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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 위령탑도 없다니 말이 됩니까

정성길 명예관장이 간토대학살 장면을 담은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정 관장은 “간토대학살 희생자는 부두 하역, 탄광 작업, 철도 건설 등을 하던 노동자”라고 말했다. [대구=정혁준 기자]

“올해로 간토(關東)대지진(1923년 9월 1일) 때 조선인이 대량 학살당한 지 92년 됐는데 한·일 정부 모두 사과나 보상이 없습니다. 선조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사망자 수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달 20일 대구 계명대에서 만난 정성길(74)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은 간토대학살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토대학살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괴소문이 일본 전역에 돌자 일본 자경단과 군인, 경찰이 조선인들을 죽창이나 몽둥이로 살해한 사건이다.

 정 관장이 위령탑 설립을 결심한 것은 2013년이다. 일본이 고교 역사교과서에서 조선인 학살 내용을 삭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 관장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막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간토대학살을 담은 사진 120여 장을 엮어 자료집을 만들고 위령탑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위령탑 건립 장소로 경북 영덕과 인천을 염두에 두고 서명운동을 했다. 일본 간토지방과 위도가 비슷한 영덕에 세워 넋을 기리거나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인천에 세워 참상을 널리 알리자는 의도였다. 경북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해 중·고교생 8만 60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정 관장은 “학생들로부터 ‘우리에게 그런 역사가 있는 줄 몰랐다. 더 관심 갖겠다’는 말을 들으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전국을 누벼온 정 관장의 발은 신문배달, 퀵서비스 등에 주로 쓰이는 소형 승합차다. 수동형 기어라 운전도 쉽지 않다. 가족들이 "일본이랑 싸워봐야 도움 안 된다”고 말렸지만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다”며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위령탑 설립이 쉽지만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간토대학살은 정부 내 담당 부서도 없다. 간토대학살 진상규명을 추진해온 ‘1923 한일 재일시민연대’ 김종수 목사는 “그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강제동원진상규명회’가 만들어져 일제 하 범죄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왔지만 간토대학살은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없다”며 "정부는 ‘학살 희생자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다’ ‘국위를 선양한 재외동포가 아니다’는 이유로 외면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이렇다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국회의원 103명이 지난해 4월 발의한 ‘간토대학살 특별법’은 1년 5개월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정 관장은 “정부가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나서야 한다”며 “독일 총리가 유대인 학살기념비 앞에서 사죄한 것처럼 일본이 간토대학살 위령탑에서 사죄하도록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대구=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사진=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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