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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586> 자연에서 배운다 … 청색기술

이철재 기자
한해살이 풀인 도꼬마리는 씨앗에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달렸습니다. 덕분에 씨앗이 동물에 착 달라붙어 먼 곳까지 퍼질 수 있습니다. 1941년 스위스의 조르주 드 메스트랄은 옷에 잔뜩 붙은 도꼬마리에 흥미를 느끼고 이를 본 따 벨크로(Velcro)를 만들었습니다. 손쉽게 떼고 붙일 수 있 는 여미개였습니다. 흔히 ‘찍찍이’라고도 하죠. 이처럼 자연에서 모방하는 ‘청색기술’을 알려 드립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자연을 부러워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신화를 지어냈다. 그러나 인간은 부러움의 한숨만 쉬지 않았다. 궁리를 하고, 뚝딱거려 비행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연에서 영감을 받거나(bioinspiration), 자연을 모방하는(biomimicry) 기술을 ‘청색기술(Blue Technology)’라고 한다. 여기서 청색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색깔이자,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일컫는 ‘블루오션’의 블루를 뜻한다. 지식융합연구소 이인식 소장은 “청색기술은 벨기에의 환경운동가 군터 파울리의 저서 『청색경제』에서 비롯한 개념”이라며 “파울리는 자원을 고갈하는 적색경제, 저탄소 성장의 녹색경제의 대안으로 아예 오염이 발생하지 않는 청색경제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생물학·생명공학·나노기술·재료공학·건축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청색기술을 연구·개발 중이다. 이 소장은 “자연은 오랜 기간 진화를 통해 최적화했다. 인류는 그 뒤를 따라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청색기술은 미국·유럽·일본도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한국이 청색기술에 집중투자할 경우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선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도 환경오염·자원고갈 없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사막풍뎅이에서 영감 받은 에어드롭

인류는 태초부터 자연을 관찰하고 따라하면서 문명을 일궈왔다. 첨단기술도 예외가 아니다. 물총새는 길쭉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 모양 때문에 물속 먹이를 재빨리 낚아챈다. 일본의 고속열차 신칸센 500계는 물총새를 본뜬 디자인으로 소음문제를 해결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청색기술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프리카 남서부의 나미브 사막. 이곳엔 물기라곤 한 달에 서너 번 바람에 실려 오는 안개뿐이다. 평균 연간 강수량이 100㎜ 남짓.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나미브사막풍뎅이(Stenocara gracilipes)는 살아남았다. 생존에 필요한 물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몸길이 2㎝의 이 풍뎅이 등에는 돌기가 미세하게 돋아 있다. 돌기의 지름은 15~2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 분의 1m). 풍뎅이는 밤에 사막 모래언덕으로 기어 올라간다. 해가 뜨기 직전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와 안개가 낀다. 그때 풍뎅이는 물구나무를 선다. 안개 속 수증기는 풍뎅이 돌기 끝 부분에 달라붙는다. 돌기의 끄트머리는 물과 잘 달라붙는 친수성(親水性)이기 때문에 수분이 하나둘씩 모인다. 물방울이 맺히면 돌기 아래로 떨어진다. 여기는 왁스처럼 물을 밀어내는 소수성(疏水性)이다. 물방울은 흘러 풍뎅이 입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풍뎅이는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

 호주의 디자이너 에드워드 리나커는 나미브사막풍뎅이에서 영감을 받아 에어드롭을 만들었다. 이 장치는 땅에 박힌 파이프로 공기를 모은다. 땅속 온도가 낮기 때문에 파이프 공기의 수증기는 이슬방울로 맺힌다. 물방울은 땅속으로 스며든다. 에너지를 안 들이고도 깨끗한 물을 농작물에 댈 수 있다. 에어드롭은 2011년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포상하는 제임스다이슨상을 받았다. 에어드롭은 건조한 지역에서도 1㎤ 부피의 대기에서 하루 11.5ml의 물을 얻을 수 있다.


흰개미집 아이디어로 자연 냉방 건물

아프리카 나미브사막풍뎅이는 스스로 물을 만들어낸다. 에어드롭(오른쪽)은 풍뎅이를 따라 설계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다이슨어워드]

 고속열차 신칸센(新幹線)은 일본 과학기술의 상징이다. 특히 1996년에 나온 500계(系)는 최대속도 시속 320㎞로 신칸센 모델 중 가장 빠르다. 이 열차는 앞머리가 항공기와 비슷하게 매우 뾰족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특이한 모습은 디자인이나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개발 당시 500계는 소음이 심했다. 특히 좁은 터널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면 굉음이 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터널 속 공기가 갑자기 압축돼 압력파가 발생하고, 이 파동이 열차와 함께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소음이 일어났다.

 신칸센의 소음문제를 해결해준 건 물총새였다. 물총새는 하늘을 날다 물고기를 발견하면 빠르게 다이빙해 낚아챈다. 저항이 약한 공기에서 강한 물로 빠르게 진입하는데도 물이 거의 튀지 않는다. 먹잇감이 눈치챌 겨를도 없이 말이다. 길쭉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 덕분에 수면에 진입할 때 파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엔지니어들은 물총새 부리와 머리 모양으로 열차를 다시 디자인했다. 그랬더니 소음이 크게 줄었다.

