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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짧은 이불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남윤호입니다. “뭐를 마이 멕여야지, 뭐.” 10년 전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온 동막골 촌장의 이 대사, 기억하십니까. 인민군 장교가 “고함 한 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유?” 하고 묻자 그렇게 답하더군요. 성장과 복지라는 어려운 말을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요즘처럼 복지와 증세를 놓고 논쟁이 뜨거울 때 촌장에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뭐를 어떻게 마이 멕일 수 있소?” 하며 말입니다. 그 답으로 너무도 쉽게 증세를 주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는 비현실적이다, 복지를 위해선 돈이 더 필요하다, 따라서 세금을 더 걷는 수밖에 없다…. 대략 그런 논리더군요. 특히 지난해 세수가 목표치에 미달하자 여기저기서 증세를 더 가열차게 외치는 분위기입니다. 그 기세가 거의 ‘닥치고 증세’입니다. 경기침체로 세금이 잘 안 걷히는데, 세율을 높인다고 세수가 화수분처럼 늘어나겠습니까. 연말정산 파동을 겪어서인지 소득세 인상론은 잠잠해진 대신 법인세를 높이자는 주장이 기운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대기업의 세 부담이 너무 낮으니 왕창 높이자는 것입니다. 돈 잘 버는 대기업들에게 세금 더 내게 하겠다는 얘기지요. 정의롭게 보이기도, 진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에 다른 의견을 내거나 복지조정을 주장하면 곧바로 꼴통 아니면 기득권층으로 몰리곤 합니다. 복지조정을 꼭 반(反)복지로 볼 이유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요즘 복지를 확대하자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방법론에서 의견이 다를 뿐입니다. 당장의 복지조정론 역시 그런 차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문곡직하고, 증세냐 아니냐, 이 말 하나로 편을 가릅니다. 증세론은 어느새 진영논리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세금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연말정산 파동에서 납세자들이 증세에 얼마나 민감한지 잘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기업 역시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근로자들은 말로 항의하지만, 기업은 행동으로 저항합니다. 자본이동이 자유로운데 굳이 고세율 국가에서 기업활동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영어에 ‘race to the bottom’이라는 말이 있지요. ‘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좀 어색하게 번역되더군요. 자유무역이 정착된 글로벌 시대에 모든 국가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앞다퉈 규제를 없애거나 세금을 낮춘다는 뜻이지요. 법인세 역시 인하 경쟁에 따른 하향 수렴화 추세에 있습니다. 복지를 위해 우리가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복지와 재정은 마치 짧은 이불과도 같습니다. 아래로 내려 덮으면 어깨가 춥고, 위로 올려 덮으면 발이 시리겠지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편하지만 그냥 웅크리고 자거나, 돈 들여 큰 이불을 새로 장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큰 이불 살 돈을 어떻게, 누가 마련하느냐입니다. 이 상황에서 기업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제한된 자원으로 가능한 최대의 과제를 수행하려 할 겁니다. 먼저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할 과제의 리스트를 만들고, 과제별 소요예산을 산정하겠지요. 그 다음 가용 자원의 범위 내에서 무엇을 언제부터 추진한다는 공정표에 따라 일을 시작할 겁니다. 만일 꼭 해야 할 일인데 돈이 모자란다면, 빚을 내서라도 하겠지요. 급하지 않은 일이라면 여유 있을 때로 미뤄둘 수도 있습니다. 그게 순리 아니겠습니까. 뭐든지 무리하고 서두르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 복지와 증세 사이엔 거쳐야 할 단계와 과정, 그리고 논의해야 할 담론이 있습니다.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덜커덕 증세부터 하자는 주장은, 가계부 한 번 안 써본 솜씨로 거칠게 만든 공약가계부와 똑같이 조악합니다. 자칫 증세만 있고 복지가 빠진,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일본도 소비세율을 10%로 높이겠다며 1단계로 지난해 5%에서 8%로 인상한 바 있습니다. 그 뒤 일본경제가 어떻게 됐습니까. 잘 나가던 아베노믹스의 기세는 꺾이고 성장률은 곤두박질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아베 정부는 증세라는 임상시험을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라면 어떻겠습니까. 국민들이 정부의 무엇을 보고 선뜻 세금을 더 내겠습니까. 비효율과 무능으로 손가락질 받는 정부에게 ‘자, 복지에 내 돈 더 써주십시오’ 하며 세금을 뭉텅 더 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 정부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사회경제적 제도를 바로잡고,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습니까. 증세에 앞서 짚어 봐야 할 게 또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재정’이라는 재정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습니까. 국회와 정부는 복지증세에 앞서 그에 먼저 답해야 할 겁니다. 증시는 무턱대고 서두를 일이 아닙니다. 천천히 서두를 일입니다. 벌이와 씀씀이를 맞추지 못하면 큰일난다는 건 상식입니다. 복지지출을 GDP의 10%만 잡아도 수지를 못 맞추면 거덜나고, GDP의 30%로 높여도 수지를 맞추면 견딥니다. 지속가능한 복지가 되려면 수지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며칠 전 최경환 부총리는 “복지 수준과 세금 부담, 재정수지의 최적 조합을 맞추는 게 현실적인 답”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의 말이 정답으로 인정받으려면 그에 부합하는 정부의 노력과 국민에 대한 설득이 필요합니다. 옳은 말을 했으니 옳은 행동으로 이어가길 기대합니다. 금주 중앙SUNDAY는 진영 논리로 변질된 증세론에서 벗어나 공평과세, 수지 균형, 재정 민주주의 등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안들을 다루겠습니다. 또 박근혜 정부 복지 공약의 진척도를 살펴보고, 세제와 세정을 두루 꿰고 있는 원로 전문가의 말도 들어봅니다. 지난주 전투복 차림의 요르단 국왕 사진에 국내 민심이 움직였습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단호하고 결연히 맞서는 지도자의 모습을 잘 보여줬기 때문일까요. 인터넷에선 ‘명예신하’를 자처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뒤집어 보면 우리의 정치 리더십에 대한 불안과 불만의 표시 아닐까 합니다. [관련기사] [사설] 요르단 국왕의 ‘전투복 메시지’이슬람국가(IS)에 인질로 붙잡혀 있던 미국인 여성이 사망한 뒤 미국 지상군 파병이 임박해지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처럼 대규모로 정규군을 파견하진 않는다지만, 미국의 군사개입 수준은 어떤 방식으로든 급속히 강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금주 중앙SUNDAY는 미국의 군사개입이 몰고올 국제정세의 변화를 짚어보겠습니다. [관련기사] “미 여성 IS 인질 사망”IS “요르단 공습 탓” … 외신 “살해 뒤 책임 떠밀기” 다음주 설 연휴입니다. 설을 기준으로 한다면 새해 인사가 여전히 유효하겠지요.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두루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연휴 중엔 VIP독자 레터도 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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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