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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웬만한 국어교과서 다 모아 … 20만 개 물품 어디서 샀는지 다 기억"

1950년대 문맹퇴치운동 포스터 앞에 선 전갑주씨. 아래 왼쪽은 50년 6월 국어 교과서. 6·25 전쟁이 일어나 보급되진 못했다. 오른쪽은 『국민소학독본』.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조선의 문인 유한준(1732~1811)이 『석농화원』에 쓴 발문이다. 수집가 또는 컬렉터라 일컫는 사람들은 공감하는 말일 게다. 전갑주(56·한국교과서 대표)씨도 알고, 사랑하고, 볼 줄 아는 걸 안 모으곤 배길 수 없는 이다.

 그는 20만 점에 가까운 물건을 수집했다. 전공은 국어 교과서. 이 분야에선 기업인 김모씨와 함께 쌍벽을 이룬다고 한다. 그가 서지학적으로 정리한 국어 교과서 자료는 국내외 학자들이 논문에 인용할 정도다.

 전씨에 따르면 올해는 근대 교과서 탄생 120주년이다. 1895년 당시 학부(교육부) 편집국의 『국민소학독본』을 기준으로 해서다. 일종의 통합형 국어 교과서다. 이듬해 『신정 심상소학』엔 ‘김지학’과 ‘박정복’이란 어린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1922년 조선총독부 발간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의 첫 장에 소가 나온다. 전씨는 “조선인을 소와 같은 일본의 노예로 기르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광복 후 1946년 외솔 최현배의 제자 박창해씨가 국어 교과서 편수를 맡았다. 그렇게 해서 48년 『바둑이와 철수(국어 1-1)』가 나왔다. 박씨는 생전 인터뷰에서 “어린이는 친구를 사귀면서 사회를 보기 시작한다. 권수에 따라 1, 2, 3 숫자 대신 이름을 붙이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철수’와 ‘영희’가 이때 처음 나왔다. ‘영희’만 그때는 ‘영이’로 돼 있을 뿐이다.

 전씨는 32년 전인 83년 수집에 맛을 들였다. 달 항아리 모양의 백자를 산 게 시작이었다. 전씨는 “국영기업체(당시 문교부 산하 국정교과서) 직원의 월급으론 무리였다. 그러나 도자기를 볼 때마다 황홀했다”고 말했다. 그는 눈을 교과서로 돌렸다. “교과서를 어느 누구도 체계적으로 보존하지 않아 나서게 됐다”고 한다.

 그의 수집품 목록엔 오렌지색 공중전화기, 빨간 우체통 등 서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생활용품도 있다. 전씨는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뤘다. 그 성공의 DNA를 보여주는 자료를 모았다”고 말했다.

 한때 전씨에게 수집은 집착이었다. 뭐 하나가 빠지면 잠도 못 자고, 입맛도 없었다. 가치를 높인다고 이미 물건을 갖고 있는데도 다 사들여 일부러 없애기도 했다. 그는 “수집품 하나 때문에 다른 걸 잃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젠 ‘수집은 만남’이란다. 물건마다 이야기와 사람이 있다는 뜻에서다. 그는 “20만 개 수집품을 다 기억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서, 어떻게 샀는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46년 미 군정청 학무국의 『한글 첫걸음』도 하나의 만남이었다. 그는 이 책을 대구의 박모씨에게서 사들였다. 박씨는 처음엔 “절대 팔 수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박씨의 할아버지가 이 책을 놓고 그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사연이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 제사상에 이 책만 올린다”고 말했단다. 후에 박씨는 “내가 갖고 있을 책이 아닌 것 같다”며 전씨에게 건넸다. 전씨는 “나중에 똑같은 책을 하나 더 구해 박씨에게 되돌려줬다”고 말했다.

 수집품을 사는 데만 지금까지 빌딩 한 채 값이 들었다. 전씨는 “진정한 수집가는 물건이 좋고 나쁨을 보지 흥정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옆에서 인터뷰를 지켜본 부인 임승자(54)씨는 “별수 있겠나. 이젠 남편과 뜻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체념같이 들렸다. 전씨는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귀띔했다. 수집품이 넘쳐나 전씨는 시골 폐교를 사들였다. 10개 교실을 꽉 채워도 모자라 회사 창고 세 곳과 사무실에도 수집품을 갖다 놓았다. 97년과 2008년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수집품은 생명”이라며 하나도 팔지 않았다.

 전씨는 최근 자신의 수집 인생을 정리한 『진품명품 수집 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한국의 성공신화를 보여주는 60~70년대 마을을 만들고, 비무장지대에 분단과 6·25 전쟁을 기억할 수 있는 평화통일 문화 공간을 짓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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