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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직격 인터뷰] 낡은 전국민건강보험 의료체계, 확 뜯어고칠 때

양봉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공공의료가 부족하고 민간의료 중심으로 발달한 한국 의료체계 아래에선 국민의료비가 갈수록 증가할 수밖에 없고 방역도 부실해진다”고 경고한다. [오종택 기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한다. 지난 5~7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부족한 공공의료 투자, 환자들이 큰 병원만 찾게 하는 불합리한 의료전달체계, 무질서한 응급실, 부실한 감염 관리, 고스란히 환자 부담으로 돌아가는 가족 간병 등 하나같이 해결에 돈이 많이 드는 과제다. 이에 따라 보건의료체계를 대대적으로 수술해 국민 부담은 줄이면서 서비스 효율을 높이는 일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경제학자로서 국민경제 차원에서 이를 다뤄온 양봉민(64)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를 만나봤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다양한 문제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보건경제학자 입장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가.

 “메르스 확산은 초기의 판단착오와 부적절한 대응 등이 직접적인 요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 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판단한다. 만일 한국 의료전달체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선진국형이었다면 피해가 크게 줄었을 것이다.”

 
 


※의료전달체계=환자가 대형·종합병원에 집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병·의원을 거친 다음 종합병원으로 가도록 하는 제도. 1989년 7월 1일 전국민 건강보험과 함께 실시됐다.

 -선진국형 의료체계란 무슨 의미인가.

 “환자 치료의 중심이 1차 의료기관인 동네 병·의원이고, 더욱 전문적인 진료와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1차 의료기관의 진료의뢰를 받아야 대학병원·대형병원을 찾을 수 있는 구조가 선진국형 의료전달체계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메르스 피해가 훨씬 적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부분의 OECD 선진국은 이러한 의료전달체계 구조로 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환자가 1차 의료기관 의사의 진단이 아닌 자기 스스로 판단에 따라 대형병원·대학병원을 찾는다. 따지고 보면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런 후진국형 의료전달체계가 메르스 확산의 큰 이유가 됐다.” 

 -동네 병·의원의 진료의뢰가 있어야 대형·종합병원에 갈 수 있게 하는 의료전달체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환자는 자가 진단과 비전문적인 선택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의료쇼핑을 하게 된다. 병원 수입에 급급한 대형병원은 이런 환자를 마다하지 않고 받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잉진료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부적절한 진료와 과다한 의료비 부담으로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 메르스 사태와 같은 공중보건 위기 때는 피해가 증폭된다. 실제로 이번 메르스 사태 때도 정부가 내놓은 예방수칙에 ‘진단이 필요하면 동네 의원을 찾으십시오’라고 나와 있다. 정부도 전달체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OECD 의료선진국처럼 1차 의료 중심의 전달체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사례다. 대형 종합병원이 중심인 한국 의료체계는 이제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어떤 방향의 의료개혁이 필요한가.

 “한국 의료는 공공의료가 부족하고 민간의료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런 제도 아래에선 의료비가 갈수록 증가하게 된다. 효율 면에서 문제가 많다. 공공의료가 맡아야 할 방역도 외면될 수 있다. 하지만 공공의료를 키우려면 예산이 많이 든다. 따라서 어떻게 자원을 배분하는 게 합리적인지를 잘 따져야 한다. 경제학에서 의료서비스는 ‘시장 실패’가 있는 대표적인 재화로 분류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전경제학의 기본인 수요-공급의 곡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특수 분야라는 이야기다. 이는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의료서비스의 특성 때문이다. 예로 우리는 팥빵을 살지 말지, 점심을 뭘 먹을지 자신이 판단해 소비한다. 하지만 의료서비스는 그렇지 못하다. 예로 고가 진단기기인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이 반드시 필요한지 아닌지는 소비자가 판단할 수 없고 관련 의료지식을 가진 공급자, 즉 보건의료인에게 판단을 맡길 수밖에 없다.”

 ※시장 실패=불완전한 경쟁이나 소비자와 생산자가 정보를 균등하게 확보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다. 이럴 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국민경제와 소비자 이익을 위해 공익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 그런 특성을 감안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문의 개혁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보나.

 “의료서비스는 시장 실패라는 특성이 있어 OECD 선진국에선 이를 시장 기능에 맡기지 않는다. 시장 실패 상황에서는 자원의 낭비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공공의료의 강화다. OECD 선진국은 시장 기능의 장점을 몰라서가 아니라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의료에 공공 기능을 대폭 강화시켰다. 의료에서 공공 기능이란 공공의료기관의 역할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전달체계를 철저하게 가동하는 것이다. 모든 환자가 1차 의료기관인 동네 병·의원을 거쳐 2~3차 큰 병원으로 가도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OECD 선진국이 체계적인 공공의료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은 바로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가 의료개혁의 핵심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한국에서 가장 효율적인 의료개혁 방안은 1차 의료 중심의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다. 그래야만 소비자의 의료쇼핑과 공급자의 중복 의료, 과잉진료를 막을 수 있다. 한국 수준이면 의료전달체계만 제대로 갖추면 동네 병·의원도 웬만한 환자를 다 진료할 수 있다고 본다. 비급여진료와 고가진료를 줄이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짧은 시간에 멋진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만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도 보완이라는 후속조치에 손을 놓으면서 비급여진료가 비대해지고 고비용 구조가 됐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 세계 29위의 국가에서 MRI·CT(컴퓨터단층촬영)·PET(양전자단층촬영장치) 등 고가장비의 단위인구당 숫자는 모두 세계 최상위권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OECD가 발표한 2000~2012년의 12년간(최신 자료에 해당) 의료비 증가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발표됐다. 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GDP)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현재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 OECD 선진국같이 국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보자면 탄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전국민 건강보험으로 국민이 많은 혜택을 보고 있지만 출범 25년이 넘은 지금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건강보험에서 커버해주지 않아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진료가 늘고, 과잉 의료가 일반화하고 있으며, 의료비를 늘리는 고가장비 의존도 문제다. 기존의 고비용 한국 의료체계를 개혁해 의료비를 줄이는 방안은 무엇인가.

