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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 감독의 ‘문제적 인터뷰’] 한국 영화계의 ‘카리스마’ 배우 강수연

‘외강내유(外剛內柔)’의 면모를 드러낸 그녀가 당신에게 건네는 애정 어린 충고, 그리고 영화인으로서의 속 깊은 이야기

영화감독 양익준은 비주류에서 피어난 주류(主流)다. 20대 시절 독립영화 판에서 비주류의 삶을 살다, 서른 살을 갓 넘은 시점에 1700만원짜리 전세보증금을 뽑아 연출했다는 첫 장편 <똥파리>로 로테르담·라스팔마스·도빌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38개의 상을 휩쓸었다. 한국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데뷔라고 할 만하다. 비주류적인 태생적 본질을 가졌지만 이제는 일약 주류가 되어버린 양익준 감독. 필연적으로 독특할 수밖에 없는 그만의 비튼 시선에서 ‘문제적 인물’을 향한 지독한 내면 탐구가 시작된다. 첫 번째 상대는 한국 여배우로서 처음으로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른 강수연이다. (편집자 주)

영화배우 강수연은 “배우로서 현장에 있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간을 탐험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태양이 작열하던 어느 오후, 서울 필운동의 한 카페에서 양익준 감독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동의했다. 양 감독은 우리 문화계의 문제적 인물들을 탐구해보자는 기자의 제안에 빙긋 웃어 보였다. 영화는 역사를 반영하고, 그 역사는 인간의 내면에 기인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제 불혹을 갓 넘긴 천재 괴짜 감독의 영화적 고뇌도 자연히 인간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 감독이 첫 번째로 선택한 인물은 영화배우 강수연이다. 그는 20대 초반 영화 <씨받이>(1987년·베니스 영화제)와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년·모스크바 영화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영화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주인공이다. 이제 데뷔 40년 차의 한국영화계의 ‘대들보’로 거듭난 강수연은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면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의 여왕 강수연과 괴짜 감독 양익준의 조합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괴짜 감독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여왕의 내면 속으로 초대한다.

“결정하면 바로 해. 그것도 방법이야”

양익준 감독은 “여배우 중에 저렇게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며 강수연의 소녀 같은 청순함을 칭찬해 주었다.


양익준(이하 ‘양’): 어제 선배님께 연락해 인터뷰 요청 드렸잖아요? “7월 23일부터 8월 3일 중에 편하신 날짜 선택해 주시면 좋겠다고.” 근데 제 말이 끝나자마자 “23일 2시가 좋아”라고 하셔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웃음)

강수연(이하 ‘강’): ‘할 거냐, 안 할 거냐’ 결정하게 되면 곧바로 하는 것도 방법이야.

양: 굵고 빠른 선택을 하신다는 점이 훌륭하신 부분이라 생각돼요. 근데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삶의 연혁이 짧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기 어렵잖아요. 선택을 도와주는 삶의 주머니가 아직 덜 여물어서.

강: 자기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용기가 있으면 돼.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에서 실패를 수도 없이 많이 하지. 70% 이상이 실패일 거야. 근데 그 때는 빨리 인정해야 해. 빨리 무릎 꿇어. 그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거야.

양: 그런 책임에 대한 용기를 언제부터 갖게 되셨나요?

강: 수많은 실패를 하다가. ‘이게 아니기도 하구나’라는 후회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까…. 근데 기자님한테 얘기해줬어? 내가 1분 만에 콜 했다고?(웃음)

양: 네. 얘기해줬더니 그 ‘거물’ 강수연이 너무 빨리 답변을 줬다고 놀라더라고요.

강: 나 거물 아닌데. (번뜩하며) 저 사실 골프선수 강수연인데요.(웃음)

양: (웃음) 요즘에는 포털에 선배님보다 골프선수 강수연 씨 기사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강: 친구들이 이름 똑같다고 나한테 핸디를 안 주는 거야. (골프선수) 강수연이 무슨 핸디를 받느냐면서.

양: 해, 핸디요?

강: 골프 칠 때 내기하잖아. 그럼 핸디를 받거든, 몇 점씩.

양: 전혀 모르는 세계의 언어인데요.

