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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서의 스윙맨]원투펀치, 마운드에서 제일 강력한 단어

다저스의 원투 펀치 사진=베이스볼 아메리카 캡처






팀이 거둔 69승에서 3분의 1이 넘는 23승을 합작했다. 팀투수진은 1105이닝을 던졌는데 이중 349.1이닝을 책임졌다. 한 명은 평균자책점은 2.29이고 나머지 한 명은 1.67이다. 이 정도면 사상 최고의 원투펀치라 할 만하다. 28일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 로스 엔젤레스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 얘기다. 원투펀치를 보유한 팀은 승리 방정식을 세우기 쉽다. 5선발 로테이션의 경우 ‘원투’가 승리를 합작하고 나머지 셋이 1승 이상만 거둔다면 승률 6할을 넘기는 일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2001년 창단 첫 우승을 거머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만 봐도 그렇다.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은 팀이 거둔 92승의 절반에 가까운 43승을 일구어 냈다. 둘의 WAR(대체선수 승리기여지수)은 존슨이 9.4, 실링이 8.5였다.



KBO 리그도 마찬가지다. 2000년 이후 13승 이상과 2점대 이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 두 명을 동시에 보유했던 팀은 6팀 뿐이다. 이 중 세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팀의 중심축으로서 팬들을 열광케 하고, 감독은 느긋하게 만든 사상 최강의 원투 펀치를 알아 봤다.











원투 펀치의 원조, 동시에 역대 최강은 바로 이들이 아닐까 싶다. 1985년 삼성의 김시진과 김일융이다. 이 둘은 똑 같이 25승씩을 거두면서 50승을 합작했다. 그해 삼성이 거둔 승수가 77승(32패 1무)임을 감안하면 ‘둘만 야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삼성은 승률 0.706으로 창단 첫 전후기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두 선수의 괴물 같은 성적을 좀더 얘기해 보자면, 김시진은 47경기에 등판(선발 등판은 29회)해 269.2이닝을 던졌다. 1983년 프로 데뷔 이후 3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기록한 것이다. 김일융은 34경기에 나왔고(선발등판 28) 226이닝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13승을 거둔 뒤 한국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들의 맞수가 있다면 1989년 해태 왕조의 선동열과 이강철이 적임자다. 선동열은 21승, 이강철은 15승을 거두며 그해 해태의 65승 중 절반 이상을 책임졌다. 해태는 둘이 맹활약한 그 시즌에서 전인미답의 한국시리즈 4연패의 업적을 이뤘다. 1989년은 선동열이 팔방미인으로서 빛나던 해였다. 그는 선발로 12번 등판해 9승, 구원으로 24번 등판해 12승(9세이브)을 올렸다. 평균자책점은 1.17. 같은 해 프로에 데뷔한 새파란 신인인 이강철은 그런 선동열에 주눅들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15승 모두를 선발승으로 챙겼다. 이중에 8번의 완투(3완봉)를 해냈다. 평균자책점은 3.23. 이강철은 그해를 시작으로 1998년까지 10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달성했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대체 어느 쪽이 더 강할까. 삼성의 원투펀치 시절인 1985년 당시 선수로 활약했던 김경문 NC 감독은 "김시진과 김일융의 공은 타자들을 확실히 압도했다"며 이들에게 점수를 줬다. 반면 선동열과 이강철의 공을 상대해야 했던 김광림(당시 OB) NC 코치는 "선동열의 강속구와 이강철의 변화구는 타자들 사이에서도 치기 어렵기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당사자의 말도 들어보자. 김시진은 "1985년엔 선발로 나온 다음날 중간계투로 나와 승리를 올리기도 했다"며 "마운드 분업화가 확립된 지금과 객관적 비교는 불가능하다"며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김시진이 말한 대로 마운드 분업화의 시대인 2000년으로 넘어가 보자. 여기엔 원투쓰리 펀치가 있다. 현대 왕조의 굳건함을 알리는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이 그들이다. 이 삼총사는 동시에 18승을 거두면서 전무후무한 한 팀에서 동시에 다승왕 3명 배출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팀이 올린 91승의 59%가 넘는 승수를 단 세명이 달성한 것이다. 당연히 팀은 우승. 각각의 기록을 살펴보겠다. 최고참인 정민태는 18승 6패 평균자책점 3.48을 거두며 이전 해에 이어 2년 연속 다승왕 수상했다. 1998년 신인왕에 빛나는 김수경도 그에 못지 않다. 개인 생애 최다이닝인 195이닝을 먹어 치우며 역시 18승 8패 평균자책점 3.74를 기록했다.



