시신을 침대 위에 옮기고 폭발물을 설치한 뒤 집에 불을 질렀다. 이후 조사에서 증인들은 무주루의 집에 불이 나기 전 총성을 몇 번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증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며 시신을 찾아달라는 유가족의 요구를 묵살했다.



피의 다이아몬드



친도리-치닝가와 무주루의 갑작스런 죽음에는 여러 설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무가베의 리더십을 비판했으며 지도자가 바뀔 때가 됐다고 믿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무가베가 마랑게 다이아몬드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고 규탄했다. 마랑게 광산은 일부 사람의 배만 불렸을 뿐 국고에는 조금도 기여하지 못했다.



2008~2013년 마랑게 광산에선 1억2000만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채굴됐다. 120억 달러에 해당하는 가치였다. 마랑게 광산은 당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산지였다. 전 세계 수요의 10%가 이곳에서 생산됐으며, 매장랑 역시 2억 캐럿으로 러시아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지금은 누구도 마랑게 다이아몬드의 정확한 가치를 모른다. 공식 기록이 거의 없고 국가 재무부로 흘러들어가는 돈 역시 없다. 짐바브웨엔 국가 장부가 2개인 것이 분명하다.



그 숨겨진 장부에서 막대한 양의 돈이 ZANU PF의 수중에 들어갔다. 2013년 미국 탐사보도 단체 ‘100명의 기자들’은 다이아몬드로 인한 수익 10억 달러가 어떻게 그해 총선 조작에 사용됐는지 명시된 짐바브웨 중앙정보부 문서를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야당 지도자 모건 창기라이가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ZANU PF는 이스라엘 기업 니쿠브 인터내셔널 프로젝트에 최소 1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선거 조작을 의뢰했다.



무바다 다이아몬드 컴퍼니, 안진, 차이나 소낭골 등 7개 주요 업체가 마랑게 광산에서 다이아몬드를 채굴한다. 이 모든 업체는 짐바브웨 군부 및 ZANU PF 정치인들과 연결돼 있다. 예를 들면 무바다의 대표는 무가베의 전 조종사였던 로버트 물랑가다. 그는 2003년 창기라이의 반역죄 재판에서 검사측 증인으로 나오기도 했다.



안진은 정체가 불투명한 짐바브웨 업체 매트 브론즈와 중국 건설업체의 합작회사지만, 사실은 짐바브웨 장군들과 중국 고위 관료들이 함께 설립했다. 차이나 소낭골은 미로처럼 꼬인 지주회사들을 거쳐 퀸즈웨이 그룹으로 이어진다. 퀸즈웨이의 소유자는 무가베 정권에 적극 협조한 혐의로 미 재무부의 제재를 받고 있는 샘 파다. 영국의 부패 감시단체 글로벌 위트니스에 따르면 짐바브웨 중앙정보부 유출 문서를 바탕으로 파악할 경우 샘 파의 회사는 무가베의 비밀경찰에 차량 200대와 1000만 달러를 기부하고 나서야 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권을 얻었다.



“짐바브웨에서 가장 윤리적인 정치인”



끊임없이 거론되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전 ZANU PF 장관 출신 심바 마코니다. 그는 2000년대 중반 당에 환멸을 느끼고 사임한 뒤 2008년 무가베와 창기라이에 맞서 대선에 출마했다. 1차 선거에서 창기라이가 51%, 무가베가 40%를 기록했고 경쟁자 같은 재정적·조직적 지원이 없었던 마코니는 9%를 얻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정계에 남았다. 많은 이들은 그가 국민을 위한 대통령감이라고 기대한다.



나는 마코니가 운영하는 미술관 겸 식당 과무롱고에서 그를 만났다. 마코니는 다음주 보궐선거에 출마할 그의 새벽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250㎞를 달려 무타레까지 갈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마코니는 선거에서 이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ZANU PF가 선거 결과를 조작하리라고 본다.”



한때 MDC의 창기라이를 지지했던 마코니는 무가베를 축출하기 위해 ‘대연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의 정치 여정은 길었다. 1970년대 짐바브웨 독립전쟁 당시 영국 리즈대학에서 공부하고, 독립 초기에 귀국해 ZANU PF에 입당했다. 마코니는 그때부터 무가베와 그 일당들이 독립의 기본 이념에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돌이켰다. “지금 지도자들은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독립운동 당시의 이념·원칙·야망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 마코니는 2008년 탈당했다. “내가 당을 떠나겠다고 하자 한 당원은 내가 일주일 내로 땅에 파묻힐 것이라고 장담했다.” 7년 뒤에도 그는 살아남았다. ZANU PF측에서 보자면 눈엣가시지만 여러 해외 외교관들은 그를 “짐바브웨에서 가장 윤리적인 정치인”이라고 본다.



문제는 짐바브웨 정치에 국민이 원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적 사안을 다룰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짐바브웨 정치는 ZANU PF가 좌우하고, ZANU PF는 무가베가 조종한다. 그러나 마코니는 오랜 세월이 늙은 독재자의 장악력을 빠른 속도로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육체적으로 보더라도 무가베는 40분 정도 서 있는 것이 고작이다. “무가베는 어떤 측면에선 천재였지만 이젠 변했다. 나는 언제,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다.”



마코니는 1980년대 말 무가베가 동지 셋을 잃었다고 말했다. 모리스 냐굼보는 쥐약을 먹고 자살했다. ZANU PF 창당인 중 한 명이었던 에노스 누칼라와 무가베를 비판하던 에드가 테케레는 1988년 당에서 제명됐다. “무가베와 동등한 권력을 쥐고 무가베의 결정에 반대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그들뿐이었다. 무가베를 민족주의 운동으로 끌어들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마코니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말에 따르면 무가베가 귀 기울이는 대상은 아내 그레이스다. 지난 1년 동안 높아진 그녀의 위상은 짐바브웨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놀라울 정도다. 그레이스는 대통령 사무실의 타이피스트였다. 그레이스와 무가베는 불륜 관계가 됐고, 무가베의 첫 아내 샐리가 저지했지만 그녀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샐리가 사망한 뒤인 1996년 두 사람은 결혼했다. 이제 50이 다 돼가는 그레이스는 영부인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에서 ZANU PF의 여성연맹을 이끄는 지도자로 변모하면서 당 내에 정치적 입지를 마련했다. 그와 함께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지 두 달만에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아 의구심을 자아냈다.



마코니는 무가베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으며 “그가 죽고 나면 짐바브웨인의 자존심과 품위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권력을 유지하려는 무가베 왕조의 헛된 시도는 여전히 우려의 대상이다. 아내 그레이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레이스는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그녀는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 짐바브웨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다.”



글=그레이엄 보잉튼 뉴스위크 기자

번역=이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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