강: 여러 가지 세계가 있어.

양: 그래서! 오늘 그걸 좀 들으러 왔죠.(웃음)

강: 나만큼 살면 여러 세계를 경험하게 돼.(웃음)

양: 선배님은 10대 이전부터 보통의 그 나이대가 겪기 힘든 어찌 보면 성인의 영역, 그것도 유명한 배우로써의 시간들을 겪으셨잖아요. 예전에 제가 공황장애 때문에 힘들다고 칭얼거릴 때(웃음) 선배님이 ‘야, 그거 난 이미 10대 때 다 겪었어’라고 말씀하셨죠?(모두 웃음)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상황을 이미 10대 때 다 겪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강: 미치지. 왜냐면 그 당시엔 아직 정확한 자아도 없고 게다가 사춘기에…. 완전히 미치지 그때는. 근데 겪고 나면 별것 아니야.

양: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이 지금 굉장히 많잖아요.

강: 아, 너무 많지. 얘기들을 안 해서 그렇지. 배우들 중에도 많고.

양: 요즘은 매체를 통해 배우가 자신의 상태를 많이 드러내서 그렇지. 이전에는 오해도 많이 샀을 것 같아요.

강: 예전에는 정신병이라고 그랬지. 그래서 일부러 얘기들을 안 한 거지.

“난 강한 사람이 아니야”

한국 영화계의 여왕 강수연과 괴짜 감독 양익준의 조합을 누가 상상할 수 했을까? 그녀는 자신이 아끼는 후배 앞에서는 한없이 소탈하고 다정다감한 선배가 된다.


양: 제가 한참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일 때 선배님이 대학병원 예약해주시고 꼭 진료받으라며 압력행사까지 하셨잖아요.(웃음) 손목 팍 끌고 직접 데리고 가듯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강: 야! 무슨 초등학생이니? 병원을 손목 끌고 가게? 가. 병원 가면 고쳐져.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몰라?

양: (웃음) 나이를 먹어가며 때때로 혼내주는 사람이 그리워요. 어제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봤는데 그 작품에 출연하는 조재현 씨가 지금의 저마냥 선배님께 타박을 받던데요?(웃음) 근데 영화 너무 좋았어요.

강: 아, 그 영화 잘 만들었어. 그게 임상수 감독의 첫 번째 영화잖아.

양: 당시 그렇게 솔직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쓸법하지 않은 아주 거친 핸드헬드(카메라를 들고 찍는 방법)로 배우들을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게 하려 했던 것 같아요. 거친 촬영법이었는데 그 거친 방식이 배우들의 말투나 행동을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어 주더군요. 당시(1998년)가 지금보다 성적인 이야기나 농담이 훨씬 더 활발하던 시절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성’의 공개적인 표현에 상당히 보수적이었죠.

강: 그렇지. 임 감독은 데뷔 준비 중이었고 유명한 감독이 아니었잖아. 시나리오를 그 감독이 직접 썼거든. 이 발칙한 시나리오가 나한테 들어왔어. 당시의 통념을 벗어난 영화라 캐스팅하는 게 많이 힘들었던 거 같은데. 정말로 나 그 시나리오 읽자마자 그 자리에서 ‘이걸 왜 안 해? 해! 이렇게 재밌는데’ 그랬잖아.(웃음) 근데 주변에서는 걱정스러워했지. 이야기가 (성적으로) 너무 노골적인 것 같으니까.

양: 당시 그러한 성적 담론이 가득한 시나리오를 본다는 것 자체가 되게….

강: 그렇지. 근데 나는 이야기적으로 생소하면서도 너무 재밌는 거야. 근데 주변에서는 계속 걱정을 해주고.

양: 그때 그런 영화가 기획됐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잖아요. 최근 이 영화를 본 분들이 ‘아니, 이게 9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란 말이야?’ 하고 놀라는 반응이더라고요.

강: 시나리오를 진짜 잘 썼어. 그거 읽고 ‘배우들이 왜 이걸 다 안 한다는 거지?’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생각과는 다르게 여배우 캐스팅이 안 되는 거야. 너무 노출도 심하고 야하고, 그러한 표현자체를 많이 가릴 때였으니까.

