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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별에는 이유가 있는 법 - ‘장국영’ (상)

아주 오랫동안 음악 작업을 하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며 작곡을 한 게 족히 1~2년은 된 듯하다. 영감은 모두 어디로 달아난 걸까. 예전엔 꽃이 필 때면 으레 피아노 앞에 앉는 걸 즐겼다. 특정 주제에 맞춰 마감을 서둘러야 할 때도 절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는 법은 없었다. 전자가 영감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것이라면 후자는 영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랄까. 두 가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나는 당연히 영감, 그 미묘한 감각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갑자기 찾아오길 바라는 쪽이다.

두려운 것은 영감이 찾아와도 제때 마중나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혹여 놓칠세라 냅킨 위에 악보를 휘갈긴 적도 있었다. 이렇듯 충동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진귀한 일이다. 더구나 지금은 휴대전화 덕분에 녹음이 얼마나 편리해졌나. 언제 어디에서나 흥얼거린 내용을 저장할 수 있다. 그 ‘오래된 친구’가 나를 찾는 경우가 극히 적어진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5~6년 전이었을까. 한 팬이 편지를 통해 물었다. 왜 갑자기 음악을 그만두었냐고. 아마 그 때는 내가 자선 전시회 준비가 한창이었을 때였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주문받은 곡을 그럭저럭 해치운다는 느낌이었고(물론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의 한계를 맞닥뜨리기도 했다. 매일같이 음악에 힘을 쏟아도 모자를 판에 모사(본떠 그리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이것이 오해를 불러 일으킨 원인이리라. 팬들은 두문불출하는 내가 우울증이라도 걸렸나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이 원인이라고 바로 해명해야만 했다.

만약 예전의 나에게 점수를 매겨보라고 한다면 음악은 80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타고난 재능이 70점 정도 될 테니 말이다. 만약 욕심을 부린다면 점수를 좀 더 주어야 겠지만, 무대 전에 엄청나게 몰입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작곡 역시 로봇마냥 매일 하는 건 아니다. 슬프게도 그 점수는 나이에 비례해 증가하는 것도 아닐 터다. 어쩔 수 없이 하루가 다르게 후퇴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어찌 낙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게 체력이든, 자신감이나 지명도가 됐든. 반대로 서화는 0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이기만 하면 천천히 성장해 가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0.5점이 올랐다 해도 나는 만점을 받은 것마냥 기뻐했다.

이런 나와는 달리 어떤 사람들은 천상 무대에 속한 사람들이다. 무대 자체가 공고히 그들의 영역이랄까. 장국영 오라버니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사실 2003년 4월 1일 그가 세상을 황망하게 떠난 이튿날 그를 위한 곡을 하나 썼었다. 곧 그의 생일(12일)이 돌아와서일까. 십여 년이 흘러도 여전히 그리운 마음을 담아 이번에는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몇 글자 적어본다.

“레슬리, 당신을 위해 쓴 곡은 아직 제목이 없어. 발표된 적도 없고. 매번 노래를 할 때마나 목이 메고 눈물이 흘러 데모조차 완성할 수가 없었거든. 다른 가수에게 노래를 부탁해 볼까도 생각했는데 누가 할 수 있겠어 누가 나를 대신해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놓을 수가 있겠어.
2002년 10월 홍콩작곡가협회 만찬이 오빠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지. 당신은 그날 밤 만찬의 주빈이었잖아. 오빠는 그날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말야. 건너가서 안부를 묻고 싶었는데 조명은 계속 깜빡이고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럴 수가 없었어. 오빠가 무대 위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과 바쁘게 떠나가는 뒷모습만 봤을 뿐.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겠어. 그것이 당신과….”
(계속)

천추샤(陳秋霞·진추하)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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