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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실종’ 사건


혼자 먹는 밥과 술은 왜 이렇게 금세 배가 부를까? 지난 금요일 남편은 동네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배가 불러 고작 회덮밥 한 그릇과 반주로 곁들인 소주를 둘 다 반도 못 비우고 남겼다. 그 집 회덮밥은 정말 맛있는데도 말이다. 반찬으로 따라나오는 계란찜에는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아내가 혼자 며칠 동안 친정에 간다고 해보자. 예정에 없던 휴가를 쓰는 사람은 아내지만 정말 휴가 기분이 드는 사람은 남편이다. 어떻게 나흘을 견디느냐며 남편은 엄살을 부리지만 그건 들뜬 기분을 감추려는 표정관리에 불과하다. 아내가 없으면 그야말로 남편은 자유다. 해방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둥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가누나~.” 자신도 모르게 남편은 대학시절 불렀던 운동가요를 흥얼거리다 얼른 삼킨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가 없으니 남편은 얼마든지 집에 늦게 가도 된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마음껏 만날 것이다. 함께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며 밤새워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저절로 둥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갈 우리의 다리를 가로막을 공권력은 멀리 부산에 가 있다. 남편은 그저 약속만 잡으면 된다.


목요일 오후에 남편은 고민했다. 다 같은 친구인데 누구는 만나고 누구는 안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꺼번에 다 불러낼 수도 없다. 역시 선택은 어려운 법이다. 남편은 휴대전화를 열어 친구의 이름들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없다.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사라졌다. 박완서 선생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처럼 그 많던 친구를 누가 다 먹어버린 것일까? 한 친구는 회사의 대표라 무지 바쁘다. 한 달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만날 수 있다. 바쁘지 않은 다른 친구는 외국에 살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얼마 전에 아내가 자전거를 타다가 다쳐 한동안 무조건 일찍 귀가해야 한다.


전화를 걸면 달려나올 친구가 어쩌면 한두 명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 남편이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해봤어?”라는 말이다. 꼭 해봐야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똥으로 짐작되는데도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알기 위해 손으로 찍어 먹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굳이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친구라고 해서 상대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편할 때, 자기 시간 날 때 전화해서 당장 만나자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다. 허물이 없고 막역한 사이라고 해서 예의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친구 사이일수록 더욱 예의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게 목요일 저녁은 혼자 먹었다.


금요일이 되자 남편의 마음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바뀌었다. 친구니까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 용건이 없어도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친구 아닌가? 그러니 진정한 친구라면 남편의 이기적인 마음도 다 이해해줄지 모른다. 남편은 호탕하게 웃는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고3짜리 딸 운전수 노릇해야 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금요일에도 혼자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은 깨닫는다. 그 많던 친구를 다 사라지게 한 것은 결국 자신이라고. 평소에 자주 연락하고 만났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자신이라고. 부른 배를 쓰다듬으면서 남편은 생각한다.


지난달 나는 대구에 문상을 갔다. 이제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가는 일이 더 많아졌다. 8월에만 벌써 두 번째 문상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1시. 조문하고 물러나 국과 밥을 먹고 술도 한 잔 마셨다. 지하 2층에 있는 병원 영안실은 쓸쓸했다. 조문객들의 얼굴이 형광등 불빛 아래 푸르다. 새벽 4시쯤 나는 구석을 찾아 잠시 눈을 붙였다. 발인이 아침 8시. 발인제를 지낼 때 다들 슬프게 곡했지만 그 중에서도 한 남자의 울음은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는 애통함이 있었다. 육십을 조금 넘긴 것 같은 나이의 남자가 어찌나 슬프게 우는지 나도 눈물이 나서 몇 번이고 눈을 훔쳤다. 그 남자의 이마가 온통 새빨갰다. 옆 사람에게 “저 분이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고인의 친구라고 했다. ●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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