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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부국강병 이후의 중국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중국 근대사의 치욕을 상징하는 장소로 원명원(圓明園)만 한 곳이 또 있을까. 베이징 서북쪽에 자리 잡은 청나라 황제의 별궁 말이다. 원명원은 18세기 초 청나라 4대(代) 황제였던 강희제가 넷째 황자인 옹친왕 윤진에게 하사한 ‘선물’로 처음 지어졌다. 옹정·건륭·가경·도광제를 거치며 증축과 확장을 거듭한 끝에 원명원은 동·서양 양식이 조화를 이룬 건축·조경 예술의 금자탑으로 우뚝 섰다. 호수와 정원, 수로와 숲 사이로 각종 건축물이 어우러진 몽환적 풍경 앞에서 영국 왕 조지 3세의 특사였던 조지 매카트니는 할 말을 잊었다. 그는 “지상 최고의 경관에 완전히 매료돼 그 감동을 뭐라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고 술회했다. 매카트니를 만난 건륭제가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며 통상 확대를 거절한 것을 무지한 오만으로만 볼 건 아니다.



 하지만 1860년 원명원은 졸지에 폐허로 변한다. 제2차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불 연합군은 중국을 욕보일 의도로 청 황제가 애지중지하던 원명원만 콕 찍어 파괴했다. 동화 속 ‘마법의 성’ 같았던 원명원은 ‘서양 오랑캐’의 야만적 방화와 약탈로 순식간에 쑥대밭이 됐다. 지금도 원명원은 부서진 채로 보존돼 중국의 수모를 상기시켜주는 역사박물관 구실을 하고 있다. 호수와 정원은 정비가 됐지만 산산조각 난 건축물은 그때 그대로다.



 지난 150년 중국의 역사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역사였다. 힘이 없어 서구 열강은 물론이고 이웃 나라 일본에도 당했던 치욕을 씹고 또 씹으며 구국과 부흥을 위해 절치부심했다. 굴욕과 수치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전력을 쏟았다. 마침내 중국은 ‘흑묘백묘(黑猫白猫)’의 실용주의를 앞세운 덩샤오핑(鄧小平)의 지도 아래 개혁·개방에 시동을 걸었고, 불과 30여 년 만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으로 부상했다. 자신감을 되찾은 중국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경제적 굴기를 세계에 과시하는 이벤트였다. 3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은 중국의 군사적 굴기를 상징하는 이벤트다. 세계 30개국 지도자와 19개국 정부 대표, 유엔 등 10개 국제기구 수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은 1만2000명의 정예병력과 최첨단 미사일과 전투기를 총출동시켜 중국의 물리적 힘을 과시하게 된다. 열병식은 부국에 이어 강병까지 달성함으로써 치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토대를 완성했다고 세계에 알리는 신고식의 의미를 갖는다. 2015년 9·3 전승절 퍼레이드는 중국이 군사대국으로 부활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열병식을 지켜보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의 실현에 성큼 다가섰다고 흡족해할지 모른다.



 중국은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부국강병이 치욕에 대한 방파제는 될지 몰라도 진정한 대국의 지위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국의 진정한 힘은 돈과 힘으로 남의 손목을 비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품격과 권위로 남의 자발적 동조를 이끌어 내는 데 있다. 그 요체는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말하는 소프트파워다. 하지만 소프트파워에서 아직 중국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중국 언론은 현직 미국 동맹국 지도자 중 유일하게 박근혜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하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중국이 대국이라면 그보다는 왜 미국의 다른 동맹국 지도자들은 열병식을 외면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그런 힘든 결정을 한 속마음을 헤아리고, 그에 상응하는 전략적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국다운 풍모다.



 다른 게 아니다. 무엇보다 북한 핵이라는 난제 해결에 중국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이끄는 데 중국이 가진 지혜와 외교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다. 시 주석은 이달 말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국빈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게 된다. 그 자리에서도 북한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부국강병을 넘어 중국이 존경받는 진정한 대국이 되길 원한다면 완력으로 뜻을 관철하기보다 대화로 남을 설득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근육질을 과시할 게 아니라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동시에 모든 중국인이 고루 자유롭고 넉넉하게 잘사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의 이상 실현 말이다. 그것이 중국이 155년 전 원명원의 치욕을 씻고 진정한 대국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열병식은 그런 각오를 다짐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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