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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포스텍 셧다운제 유감

지난달 25일 포스텍(POSTECH·포항공대)에선 ‘게임잼 2015’가 열렸다. 포스텍·서울대·홍익대 등 국내 대학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의 학생 60명이 5인 1조로 게임을 창작하는 대회다. 학생들은 게임 기획, 시나리오 설계, 프로그래밍 등을 진행해 48시간 내에 실행 가능한 게임을 완성해야 한다. 포스텍 창의IT융합공학과가 주최해 3년째 열리고 있는 행사다.

31일 포스텍에선 ‘게임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또 다른 48시간짜리 이벤트가 열렸다. 48시간 동안 쉬지 않는 게임 릴레이였다. 학생회관 1층에서 학생 17명이 꼬박 이틀 간 게임을 이어갔다. 게임 장면은 인터넷을 통해 중계됐고, 그 중엔 첨단기기를 이용한 가상현실 게임 시연도 있었다. 사실 게임 릴레이는 시위의 일환이었다. 지난 3월부터 학교가 실시해 온 '게임 셧다운제'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다. 포스텍 학생들은 "창의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시위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포스텍의 게임 셧다운제는 지난 2월 중앙SUNDAY에서 보도한 바 있다. 당시 학교 측은 교내 주거지역인 기숙사 등을 대상으로 오전 2시부터 7시까지 게임 사이트 접속을 차단키로 했다. “게임 과몰입으로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고 룸메이트의 수면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학생들이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청소년 대상 셧다운제를 이공계 교육기관인 포스텍이 도입하는 건 말도 안된다”며 반발했지만 학교는 강경했다. 등록금 고지서와 함께 제도 시행을 알리는 공문이 발송됐고 학기가 시작됐다.

기사를 쓰면서도 셧다운제는 금세 유야무야될 거라 생각했다. 다른 학교도 아니고 포스텍이었기 때문이다. 막아봤자 뚫리고 말 것이 뻔한 데다, 게임 창작대회를 열면서 셧다운제를 실시하는 건 모순이니 말이다. 예상을 깨고 학교는 꿋꿋하게 제도를 지켰다. 심지어 우회접속하는 학생을 막기 위한 시스템 수 억원을 들이는 방안을 논의하다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다시 셧다운제와 함께 새 학기는 시작됐고 게임 릴레이 시위가 열렸다.
‘리니지’를 만든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창의성이 생기고 소프트웨어가 되려면 잉여를 만들어야 한다”고. 잉여는 그냥 놔두고 방치하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잉여로운 시절을 꺼냈다. 1990년 홍릉에서 대전으로 카이스트가 이사하던 과도기의 이야기였다.

당시 대전 기숙사엔 석사 1학년뿐이었고, 서울에 살던 교수들은 수업만 마치면 상경했다. 그 덕에 석사 1학년들은 이공계 특유의 상하구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전해지는 후일담에 따르면 이들은 "통닭이나 뜯으면서 잡다한 상상이나 하고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했다. 그 잉여 학생 중엔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김정주 NXC 대표도 있었다. 성공했으니 아름다운 추억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카이스트 교육에서 잠시나마 빗겨난 덕에 훗날 산업을 바꿀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포스텍 측은 9월 한 달 셧다운제를 더 시행한 뒤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교육기관으로써 학생을 잉여롭게 방치하는 게 무책임해 보일까 우려된다면, 성인을 성인답게 대할 순 없을까. '창의적인 저항'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라면 통제·차단이 필요없는 충분한 어른이니 말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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