양: 사실 작품에서의 성적인 표현이나 노출에 대한 부분이 이전보다 더 자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처녀들의 저녁식사>만큼 솔직한 표현의 현대 영화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성적 담론을 일상으로 끌어와 불편하고 특별할 수도 있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한 느낌이에요. 저도 최근 임상수 감독님 영화에 출연했어요. <나의 절친 악당들>이라는 영화에서 아프리카계 불법 환전소 사장으로요.(웃음)

강: 아, 그랬어? 양 감독 그런 비주얼은 아마도 본인이 본인을 캐스팅한다고 해도 그러한 역할을 줄 수밖에 없을 거야.(웃음) 내가 청순가련한 역에 캐스팅 안 되듯이 그대도 그런 캐릭터가 딱이야.

양: 가능하세요. 청순가련.

강: 나, 돼? 진짜? 정말 듣던 중 반가운 말이다. 근데 왜 그런 청순가련 역을 나한테는 안 줄까? 나는 언제 청순가련 역할을 해보나?

양: 좀 더 기다려보시면.(모두 웃음)

“난 배우이면서 순수한 관객이기도 해”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한 장면. 강수연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그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강: 근데 나라는, 인간 강수연이라는 사람의 구축된 이미지가 누구한테 동정받을 캐릭터가 아니잖아. 내 스스로가 동정받을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

양: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의 이면의 모습을 어느 정도 느끼게 되잖아요. 이런 강인할 것 같은 사람에게도 불안한 거미줄 같은 감성이 있다는 걸

강: 나 안 강해. 강하지 않는데….

양: 미디어가 선배님을 그렇게 캐릭터화시킨 게 좀 있죠.

강: 그러니까. 지금 이미지는 미디어라든가, 영화에서 맡았던 캐릭터들로 인해 만들어진 거지. 사실 난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역할들이 그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들이었잖아. 일상적인 모습으로 시대를 대변하기는 어려웠어. 자연히 색깔이나 성격이 강할 수밖에는 없었거든. 내가 연기해왔던 진하고 강한 캐릭터 때문에 지금의 강한 강수연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거지, 스스로를 한 번도 강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양: ‘강수연’ 하면 강단 있고 세고 월드스타고 그런 이미지가 사실 좀 강했죠.

강: 현실의 나와는 다른 나만 알고 있는 거지.

양: 실제로 이렇게 만나게 되면 잘 챙겨주고 올바른 이야기해주는 누나 같은데. 참, 이 인터뷰 담당하는 김포그니 기자가 왜 양익준을 좋아하시는지 함 물어봐 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강: 영화를 잘 만드니까. 근데 만나보니까 정상은 아니더라.(웃음) 난 사실 양 감독을 만나기 전에 영화 <똥파리>를 봤거든. 그날 너무 흥분해서 같이 본 사람들이랑 맥주 마시며 밤새 얘기 나눴어. 그 이후에 모로코의 마라케시 영화제를 가게 됐잖아? 근데 공항에 무슨 노숙자가 앉아 있는 거야. 그런데 부산영화제 홍효숙 프로그래머가 그 노숙자랑 인사를 하더라고. 서로 아는 사이인가 하고 외면했는데….(웃음) 근데 갑자기 홍효숙이 나한테 ‘언니! 언니가 좋다던 똥파리’ 그래서 내가 ‘뭐 똥파리? 일루 와봐’(웃음)

양: 그때 마라케시 영화제에 임권택·장선우 감독님 등 엄청난 분들이 많이 가셨었죠. 저는 옷이 없어서 친구한테 골덴 재킷 하나 빌려 입고.(웃음)

강: 노숙자인 줄 알았다니까. 지금은 용 됐지.(웃음)

양: 선배님은 유명인사셨고 게다가 영화사적으로도 영화 연보에 나올 분이라 생각했는데 그때 등산복 입고 계셨잖아요. 그런 복장으로 ‘니가 똥파리야?’ 그러며 반겨주시니까 뭔가 비현실적이었죠.(웃음)

강: 그때 내가 좋다고 만지지 않았어?

양: 성추행 하신 것 같아요. 허벅지도 만지고.(일동 웃음)

강: 좋아서. 좋아서.

