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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비토크라시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남윤호입니다. 오는 16일로 세월호 참사 1주기입니다. 그날의 충격과 안타까움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의 한(恨)과 슬픔은 깊디깊은 바다보다 더 깊습니다. 시간은 무정하게도 흐르더군요. 1년이 됐습니다.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에 대해 삼가 명복을 빕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수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을 질책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럼 정부는 과연 무엇인가요. 사전에는 ‘국가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기구’라고 돼 있더군요.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분들은 대체로 ‘기구’를 ‘사람’으로 상정하고 논의를 진행하곤 합니다. 그래야 비판의 대상을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주로 대통령 이하 고관대작들, 또는 좀 더 넓게 공무원 집단을 정부로 본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특정 장차관이나 관료의 실책과 무능을 곧 ‘정부의 무능’으로 일반화시키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 공무원들 하나하나 뜯어보면 결코 무능하지 않습니다. 좋은 대학 나와 고시 패스한 분들이 고위직에 득실득실합니다. 고위직으로 올라가려면 어지간한 능력 없이는 안됩니다. 요즘엔 7급, 9급 공무원 시험에도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왜 무능합니까. 정부를 의인화하면 몇몇 꼴 보기 싫은 사람을 규탄하고, 억누르는 쪽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관피아 망국론에 근거한 소위 관피아 방지법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그것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보다 역할을 감안하면 다른 각도로 정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정책을 결정하고, 법을 시행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일, 즉 권력을 시야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으려면, 권력의 역량과 한계를 먼저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유능과 무능은 상대적인 평가입니다.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면 무능의 낙인이 찍힙니다. 정치학자들은 국민의 기대수준이 정부의 능력보다 훨씬 빠르게 팽창하는 데 주목합니다. 새뮤얼 헌팅턴이 대표적이지요. 그는 이를 ‘기대상승의 혁명’이라 했고, 그 좌절을 정치사회적 불안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경제성장에 따라 점점 두터워진 중산층은 더 좋은 공공 서비스를 원하는 법이지요. 권리의식도 급상승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도 커집니다. 이게 현실에서 배신당하면 권력에 대한 반발과 저항으로 돌변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부 불신 역시 국민 기대와 권력 역량 사이의 괴리에서 자라난 것 아닙니까. 과거에도 대형 참사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코너에 몰린 적은 없었습니다. 과거 정부가 유능해서였겠습니까. 국민의 기대는 한껏 팽창했는데, 정부의 힘은 그를 따르지 못하니, 국민은 좌절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것 아닐까요. 정부가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하는 국민적 바램의 모자이크가 산산조각 난 셈입니다.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브라질의 페르난두 카르도주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곤 한다. …실제 행사할 수 있는 권력과 국민이 바라는 것 사이의 큰 간극은 어떤 국가수반도 뛰어넘기 어려운 압력의 근원이다.” 압력은 권력에 대한 비판, 견제, 간섭, 공격으로 나타납니다. 독재국가의 민주화 운동과는 다른 양상입니다. 민주국가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양한 단체, 이익집단, 또는 그냥 개인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전문성, 이익,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발언합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모이제스 나임은 『권력의 종말』이란 책에서 이를 마이크로 파워(micropower)의 등장으로 규정했습니다. 사사건건 개입하며 권력에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미시권력들을 분야별로 실감나게 정리했더군요.미시권력의 팽창엔 장단점이 있습니다만, 나임은 ‘권력의 쇠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더 강조합니다. 즉 정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해야 하는데, 수많은 미시권력에 치여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는 겁니다. 권력의 침식이 지나칠 경우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나임은 이를 소인국 릴리퍼트에서 밧줄에 꽁꽁 묶인 걸리버에 비유했습니다. 권력이란 무조건 견제해야 한다지만, 그게 늘 옳으냐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지나친 견제와 균형에 따른 정치 시스템의 결함을 가리켜 ‘비토크라시(vetocracy)’란 말을 썼습니다. 미국 정치를 두고 한 말이지만, 우리의 상황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반복되는 대선 불복, 진영논리에 따른 대립, 그에 따른 정국의 교착상태가 그렇습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불신과 저항은 더 심해졌습니다. 권력의 침식, 비토크라시의 증세가 바로 이것 아닙니까. 그 끝은 무엇이겠습니까. 정치와 정부의 마비일 겁니다. 이를 벗어나려면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박근혜 정부 좋으라고 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다음, 또 그 다음 정부를 위해 꼭 필요한 겁니다. 누가 권력을 잡아도 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어야 책임도 상응하게 지울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부에 대한 불신과 공격은 민주주의를 향한 긴 여정의 한 고비일 수 있습니다. 민주화는 잘 닦인 신작로만 걷는 게 아닐 겁니다. 때로는 울퉁불퉁한 길도, 뒤로 돌아가는 구간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 국면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주장하면 “독재로 돌아가자는 거냐” 하며 거부반응을 보이는 분이 적잖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로서 해야 할 일, 그리고 권력의 신념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일은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게 아닙니다.민주주의를 구현하면서도 권력의 침식을 피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기엔 우리의 여건이 너무나 엄중합니다. 금주 중앙SUNDAY는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1년간 우리 정부가 얼마나 ‘리셋’을 했는지 점검해봅니다. 무능을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개혁은 과연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을까요. ‘언니, 저 마음에 안들죠’라는 말이 갑자기 유행하게 된 두 연예인의 말싸움. 지난주 중앙SUNDAY는 연예계의 작은 스캔들을 사회심리학적으로 다뤄봤습니다. 반말에도 권력관계가 담겨 있다는 분석, 흥미롭지 않습니까. 단순한 흥미거리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계속 발굴하겠습니다. [관련기사] 친근·낮춤, 두 얼굴의 반말 … 좌표 삐끗하면 졸지에 폭발 예원·태임 설전으로 본 반말의 사회학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됐습니다. 결국 공은 국회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그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국회로 가면 갈등만 증폭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대타협은 결렬됐지만 대화까지 중단돼서는 안 됩니다. 그 진행상황, 계속 주시하겠습니다. [관련기사] 국회로 가면 갈등만 증폭 … 정부 주도 플랜B 마련해야 [전문가 긴급 좌담] 결렬 위기 맞은 노사정 대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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