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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홀대받는 한국의 열병식

남정호
논설위원
나이 든 이들에겐 다 있다. 1980년대까지 툭하면 있었던 학생 동원의 추억. 그땐 대통령 귀국 환영식 등 웬만한 행사 때마다 수천 명의 중고생이 불려 갔다. 나 역시 중학 시절 광화문 대로에 서서 진이 빠지게 기다린 기억이 있다. 그러다 시커먼 대통령 차가 휙 지나가면 마구 깃발을 흔들어댔다. 드디어 집에 가게 됐다는 기쁨에.

 10월 1일 국군의 날 퍼레이드도 학생들이 동원되던 단골 행사였다. 당시 여의도광장에서 출발한 군인 수만 명은 서울 중심부까지 행진해 왔다.

 그때마다 군인들은 항상 오와 열을 칼같이 맞춘 밀집대형으로 행진한다. 굳이 밀집대형을 짜는 데는 사연이 있다. 칼과 방패는 물론 구식소총으로 싸웠던 근세까지도 밀집대형은 최강의 전법이었다. 로마군단이 그랬듯 어떤 공격에도 흩어지지 않고 밀어붙이면 아무리 소수라도 무적이었다. 기관총 발명 후엔 자살행위가 됐지만 말이다.

 학생 동원의 텁텁한 기억 탓인지, 아니면 군부독재 때문인지 이 땅엔 군사 퍼레이드를 안 좋게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라 위해 목숨 던지는 군인들의 당당함에 기뻐하고 경의를 표하는 게 나쁠 리 없다. 게다가 열병식은 군 사기 진작에 특효약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41년 11월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는 독일에 함락 직전이었다. 길어야 두 달이란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때아닌 열병식을 지시하고 TV로 생방송하게 한다. 모욕감을 느낀 히틀러는 승리를 확신하며 진격을 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열병식으로 사기가 오른 소련군의 반격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으로 대부분 나라가 매년 군인의 날 등에 맞춰 화려한 군사 퍼레이드를 연다. 독립기념일 등 다른 때도 빠지지 않는다. 군이 사랑받는다는 증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3일로 예정된 중국 항일전승 열병식에 참석한다. 중국은 국력 과시를 위해 어느 때보다 화려한 열병식을 선보인단다.

 80년대 말까지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노태우 정권 이후 국군의 날 퍼레이드는 3년에 한 번으로 줄었다. 이마저 93년 첫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계룡대에서 조촐한 행사를 열되 5년에 한 번 시가행진을 하는 걸로 정착됐다. 보통 홀대가 아니다.

 이번 남북 대결에서 봤듯 군은 희생을 감내하는 우리의 든든한 방패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이제 22년. 군부에 찍힌 ‘반민주’란 주홍글씨도 지워 줄 때가 되지 않았나.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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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