양: 그때 ‘아, 똑같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좋아하는 영화의 배우를 만났을 때 이런 분도 똑같이 가슴 벅차하시는구나’라는 걸.

강: 나는 정말로 열렬한, 순수한 관객이야. 배우이면서도 영화를 미치게 좋아하는 관객이지. 감동적인 영화를 만든 사람을 만나는 건 흥분 그 자체지. 근데 양 감독 첨 봤을 땐 노숙자인줄 알았던 거고.(웃음)

양: (웃음) 덕분에 ‘아, 이 영화 만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때로는 선배님한테 제가 꽤 많이 혼나기도 했죠. 사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고집만 생기다 보면 어느 샌가 자신을 올바르게 혼내주는 사람이 그립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선배님이셨어요. 그런데 같이 놀 때는 ‘아하하하’ 소녀처럼 웃으시기도 하고.(웃음) 여배우들 중에 저렇게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으시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강: 근데 좀 안타까워했던 건 조금만 더 환경을 좋게 해서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거였지. 양 감독이 너무 쫓기듯이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픈 거야. 앞으로는 좋은 영화 만들어줘.

“천재를 보면 열렬한 질투를 느끼지”

임권택 감독의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의 촬영 장면. 강수연은 “임 감독님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양: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선배가 너무 그리웠어요.

강: 이런 선배한테 양 감독이 먼저 다가가봤어? 다가가보지도 않았잖아. 그건 핑계일 수 있어.

양: 그때 왜 내 등을 쓰다듬어주는 선배가 없었을까 원망도 했던 것 같아요.

강: 등짝을 내밀어야 쓰다듬지. 모두가 첫 만남에서 나처럼 그렇게 만지지 않아. 얼마 전에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엘리펀트 송> 보러 가기로 한 거 왜 연락 안 했어? 날짜까지 정했었잖아.

양: 그때는 제가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갔던 날이라.(웃음) 요즘 이상하게 영화를 잘 안 보게 되네요.

강: 영화 하는 사람이 영화를 안 보면 어떡하니?

양: 영화인인데…. 봐야죠!(웃음) 그런데 그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자비에 돌란’이라는 배우는 감독으로서도 천재적이고, 20대 초반에 칸 영화제에서 수상도 여러 번 하고 심사위원도 했었잖아요. 선배님은 그런 사람을 보면 어떠세요?

강: 열렬한 질투를 느끼지. 왜 나는 저 나이에 저런 걸 생각 못했나,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감성을 표현할 수 있을까? 분명히 나도 저 나이에 저런 감성이 있었는데. 난 표현하고 느끼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아. 나 영화 <똥파리> 보고도 그랬어. ‘뭐? 이게 첫 작품이래? 뭐야, 쟤.’ 바로 주변에 전화해서 ‘야! 양익준에 대해서 빨리 브리핑해봐’ 그랬지.(웃음)

양: 자비에 돌란과 저를 같은 비교선상에 놓을 순 없지만.

강: 아니야. 비교 가능해. 그 나이에 그런 감성을 표현한다는 건 엄청난 재주지. 미친 거지. 양 감독, 그때 아팠던 게 당연해. 그 나이에 그런 걸 확 터뜨렸으니 병이 나야지. 근데 외모는 아니고. 외모는 비교불가.(일동 웃음)

양: (주변에) 웃지마 조용해!(웃음) 제가 자비에 감독과 표현에 있어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부모인 것 같아요. 그의 테마는 엄마고 전 어떻게 보면 아빠고. 그한테도 나한테도 가족 안에서 오는 것들이 영화적 모티브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아닐까 싶어요. 영감의 저장소 역할이랄까요? 많은 데뷔작의 주요 테마가 가족이나 지인에서 기인되는데 아마도 이걸 깨야 다음 분기로 넘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무의식의 의지가 작동하는 것 같아요.

강: 그래, 극복됐으면서 뭘 그래. 다들 그러고 살아.

“열심히 해, 사랑. 중요하니까”

1. 양익준 감독은 비주류에서 피어난 주류(主流)다. 독립영화인 출신으로 자신의 첫 장편 <똥파리>가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유명세를 탔다. / 2. 영화 <똥파리>의 한 장면. 주인공 상훈은 용역깡패다. 거친 삶을 살아온 그의 마음속엔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가 있다.


