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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사진 담긴 엽서 → 서태지 열쇠고리 → H.O.T. 우비→ 엑소 이어폰…스타 바뀌어도 팬심은 영원






1980년 미국 가수 레이프 개릿의 내한공연 당시 한국 여대생들은 그에게 팬티를 벗어던졌다. ‘당신을 이만큼(?)이나 좋아한다’는 열광의 표시였다. 혹자는 이 ‘팬티 사건’을 훗날 펼쳐질 팬덤문화의 시초라고 말한다. 팬덤(Fandom)은 ‘열광적’이란 뜻의 ‘fanatic’과 나라 혹은 영토를 뜻하는 접미사 ‘dom’이 합쳐진 용어다. ‘열광적인 사람들이 모인 나라’, 바로 팬들의 세계다.

 그리고 2015년 9월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SM타운 4층 카페. 스피커에선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의 노래가 계속 흘러나온다. 두 소녀가 테이블에 화투장을 펼쳐 놓고 에코병에 담긴 음료와 쿠키를 먹으며 일명 ‘맞고’를 치고 있다. 그런데 화투장 모양을 자세히 보니 일반 화투장이 아니다. 인기 아이돌 엑소(EXO) 캐릭터가 그려진 화투장이다. 에코병에도 엑소의 노래 제목이 적혀 있고, 쿠키가 담긴 통도 엑소 캐릭터 모양이다. 모두 아이돌 ‘굿즈(goods)’ 상품이다.

 같은 날 방문한 아이돌 굿즈숍에는 없는 게 없었다. 펜·공책 등 학용품부터 액세서리·의류·화장품까지 다양했다. 한쪽에는 ‘○○군이 쓴 이어폰’을 직접 시착해 보는 체험존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들은 바구니에 물건들을 가득 담고 계산대로 향했다. 가격대는 몇천원대부터 몇십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국내외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한 의류나 전자기기 제품들은 가격대가 상당했다. 최근 ‘123만원짜리 엑소 이어폰’ ‘17만5000원짜리 빅뱅 야구점퍼’ 등이 고가 굿즈 논란에 휩싸인 이유다.

 이런 현상이 유별나 보이긴 하지만 굿즈의 역사를 감히 ‘짧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국에서 온 가수에게 팬티를 던지던 시절부터 굿즈는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업그레이드됐다. 그래서 굿즈의 변화상을 톺아보면 시대별 팬덤문화가 보인다.

 ◆대중문화의 중심축 된 10대, 굿즈를 탐하다=80년대 ‘가왕’ 조용필이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다. ‘잘살아 보고자’ 하루하루 숨 가쁘게 달려온 그들에게 조용필의 노래는 마음을 위로하는 일종의 ‘문학’이었다. 팝송이나 밴드, 트로트가 즐비하던 당시 음악시장에서 서정적인 가사와 선율로 등장한 조용필은 새로운 대중문화의 시작을 알렸다. 그렇게 ‘오빠 부대’가 처음 생겨났다.

 책받침·엽서·사진…. 굿즈의 원조 격인 물건들이다. 79년 겨울 우연히 TV에서 조용필을 본 뒤 팬이 됐다는 남상옥(49)씨는 지금도 여전히 조용필을 ‘우리 오빠’라고 표현했다. 남씨는 “광화문에 가면 연예인 사진을 팔던 ‘몽블랑’이라는 상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늘 우리 오빠 사진을 샀다”고 회상했다. 그뿐인가. 좋아하는 스타의 책받침을 사서 남몰래 가슴속에 꼭 안아 보거나 입을 맞춰 보기도 했다. 팬레터를 보내거나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는 늘 ‘오빠’의 얼굴이 담긴 엽서를 사용했다. 손글씨로 정성껏 적은 팬레터는 주로 1000마리의 학 또는 곰인형과 함께 포장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커녕 인터넷도, 팬클럽도 없던 시절. 그것은 지극히 일방적이면서도 소극적인 사랑의 표현이었다.