그러나 셋 중 에이스를 뽑자면 역시나 돌아온 풍운아, 임선동이었다. 아마추어 최고의 투수로 조명받던 그는 이전 해 현대에 입단했으나 단 1패만을 거뒀다. 절치부심했다. 2000년은 달랐다. 임선동은 다승왕에 이어 최다탈삼진(174개) 부문까지 거머쥐며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다음 해에도 14승을 거두며 이름값을 하나 했는데, 거기까지였다. 2002년 8승 6패로 기우뚱 하더니 2006년 그라운드를 떠날 때까지 4년 내내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2000년대 야구로 들어 오면서 생긴 변화, 바로 외국인 원투펀치의 등장이다. 특히 2007년은 외국인 원투 펀치를 보유한 두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한 해였다. SK의 로마노와 레이번, 두산의 리오스와 랜들이 그들이다. 김성근 감독의 부임과 함께 창단 첫 우승을 노리는 SK의 무기는 탄탄한 마운드였다. 3.24란 팀 평균자책점은 리그 1위다. 막강한 투수력의 비결은 외국인 듀오였다. 당시 SK 1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모두 세 명인데 이중 두 명이 외국인 선수였다. 나머지 한 명은 11승을 거둔 채병용. 레이번은 17승 8패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했다. 레이번은 여전히 SK 구단 역사상 외국인 투수 중 최다승을 거둔 이다. 로마노 역시 12승 4패 평균자책점 3.69라는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무게감은 두산의 외국인 듀오에게 더 실린 게 사실이다. 외국인 선수 최초이자 21세기 들어 단 두 명 뿐인 20승 달성 투수인 리오스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리오스는 그 해 22승 5패 평균자책점 2.07이라는 흠잡을 데 없는 성적을 거뒀다. 열매는 달콤했다. 투수 주요부문 2관왕 및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 시즌 MVP 모두 그의 차지였다. 12승 8패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한 랜들도 뒤를 받쳤다. 당시 두산이 전반기에 올린 43승 가운데 두 투수는 이에 절반에 가까운 21승을 합작했다. 이 둘은 2007년 두산이 보유한 10승 이상 달성한 투수다.



그로부터 2년 후, 외국인 원투펀치를 보유한 팀이 다시 우승을 차지한 것은 흥미로웠다. 구톰슨, 로페즈의 KIA다. 13승 4패 평균자책점 3.24의 구톰슨, 14승 5패 평균자책점 3.12의 로페즈를 보유한 KIA는 패넌트레이스 우승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SK를 꺾으며 10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물론 외국인 선수와 토종의 조합도 있다. 2002년 삼성의 우승 멤버 가운데는 임창용과 엘비라라는 원투 펀치가 존재했다. 임창용은 17승, 엘비라는 13승을 거두며 30승을 합작 해냈다. 특히 5월 매트 루크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들어온 엘비라가 압권이었다. 평균자책점 2.50을 기록할 정도로 국내 타자들이 맥을 못췄다. 그를 상대한 박경완(당시 현대)은 "팔을 아무리 뻗어 쳐도 방망이가 닿지 않는다. 그런데도 포수가 원하는 곳으로 공이 그냥 빨려들어가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2010년 SK의 김광현과 카도쿠라 켄의 '케미'도 훌륭했다. 김광현은 17승을 거두며 그 해 다승왕을 차지했다. 14승의 카도쿠라는 시즌 초반인 4월에 등판한 6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며 5년 만에 부활한 월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배트맨과 로빈. 배트맨이 1인자라면 로빈은 2인자니 조력자의 의미다. 원투 펀치라 할지언정 누군가 1명은 조연에 머물러야만 한다. ‘두 번째 펀치’ 역할의 적임자가 있다. 한화의 문동환은 2005년은 송진우와, 2006년은 류현진과 원투펀치를 이뤘다. 송진우가 2005년 11승 7패 평균자책점 3.81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을 때 문동환은 10승 9패를 기록하며 명품 조연 역할을 자청했다. 그 해 한화에서 배출한 단 두 명의 10승대 투수가 바로 이들이다. 10승이라는 숫자가 다소 작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문동환은 그 해 퀄리티 스타트를 18회 기록하며 19회의 손민한(당시 롯데)에 이어 리그 투수 중 2위에 올랐다. 그가 던진 173.2이닝 또한 그 해 토종 투수 중 최다였다.



이듬 해 짝꿍은 고졸 신인 류현진이었다. 18승 6패 평균자책점 2.23으로 투수 부문 크리플 크라운과 시즌 MVP를 동시에 수상한 괴물의 탄생 옆에는 문동환이 있었다. 문동환은 류현진 보다도 1경기 많은 31번을 등판해 16승 9패 평균자책점 3.05라는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성적은 말 그대로 로빈이었다. 리그에서 다승은 2위, 최다이닝은 국내 투수 중 2위 등을 기록했다. 역시 그 해 한화에서 배출한 두자릿수 승수를 거둔 투수 두 명이다. 한화에서 다승 1-2위를 나눠 갖는 것은 창단 후 처음이었다.



사실 문동환의 야구 인생 자체가 주인공과는 멀었다. 시작은 좋았다. 1997년 롯데를 통해 프로에 뛰어든 뒤 2년 후 17승 4패를 거두며 최고의 시즌을 구가했다. 그러나 이후 4년 동안 도합 15승을 거두는 데 그치는 등 곤두박질 쳤다. 그는 고향 부산을 떠나 ‘재활 공장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한화의 김인식 감독 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마침내 재기에 성공한다. 2006년 6월 29일 현대전에서 7년만에 완봉승을 거둔 뒤 그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소감을 말했다. “이 감격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온라인팀=이상서 기자 cod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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