양: 뜬금없지만 어디 강씨세요?

강: 진주 강씨. 내가 강씨에 백말 띠에 옥니에 곱슬머리에 사자자리에 태양인에 AB형이야. 세상에서 존재하는 세다는 건 다 가지고 있어.(웃음)

양: 그런데 마음은 여리신 분이죠? 청순가련?

강: 엄청 여리지.(웃음)

양: 나이가 들며 만나는 사람 수가 크게 늘지 않잖아요. 하지만 오랫동안 진하게 교류하는 몇몇 사람이 있죠.

강: 정말 친하고 신뢰하며 지내는 분들은 알고 지낸 지 못해도 10년, 15년은 넘은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람관계에 대한 신뢰는 상대적으로 옅을 수밖에 없지. 게다가 언제부턴가 소통에 있어서 내 자신이 대단한 기술자가 되어있더라고. 이전의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들과 대화하는 것과는 다른 식으로. 그런 게 싫어.

양: 의례적으로 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강: 옛날 어른들이 나이 먹으면 외로워진다는 게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어. ‘그게 이런 말이구나’라는 걸 근래에 와서 좀 느끼는 것 같아.

양: 때론 외롭지만 그게 그렇게 나쁘진 않으시죠?

강: 그렇게 좋지도 않아.

양: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함께한 사람들이 좋죠.

강: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좋다는 표현을 굉장히 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웃음) 그 사람들과 오랫동안 좋은 시간들을 같이했다는 게 소중하고 감사한 거야.

양: 재미난 질문이 생각났는데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어온 노장 감독과 아직 장편영화를 찍지는 못했지만 아주 근사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고 연출에 꽤 재능 있을법한 젊은 감독이 동시에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제의한다면 누구를 고르시겠어요?

강: 둘 중에 하나? 야, 그거 어렵다. 그럴 때 병원을 가야지.(웃음) 근데 되게 어렵다.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아주 영리한 선택을 할 거 같아. 작품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시대의 시점과 그 시점을 바라보는 영화적 시선과 내가 쭉 해왔던 영화적인 패턴을 카테고리 안에 넣어서 결정을 하겠지.

양: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요?

강: 나는 아마, 그 순간의 내 상황에 두 감독의 이야기를 비교해 선택할 것 같아.

양: 사실 몇 년 전 ‘이창동 감독과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대담’ 중 어떤 관객이 이자벨 위페르에게 질문한 거였어요. 이자벨 위페르가 주저 없이 “노장과 하겠다”고 답했죠. 그 배우의 여러 경험적인 측면이 깃들어 있는 듯해요. 그는 유럽 각국의 거장과 영화를 함께했던 사람이잖아요. 프랑스 감독뿐 아니라 <하얀 리본>의 미하엘 하네케 감독 같은 다른 언어권의 다양한 감독과도 작업했고. 아마도 그녀의 영화적인 환경이 확고한 확신을 만들어준 게 아닌가 싶어요.

선배님은 배우로써 캐릭터를 맡으셨을 때 맡게 된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주의이신지 아니면 그 캐릭터를 내 안으로 데려와 융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이신지요?

강: 난 그게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 십대 때는 아직 내 자아가 명확히 여물지 않았기 때문에 캐릭터를 따라갔지. 20대 때는 내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하면서 캐릭터를 내 안으로 데리고 온 경우가 많았고. 둘 다 경험한 지금은 역할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것 같아. 역할에 따라 내가 갈 건지 그가 올 건지는 사실 캐릭터를 맡아야 알 수 있는 것 같아. 순수하게 내 안에서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캐릭터냐, 새롭게 재 창조해야 하는 인물이냐에 따라서 양쪽을 왔다갔다해야 한다고 생각해.

양: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작품은?

강: 많지. <아제 아제 바라아제>도 그렇고. 저건 나한테 들어오면 안 되는 캐릭터였어. 이미 현실 속에서 ‘저러한 역할이야’라고 규격화된 인물이잖아, 여승이라는 게. 비구니라는 게. 그 규격화된 게 내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되지.