 90년대 중후반부터 팬덤문화는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의 폭발적 성장을 주도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촉매 역할을 했다. 조용필이 당시 젊은이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했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득권을 향한 젊은이들의 ‘반항심’을 자극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중문화의 중심축을 10대로 옮겨 놓았다. 자칭 ‘서태지 매니어’인 김종미(38)씨는 “서태지와 아이들은 ‘인기 많다’ ‘잘나간다’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내 가수’를 향한 소유욕과 충성도가 유난히 강한 세대가 10대다. 억눌려 있는 현실의 유일한 돌파구가 바로 TV 속 연예인이어서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와 관련된 물건을 또래와 경쟁하듯 모으고 가수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열렬히 지지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런 문화의 시작이었다. PC통신의 등장으로 정보 습득이 빨라지고 팬들 사이의 결집력이 강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팬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테이프를 사서 늘어지도록 듣고, 잡지에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 사진을 모았다. 가방엔 늘 서태지 열쇠고리를 달고 다녔다. 부모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김종미씨는 “당시 부모님이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난해 한동안 가족끼리 말을 섞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며 웃었다.

 이런 팬들에게 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PC통신을 통해 ‘자살클럽’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팬들의 충격은 컸다. 회사원 이모(35)씨는 “충격과 빈자리가 너무 커 한동안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 부모님이 ‘삶을 포기한 애 같았다’고 하시더라”며 그때를 떠올렸다.

 ◆충성도 높은 팬을 결집시키는 마케팅 수단=하지만 이 시기까지도 팬덤은 그저 해당 가수의 ‘지지자’ 역할에 머물렀다. 연예기획사에서 팬덤을 영향력 있는 ‘소비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H.O.T.·젝스키스 등 소위 1세대 아이돌이 등장하면서다.

 “하얀 풍선 12만 개 사이에 노리끼리한 풍선 1000개 껴 있으니까 계란 후라이 제대로던데?” tvN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나오는 대사 한 토막이다. 90년대 후반 H.O.T.와 젝스키스 팬들 사이에서 흔히 있던 실랑이였다. 국내 한 대형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그때 팬들은 지금 팬들과 비교하면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이 강했다”고 기억했다. 가수 H.O.T. 멤버 강타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여학생들이 무단결석 또는 단체로 조퇴해 교육청에서 ‘조퇴 금지령’이 내려진 적도 있다”고 언급했다.

