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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백색부패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남윤호입니다. ‘성완종 리스트’의 파장이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마른 수풀에 불 번지듯 합니다. 누구보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큰 타격을 입은 모습입니다. 품으셨던 큰 꿈은 내려놓고 빨리 출구를 찾아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자칫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렵게 될지도 모를 지경입니다.주변엔 이 총리의 말에 실망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총리는 국회에서 돈 받은 증거가 나온다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돈 받은 증거만 없으면 깨끗하고, 총리 자격이 있는 겁니까. 또 총리에겐 목숨이 그리도 가볍습니까.이 발언으로 이 총리에 대한 평가는 급전직하했습니다. 돈을 받고, 안 받고의 차원을 이미 떠났습니다. 삶의 궤적에 차곡차곡 쌓아온 인간 이완구의 격(格)과 덕(德)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근본적인 실망과 회의가 들지 않습니까. 증거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그와 별개의 일입니다. 정치학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자면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흠집 난 총리가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요. 하기야 이게 어디 총리 한 분의 문제이겠습니까. 고비용 구조로 자리잡은 우리 정치 시스템의 폐해로 봐야 할 듯합니다. 정치인 입장에선 사사롭게 착복한 것도 아니고 선거 비용으로 썼는데 무슨 잘못이냐, 하는 의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요긴한 실수요 자금이므로 불법이나 부정이라는 감각이 둔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그런 식이라면 선거철에 돈 주고받는 건 관행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법이지만 어느 정도 관례로 용인되는 이른바 ‘백색부패(white corruption)’로 대충 넘어간다는 것이지요. 역설적이지만, 부패의 당사자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불법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데 드는 비용,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편익, 그리고 만에 하나 들통나 처벌될 위험까지 계산한 결과, 플러스 기대값이 나오기 때문에 불법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이쯤 되면 죄의식이 싹틀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의리라느니, 신의라느니, 하며 듣기 좋은 말로 불법을 합리화할 겁니다. 이게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차제에 강력한 처벌을 동원하든, 현실을 감안해 제도를 바꾸든, 관례와 불법 사이의 희미한 경계선을 확실히 그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민심의 반응은 심상찮습니다. 증거가 불충분하다, 공소시효가 지났다, 하며 법리를 들먹이며 머뭇거릴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런 시도는 펄펄 끓는 물 주전자의 뚜껑을 억지로 닫아보려는 무모한 짓입니다. 그 뒷감당을 누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다는 여론이 비등해지면, 특검이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제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당사자들은 잘 판단해 처신하길 바랍니다.이런 종류의 부패 스캔들이 터져나오면 사회 전반에 불신과 냉소가 쫙 퍼집니다. 특히 부패를 막지 못한 정권에 대해선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국정운영의 동력 상실로 이어집니다. 정부 주도의 개혁 작업 역시 개점휴업의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초반 미국 CIA의 한국 책임자였던 피어 드 실바는 “정부의 부패를 바라보는 사회는 정부에 대한 존경심을 잃을 수밖에 없고, 이는 정부의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부패가 사회불안의 커다란 위협이라는 지적,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맞는 말 아닙니까. 그 피해는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돌아가는 법입니다. 영화 ‘친구’의 끝부분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준석이 법정에서 죄를 인정한 이유에 대해 교도소로 면회 온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쪽팔리서, 동수나 내나 둘다 건달 아이가. 건달이 쪽팔리모 안된다, 아이가.” 쪽이 뭡니까. 영어로 face, 체면이나 명예 아닙니까. 비록 영화 속 얘기지만, 건달도 중시하는 쪽을 우리 정치인들은 아예 잊고 사는 모양입니다. 금주 중앙SUNDAY는 ‘성완종 리스트’의 수사 속보와 함께 그로 인해 불거진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 봅니다. [관련기사] “성완종 회장 말 틀리다고 할 수 있겠나” 홍준표 측근, 1억 수수 적극 부인 안 해 [관련기사] 12년 만의 대선자금 수사 시작되나 … 김진태의 칼끝 주시[성완종 리스트 정국 강타] 고민 깊어지는 검찰 [관련기사] “성완종, 돈거래 기록 꼼꼼 … 제3 인물이 추가 폭로할 수도”[성완종 리스트 정국 강타] 몸 낮춘 여, 기류 살피는 야 [관련기사] 맨손으로 2조원 기업 일궈 … “오직 먹고살려고 앞으로 나갔다”리스트 폭로한 성완종은 어제, 16일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화사한 색상의 넥타이를 골라주려다, 갑자기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움찔하더군요. “남이란 게 이래요, 오늘이 1주기인데” 하며 말입니다. 저희들이야 깜빡깜빡 잊으며 살지만, 유가족들은 어떻겠나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성완종 리스트’만 아니었다면 온 국민이 4월 한 달 내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했을 겁니다. 숙연해야 할 사회 분위기가 벌집 쑤셔놓은 듯 뒤숭숭해졌다는 점에서 이번 스캔들은 크나큰 죄를 하나 더 저지른 셈입니다. 모두가 하나 될 시점에 정치인들은 노란 리본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기고 말았습니다.[관련기사] 팽목의 바다는 탁했다 … 그날 이후에도 우리가 탁하듯세월호 1년 작가 김연수가 찾은 아픔의 현장 [관련기사] 체감 어려운 국가혁신 … 특수재난실장 넉 달 넘게 공석대통령 눈물 담화 뒤 나온 10대 조치는… [관련기사] 인력·장비·훈련 업그레이드… ‘조직 해체’ 충격에 사기 저조해양경찰 해체 그 이후 [관련기사] 꽃이 피어도 봄은 멀다… 진상은 가라앉고 현상만 드러나작가 김연수가 팽목항에서 돌아본 1년 [관련기사] “지아야, 엄마로 살게 해줘 고마웠다”지영희씨가 딸 지아에게 보내는 『사월의 편지』 [관련기사] 일반인 유족들 “모두 소중한 생명인데 우리는 잊혀져…”[세월호 1년] 또 다른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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