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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임정 외무부장 종손자가 대통령 안내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안 백범 김구 선생 집무실 앞에서 조범래 독립기념관 학예연구관(오른쪽)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조 연구관은 임시정부 외무부장(외교부 장관)을 지낸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의 종손자(從孫子)다. 정면에 보이는 밀랍 인형이 김구 선생이다. [상하이=박종근 기자]

1947년 11월 인천 조선피혁공장을 방문한 백범 김구 선생. 백범 오른편이 조소앙 선생이다. [중앙포토]
상하이 임정 청사 재개관식에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중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임정 청사 내부를 둘러볼 때 안내한 조범래(53) 독립기념관 학예연구관은 조소앙 선생의 종손자(從孫子·조 선생 동생의 손자)다. 조 학예연구관은 청사 재개관 공사 기간 내내 전시 설계안을 만들고 각종 자료를 만드는 일을 맡아왔다.

 조 학예연구관은 4일 “임정 청사는 할아버지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이라며 “직접 대통령을 안내할 수 있게 된 것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소앙은 임시정부 외무부장(외교부 장관)을 지낸 임정 외교활동의 거목이다. 일본 도쿄 메이지(明治)대학 법과에 유학하던 중 이승만 박사를 만난 게 계기가 돼 1913년 상하이로 망명,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19년 8월엔 스위스 루체른에서 25개국이 모인 국제사회당대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그리고 한국 독립승인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의 독립을 인정한 첫 국제회의다. 재개관한 임정 청사에 새로 전시된 손정도 임시의정원 의장의 ‘임시정부 외교활동을 알리는 성명서’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카이로회담(43년 11월)에서 한국 독립을 명시하는 데 영향을 미친 43년 7월 김구 주석과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총재와의 한·중 ‘정상 접촉’에서 실무를 담당한 것도 조소앙이었다.

 박 대통령은 오후 동포 간담회에서 “상하이 임시정부의 정신은 계속 이어져 1940년대 광복군 창설에 이어 대한민국 건국강령 반포와 카이로 선언을 이끌어낸 외교활동까지 전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과 함께 재개관식 테이프 커팅을 한 김우전(93) 전 광복회 회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기밀 업무를 수행하는 비서였다. 44년 5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해 제3지대 창설요원으로 활약했고, 45년 3월 한·미 공동작전계획(OSS 훈련)에 따라 OSS 훈련본부에 파견됐다. 그곳에서 김 회장은 광복군 무전기술 교재와 한글 암호문을 제작하고 국내에 남아 있던 독립운동가들과의 연락 업무를 맡았다.

 중국인 추푸청(楮輔成·1948년 사망) 선생의 후손인 추정위안(楮政元)도 참석했다. 추푸청은 저장(浙江)성 자싱(嘉興) 출신으로 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후 일본의 추격을 피해 상하이를 떠난 김구 선생을 숨겨줬다. 당시 김구 선생이 몸을 숨겼던 자이칭(載靑)별장 사진도 새 단장한 청사에 전시됐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일찍이 장쑤성장을 지낸 이로 덕망이 높은 신사”라고 추푸청을 묘사했다.

글=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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