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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걷다보면] 여기는 칼라파타르 정상입니다.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7회



해발 5120m에 위치한 로지 고락셉으로 가는길.




히말랴아 EBC 트레킹의 마지막 숙소(로지) 고락셉(5120m)에 도착한 건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높은 곳까지 걸어서 온 것이다. 로지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난 세상을 모두 가진 사람처럼 한없이 기뻤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간 늦은 발걸음과 몸이 불편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일행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짐과 카메라를 풀어내려 놓았다. 어깨는 날아갈 듯 가벼웠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여기에서 하루를 머물고 내일 마지막 칼라파타르(5545m)에 올라간다. 막상 칼라파타르에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칼라파타르까지 올라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고, 출발부터 고산병 증세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증상은 아침에 더 심하다.



해발 5120m 에 위치한 롯지 고락셉. 왼쪽편 중간에 있는 검은 산이 칼라파타르다.




밖으로 나가 칼라파타르를 바라보았다. 검게 그을린 듯 칼라파타르는 나를 보며 웃으며 반기고 있었다. 마치 자기에게 당장 달려오라는 것 같았다. 강하게 불어오던 바람이 잠시 멈추었다. 시간이 정지된 듯,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나는 칼라파타르를 지금 올라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당시 내가 왜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샘에게 칼라파타르에 올라가겠다고 이야기하고는 셀파 '짱가'만 데리고 로지를 나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손짓하는 칼라파타르를 향했다.



칼라파타르를 올라가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이곳까지 와서 포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정상이 눈앞에 보였지만, 가도 가도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산소가 급격히 부족해져 숨을 쉬기 곤란했다. 나는 이미 고락셉까지 오면서 체력을 거의 소진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칼라파타르 중간쯤에 올라와 있었다. 내려가기에는 너무 많이 올라온 것이었다. 무조건 정상을 향해 걷었다.



해질녘 에베레스트. 가운데 붉은 띠를 두르고 있는 산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이다.




조금 걷다 쉬고를 계속 반복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바람이었다. 계속 불어오는 바람에 자칫하면 몸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뒤에 있던 짱가가 내 허리춤을 꽉 잡았다. 그는 나의 무모한 결정에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지금까지 나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 더 위험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조이지만 발걸음은 쉬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었다. 칼라파타르는 내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싫었는지 발이 붕 뜰 정도의 바람으로 나를 밀어냈다. 순간 몸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을 때 뒤에서 허리춤을 잡고 있던 짱가가 손에 힘을 꽉 줬다. 그의 손은 나에게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다.



1993년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숨진 남원우, 안진섭 대원의 추모비.




정상을 조금, 아주 조금 앞둔 곳에서 짱가가 위험하다며 내려가자고 했다. 바람이 생각보다 심한 탓에 셀파 짱가조차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정상을 한번 쳐다보고는 등을 졌다. 바람을 버티며 시간을 벌었다. 내려가는 것이 맞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산 정상을 쳐다봤다. 여전히 칼라파타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고 주춤거리는 사이 바람이 멈췄다. 내 몸을 날려 버릴 것 같던 바람이 사라졌다. 이제 더 생각할 게 없었다. 다시 정상을 향해 쉬지도 않고 달리듯이 올라갔다. 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섰다.



고 박영석 대장은 이 추모비에 `그대 더 높은 눈으로 더 높은 산을 산 위세서 바라보기 위해 함께 왔던 악우 남원우,안진섭. 여기 히말라야의 하늘에 맑은 영혼으로 남다`라고 적었다.
내 옆에 있는 짱가는 아직도 내 허리춤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정상에 오르며 바라본 에베레스트는 구름에 가려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잠시 앉아 멍하니 에베레스트만 바라보았다. 속절없다는 말은 이때 하는 거 같았다. 짱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가기로 했다.



갑자기 짱가가 소리쳤다. 그의 손이 에베레스트를 향하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에베레스트와 로체, 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 문이 열리듯이 구름이 에베레스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가운데 우뚝 솟은 에베레스트의 봉우리가 붉게 칠해졌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불타는 붉은 색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에베레스트에 영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심장이 북을 두드리듯이 뛰었다. 손이 떨렸다. 카메라를 쥔 오른손에 힘을 주고 카메라를 들어 붉은 에베레스트와 고산을 찍었다.



지금도 그때의 셔터소리를 기억한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 잠잠해지고 고요한 정적을 가르던 그 셔터 소리.



잠시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에베레스트는 다시 구름으로 가려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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