양: 반대로 캐릭터를 내 안으로 끌어온 건?

강: 임권택 감독님 영화로 비교하자면 <씨받이>. 그건 완전히 나한테 들어왔어.

양: 그 역할이 십대였고 선배님이 당시 스물한 살?

강: 스물 한살이지만 이미 배우생활 20년 가까운 경력이었잖아.(웃음) 스물한 살 때였지만 캐릭터 자체가 내가 십대 때 겪어왔던 거였으니까.

양: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어땠어요?

강: 그것도 내 쪽으로 끌어왔던 것 같아. 충분히 그럴 만한 캐릭터였고.

양: 혹시 이미 만들어진 영화 중에 탐나는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강: 캐릭터만 놓고는 어떤 편견도 욕심도 없어. 어떤 색깔의 여자든 인물이든 그건 별로 중요치 않은 것 같아.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가 어떻게 되는지가 중요하지. 한 번도 캐릭터를 가지고 영화를 결정해본 적은 없어. 다만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에서 할머니를 보고 ‘백발의 노인이 된 나이에 나도 저렇게 좋은 영화를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보긴 했어.

양: 여렸을 적에 선배님에게 부모는 어떤 존재였어요?

강: 우리 집안은 영화랑 정말 아무 관련도 없는 평범한 집안이었어. 너무 평범한 집. 내가 집 앞 골목에서 놀다가 캐스팅됐잖아. 길거리 캐스팅의 원조가 나야.(웃음) 영화관계자가 ‘너희 집 어디니?’ 손 붙잡고 들어가서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했지. 그런데 반대하셨어. 왜냐면 나도 집에서 귀한 딸이었을 거 아냐. 자식 고생시키는 일을 허락하기가 싫으셨던 거지. 얌전히 시집가는 걸 바라셨던 세대고. 엄청나게 반대하셨지. 그렇게 (연기를) 못하게 하시다가 고등학교 2~3학년 때쯤에 ‘얘는 이거 해야 하는구나’하고 인정하셨지.

양: 직접적으로 뭔가 지원을 해주신 건 아니더라도 부모님들에게 느낀 부분이 있지 않았어요? 딸의 일을 마음으로 응원해줬다거나 하는.

강: 나는 정말 우리 아버지의 열렬한 사랑을 받으면서 컸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고, 무릎에서 내려놓지 않고 키우셨으니까. 근데 돌아가셨잖아, 작년에….

양: 네…. 사랑이라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강: 그러니까 열심히 해, 사랑. 중요하니까.

“임권택 감독님? 아버지 같아”

강수연이 김동호 영화감독과 뭔가를 상의하고 있다. 그는 최근 김 감독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양: 귀한 영화를 보기 힘든 세상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지요?

강: 반대지, 반대. 지금은 귀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예전에는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가 아예 없었어. 프랑스 문화원 같은 곳이나 가야 외국 영화를 볼 수 있었고. 근데 요즘은 인터넷이나 여러 창구로 다양하게 볼 수 있잖아. 이렇게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서 볼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행복해.

양: 영화들은 볼 수 있는 환경은 너무 좋은데 예술적인 측면 또는 이야기와 교감이라는 측면의 굶주림을 채워줄 수 있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나 제작이 줄어든 것 같아요.

강: 내 생각은 달라. 옛날에는 아예 차단이 됐었잖아. 근데 지금은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어. 난 너무 행복한데? 근데 영화라는 것이 사실 시장 경쟁력 또한 있어야 하잖아. 거기서 밀려나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좋은 영화들이 있는 건 안타까워. 하지만 시장이 커진 만큼 영화의 다양성도 분명히 커졌고 앞으로는 더 커질 것이라 생각돼. 예술전용관도 계속 생겨나고 있잖아. 좋아지고 있는 거야. 이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대한 시장이 열려. 핸드폰, 태플릿 등등 어마어마한 다양한 시장이. 양감독은 다양한 표현의 창구가 생기는 좋은 시대에 태어난 거야. 그 안에서 예술영화들도 엄청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양: 연기자로서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요?