 공식 팬클럽이라는 개념도 이때부터 대중화됐다. 은행에 지정된 금액을 입금한 뒤 본인 정보를 우편으로 보내면 소속사에선 풍선·우비 등 각종 굿즈를 보내 줬다. 이때 중요한 건 내 아이돌의 공식 색상. H.O.T.는 흰색, 젝스키스는 노란색 등으로 응원 풍선색을 통일했다. 아이돌들이 집결하는 대형 콘서트장 관객석은 풍선의 점유율이 곧 그 아이돌의 위상이었다. 팬들 간 자리 싸움은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이 나오면 근처 음반가게로 가 CD와 함께 한정판 브로마이드를 받고, 잡지나 화보집 등을 차곡차곡 사 모으는 것은 ‘충성심’의 척도였다. 1세대 아이돌의 성공으로 기획사에서는 점점 하나의 완벽한 ‘기획상품’으로서 아이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굿즈 시장의 발달은 최근 음반시장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 mp3파일과 음원 스트리밍이 보편화되면서 음악 하나로 승부를 보는 건 사실상 큰 수익이 되지 못한다. 국내의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음반이라든지 음원만 팔아선 수익이 보장되기 힘들어진 현실에서 굿즈는 놓칠 수 없는 수입원이자 충성도 높은 팬을 결집시키는 마케팅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충성도’ 높은 팬덤을 잡는 일이 기획사로서는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팬덤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들은 온라인에 모여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동시에 재생해 1위로 올려 주고, 회비를 모아 선물을 마련한다. 아이돌그룹 엑소의 팬인 김모(24)씨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키운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는 가수를 ‘내 새끼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① 2013년 출시된 그룹 엑소(EXO)의 123만원짜리 이어폰 굿즈. 미국 음향기기 브랜드 ‘슈어’의 하이엔드 제품과 컬래버레이션 했다. ②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엑소의 멤버 수호. ③ 그룹 빅뱅의 17만5000원짜리 야구점퍼 굿즈. ④ 빅뱅 팬들의 응원봉.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언제나 굳건한 그들의 나라=이런 상황에서 굿즈는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제1의 마케팅 수단이 됐다. 더 비쌀수록 더 희귀하다. 그게 팬들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CD 재킷 사진도 멤버별로 따로 제작된다. 멤버 수대로 앨범을 구입해야 진정한 ‘컬렉션’이 완성된다. 아이돌그룹 갓세븐(GOT7)의 팬인 권모(28)씨는 “내가 사는 굿즈에 따라 멤버별 수익이 돌아간다고 해서 더욱 신경 쓰는 편”이라며 “스스로 ‘호구’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통장에 돈이 입금된다’는 뿌듯함이 있어 끊질 못한다”고 말했다. 책 『JYJ 공화국』의 저자 이승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굿즈 마케팅은 일본 아이돌 문화에서 넘어왔는데 고가 굿즈에 대한 논란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존재한다”며 “미국에서도 기획사들이 팬들의 주머니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낸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가장 고전적인 굿즈였던 ‘사진’은 이제 팬들도 찍는다. 아이돌그룹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명 ‘찍덕’들이 유통하는 것이다.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소속사 제공 사진보다 양질의 사진을 공급하며 팬들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초상권 문제가 얽혀 있어 소속사 입장에선 상당히 골치 아픈 부분이지만 이미 시장이 너무 커진 상태라 어찌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시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팬들이 스타에게 느끼는 건 일종의 ‘유사 연애’ 감정이다. 이 감정에 제대로 빠지면 좋아하는 스타는 바뀌어도 ‘팬질’은 못 그만둔다는 게 팬들의 이야기다. 조용필 팬클럽 ‘이터널리’의 운영진인 남상옥씨는 그룹 인피니트와 엑소를 좋아하는 두 조카가 있다. 조카들을 볼 때마다 남씨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남씨는 “남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아 앨범이 나오면 조카들에게 먼저 CD나 굿즈 같은 걸 선물한다. 팬의 마음은 팬이 제일 잘 아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민희 음악평론가는 그의 책 『팬덤이거나 빠순이거나』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영원한 팬으로 살아가려면 돈과 시간이 든다. 가장 중요한 건 열정이다. 열정으로 돈을 구하고 시간을 쪼갠다’. 시대가 변해도 그들의 나라가 언제나 굳건한 이유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S BOX] 팬심 멀어지면 곤욕 … 일본선 ‘장례식 치른다’ 표현

지난달 가수 보아의 팬클럽은 서울 강남에 보아의 이름을 딴 숲을 조성했다. 보아의 데뷔 15주년을 기념하고자 팬들이 진행한 친환경 프로젝트였다.

 스타를 향한 팬들의 뒷바라지는 다양한 형태를 띤다. 앞선 사례처럼 스타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활동도 많다. 빅뱅 지드래곤의 팬클럽은 8월 18일인 지드래곤의 생일을 맞아 승일희망재단에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해 818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광복절 행사 공연에서 엑소의 팬들은 관객들에게 태극기가 그려진 부채를 나눠주기도 했다. 국내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스타를 위해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팬 활동을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며 “소속사 입장에선 비용 대비 마케팅 효과가 상당해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번 돌아서면 남보다도 멀어지는 게 ‘팬심’이다. 일본에서는 팬들이 돌아설 때 ‘장례식을 치른다’는 표현을 쓴다. 좋아하던 아이돌을 떠날 때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사실을 터뜨려 그 아이돌의 ‘장례를 지내고 떠난다’는 다소 섬뜩한 뜻이다. 지난달 그룹 티아라는 녹화장에서 팬들에게 무성의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로 곤욕을 치렀다. 티아라 팬 사이트들이 잇따라 ‘활동 중단’을 선언했던 것이다. 여러 현장 증언이 나오면서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그룹 이미지에는 큰 타격이었다.

 그래서 업계 관계자들은 팬덤을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한다. 이승아 UCLA 교수는 “요즘 팬들은 자신이 ‘소비자’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며 “불만은 바로 그 아이돌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연예인이 역으로 자기 팬들에게 간식 등을 베푸는 ‘역(逆)조공’ 문화가 생겨난 이유다. 아이돌 중에서는 JYJ가 오랜 역조공 문화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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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