흰개미 둥지(왼쪽)의 구조는 에어컨 없는 쇼핑몰 이스트게이트(오른쪽) 설계의 바탕이 됐다. [사진 국제동물구조연맹, 믹피어스닷컴]

 자연계 최고의 건축가는 흰개미다. 아무런 도구 없이 2m 이상의 개미탑을 만든다. 사람으로 치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25배 높이라고 한다. 이 개미탑 안에는 육아실·버섯재배방·곳간·비상구 등 없는 게 없다. 더 놀란 건 아프리카 환경 속에서도 흰개미의 둥지는 섭씨 27도, 습도 60%를 늘 유지한다는 점이다. 비밀은 공기의 흐름이다. 개미탑 내부는 엄청나게 많은 통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통로는 표면의 수많은 구멍을 거쳐 바깥과 연결된다. 둥지 안 덥고 탁한 공기는 굴뚝을 통해 위로 빠져나간다. 그 자리를 지표면 아래 관을 통해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 메운다. 흰개미는 개미탑의 구멍들을 열고 닫으면서 공기의 흐름을 조절할 줄 안다.

 남아프리카의 건축가 믹 피어스는 96년 짐바브웨에 세계 최초의 자연냉방 건물 이스트게이트 센터를 세웠다. 에어컨 없는 쇼핑센터다. 피어스는 흰개미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건물의 옥상에 통풍 구멍을 뚫었다. 뜨거운 공기가 나가는 굴뚝이었다. 또 가장 아래층을 완전히 비워 버리고, 지표 아래에도 구멍을 뚫어서 찬 공기를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효과는 놀라웠다. 쇼핑센터는 한여름 대낮에도 에어컨 없이 실내 온도를 섭씨 21~25도로 유지할 수 있었다. 사용하는 에너지도 다른 건물들에 비해 10% 수준이었다. 전력이 소모되는 곳이라고는 공기 순환을 거드는 선풍기뿐이었다.

 얼룩말의 무늬도 자연냉방의 단초가 된다. 얼룩말의 흰 줄무늬는 햇빛을 반사해 열기를 낮춘다. 반대로 검은 줄무늬는 햇빛을 흡수해 온도를 높인다. 검은 줄 무늬의 더운 공기와 흰 줄무늬의 찬 공기 사이 흐름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표면온도가 8도까지 내려간다. 스웨덴의 건축가 안데르스 나이퀴스트는 건물에 흰색과 검은 색을 함께 칠한 뒤 표면온도를 낮춰 에너지를 절약하는 걸 보여줬다.

 습지의 물방울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1㎜ 정도의 작은 동물이 보인다. 완보동물(緩步動物·Tardigrade). 생김새가 곰을 닮아 물곰(Water Bear)이라고도 불린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물곰은 ‘불사신’이다. 끓는 물에 넣어도, 영하 200도로 얼려도 물곰은 죽지 않는다. 생명 활동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가사(假死) 상태에 빠지고, 적절한 환경으로 돌아오면 다시 깨어나기 때문이다. 비밀은 트리할로오스(trehalose)라는 당류(糖類)에 있다.

 영국의 브루스 로저는 98년 완보동물의 당류를 이용해 냉장장치 없는 냉장법을 개발했다. 이 냉장법은 백신이나 생체 조직을 보관하는 데 쓰인다. 특히 전기가 공급되지 않거나 전기공급이 불안정한 개발도상국에서 필요한 기술이다. 또 전기를 절약할 수 있고, 냉장시설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도 줄일 수 있다. 최대 2년간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 현재 개발 중이다. 앞으론 우주여행에 사용될 전망이다.


연잎효과 이용한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

 연은 흙탕물에서 살지만 잎사귀는 항상 깨끗하다. 비가 내리면 물방울이 잎을 적시지 않고 주르르 흘러내리면서 잎에 묻은 먼지를 쓸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연잎효과(Lotus Effect)라고 한다. 연잎은 물을 배척하는 성질이 극심하다(초(超)소수성). 이유는 눈에 안 보이는 작은 솜털이 연잎을 뒤덮고 있어서다. 그래서 물방울이 연잎 표면을 적시지 못한다. 독일의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틀로트는 연잎효과를 이용한 옷에 대한 특허를 냈다. 이 옷 표면엔 미세한 보푸라기들이 달라 붙어있다. 그래서 방수효과가 뛰어나다. 또 포스텍 화학공학과 용기중 교수와 이승협 박사는 연잎효과를 이용한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저항메모리 소자·RRAM)를 개발했다. 이 메모리 소자는 물속에서도 젖지 않고 전원이 없어도 정보를 계속 저장할 수 있다. 메모리 소자 표면을 텅스텐 산화물 분자로 오돌토돌하게 처리했다.

 벌레잡이통풀은 주머니 모양의 잎을 가졌다.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이다. 주머니잎 안쪽은 기름을 칠해놓은 듯 미끄럽다. 그래서 주머니에 들어간 벌레가 기를 쓰고 올라가려 해도 결국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조애나 에이젠버그는 벌레잡이통풀처럼 모든 게 미끄러지는 표면을 개발했다. 이 표면을 입힌 옷은 빨아 입을 필요가 없다. 때가 타지 않기 때문이다.

 이밖에 모기의 침돌기를 흉내 낸 무통주사기 ‘나노패스33’, 고래 지느러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풍력 터빈 ‘웨일파워’, 홍합과 도마뱀의 접착력을 본뜬 접착제 ‘게켈’ 등은 청색기술을 이용해 시중에 나온 제품들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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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