 “좀 더 적은 비용으로 국민건강을 보호하는 길을 찾는 일은 의료개혁의 핵심이다. 나는 그것이 의료전달체계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유럽 국가 등 OECD 선진국은 정부의 주도 아래 대형병원 중심의 값비싼 의료체계에서 탈피해 1차 의료 중심의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했다. 그러한 틀을 갖추지 못한 미국은 그 한계를 큰 비용과 막대한 비효율로 체험하는 중이다. 그래서 지난 5년간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의료개혁에 박차를 가해왔다. 이제야 겨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입하는 단계다. 한국에선 대형병원들이 지나치게 민간화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OECD 국제 비교통계에서도 지적될 정도다. 이를 보완할 대형 공공의료기관의 추가 설립도 의료개혁 차원에서 하나의 대안이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중요한 것은 의료를 대형병원 중심의 민간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중심을 잡고 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점이다. 선진국형 건강보험제도를 만들어 한국의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정부가 이제 1차의료 중심의 의료전달체계 개혁에 또 하나의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변화 때 따를 수밖에 없는 불편에 따른 이해를 국민에게 구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건강보험이나 의약분업에서 보았듯이 국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잘 적응할 것이다. 따라서 개혁의 궁극적인 수혜자로서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의료체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 그렇다면 한국의 보건의료비 지출 수준은 적정한가. 의사들은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소비자는 의료비가 만만치 않다고 주장한다.

 “현재 GDP 중 보건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6%로 OECD 평균쯤 된다. 우리네 소득수준에서 보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문제는 이 비율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어 조만간 OECD 34개국 평균치를 훨씬 웃돌 것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

 -보건의료 분야는 대표적인 내수산업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보건의료 분야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여할 분야는 어떤 게 있을까.

 “ 보건의료 부문에서 경제활성화가 진정으로 가능한 부분은 제약산업 육성이라고 판단한다. 과학도 살고, 연구 분야도 살고, 산업도 살고, 고용도 창출이 되고, 그러면서 계속 성장할 수밖에 없는 세계의 제약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제약산업 육성이다. 물론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제대로 된 산업정책이 수반된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말이다. 동네 병·의원 중심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제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상급 종합병원으로 가게 하는 제도, 그래서 정리되고 정립된 의료전달체계하에서 필요한 의료 이용을 하는 국민, 그로 인해 절감되는 재정 지출을 제약산업 육성으로 과감하게 투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병·의원에 가보면 고가의 특수진료로 특화돼 일반진료를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목소리 성형 전문 클리닉이라 후두염은 보지 않는다 하고, 안과에 갔더니 시력교정만 할 뿐 눈병 치료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 이런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런 현상 역시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의료 상업화의 결과라고 본다. 심지어 간단한 질환까지 대형병원으로만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서 동네 1차 의료의 특수 클리닉화는 어떻게 보면 생존의 한 방편이다. 현 상황에서는 이를 금지하거나 규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향후 의료전달체계의 개혁으로 동네 병·의원이 1차 의료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구조로 간다면 이런 상업적 전문화는 어느 정도 억제되리라 본다. 어쩌면 의료전달체계의 구조적 개혁이 이러한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글=채인택 논설위원
사진=오종택 기자

◆보건경제학=경제학의 한 분야로, 보건의료 분야 재정지출의 비용 대비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한다. 보건의료비가 형평성 있게 지출돼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건강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한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보건의료 분야 지출은 지속적으로 늘어왔으며 환자 요구가 많아짐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의료재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국민경제에서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건강보험체계, 의료전달체계, 신의료기술의 타당성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 지평이 확대되는 이유다.


양봉민 교수는 …

1985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부임해 30년째 근무하고 있다. 보건의료·환경 등 분야에서 오랫동안 정부 자문에 응해 왔으며 시민단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의료 소비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보건의료비의 효율적인 사용을 고민해 온 학자다. 포괄수가제 등 혁신적인 국민의료비 절감 방안을 국내에 다양하게 소개했다. 한국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보건경제학 분야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약력 : 1951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제학 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제학과 조교수, 매사추세츠 주립 로웰대 경제학과 조교수.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보건경제학회장, 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장 역임. 2012년부터 현재까지 SCI급 국제 전문 학술지인 ViHRI(Value in Health Regional Issues)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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