강: 내 나이에 맞는, 내가 천착해볼 수 있는 감성. 그게 사랑이 됐든 슬픔이 됐든 그런 걸 해보고 싶어.

양: 선배에게 임권택 감독님은 어떤 분이에요?

강: 임권택 감독님? 아버지 같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를 가르치고 이끌고 그리고 가장 나를 걱정하면서도 응원해주는 아버지.

양: 그럼 김동호 위원장(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현 문화융성위원장)님은요?

강: 마찬가지야. 딱 두 분. 김 위원장님과 임 감독님은 두 분 다 아버지 같아. 임 감독님은 나랑 30년이나 됐어.

양: 89년 모스크바영화제 세분 함께 가셨던 사진자료를 얼마 전에 봤는데 진짜 다들 젊고 어리더라고요.

강: 애기였지, 애기.(웃음)

양: (웃음) 영화감독 프랑스와 트뤼포와 알프레도 히치콕의 대담 중 트뤼포가 “감독님, 세상에 좋은 영화는 다 50~60대 감독들이 만들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했는데요.

강: 난 다른 생각이야. 안정적이고 깊이 있는 건 50~60대 감독들이지. 근데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어떤 신선한 감각, 확신이나 가능성이 있다면 연륜에 못지않은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어. 영화는 자기 안에 담은 삶의 깊이 딱 그 감성만큼 만드는 것 같아. 20대만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있고, 50대가 만들 수 있는 시각이 있지. 그걸 관객 입장에서 골라볼 수 있는 재미가 얼마나 크겠어.

양: 영화가 지루할 때는 도중에 극장을 나가시기도 하나요?

강: 그래도 끝까지 봐

양: 작품에 따라 극장 안이 감옥처럼 숨이 막히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강: 당연하지. 고정된 자리에서 봐야만 하잖아. 엄청난 감금이지. 그런데 영화를 한다는 사람이 그러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편집이나 기술적인 것들을 본다든지 내가 재미있어 할 만한 요소를 찾아.

양: 요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시죠.

강: 좀 다른 일들을 하니까 어려워. 안 해봤던 일들을 해야 하니까.

양: 그 전에도 부산영화제에서 김동호 명예 위원장님과 많은 일을 같이 하셨잖아요.

강: 아니 근데, 영화제 내부에 들어와서 지금 같은 구체적인 일들은 안 했었으니까. 내부 상황이나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일들은 아직 전혀 모르는 거잖아. 안 했던 일을 하는 게 되게 생소하긴 하지만 재미도 있어. 평생 안 할 줄 알았는데.(웃음)

양: 어떤 부분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된 것 같기도 하고.(웃음)

“현장이 가장 재미있어”

강수연은 영화<아제아제 바라아제>로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영화팬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강: 이 인터뷰는 언제 나와?

양: 8월 17일이요.

강: 8월 18일이 내 생일이야.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알아?(웃음) 이 기사가 생일선물이 될지 독이 될지 보겠어.

양: 헉, 네! 마지막 질문입니다. 강수연 인생이 뭘로 가장 바빴으면 좋겠나요?

강: 촬영.

양: 배우로서?

강: 난 (영화) 현장이 너무 재밌어.(웃음)

양: 근데 사실 이게 너무 당연한 답변이었던 것 같아요.

강: 현장이 너무 재미있어. 현장을 위해 재미없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일을 해. 그거 하고 싶어서. 인터뷰도 그중 하나야.(웃음)

양: 인생에서 가장 지독하게 힘들었던 때는 있으셨나요?

강: 안 힘들었을 때가 별로 없는데.(웃음) 다방면으로 공사다망하게 힘들었지.(웃음)

양: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셨어요?

강: 그냥 버텼지.

양: 옆에서 발벗고 도와준 사람은 없었나요?

강: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은 없어.

양: 제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강: 벗어나.

양: 일종의 고통은 예술가에게 영감이 될 때도 있잖아요.

강: 고통이 주는 영감은 한계가 있어. 그건 제대로 한 번 보면 질려. 나는 벗어남이 주는 영감이 훨씬 깊다고 생각해. 그러니 자기도 벗어나.(웃음)

양: 벗어나야지. 벗어나겠습니다.(웃음)

- 기획·정리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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