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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역할과 수많은 ‘자기’들

김형경
소설가
“내게는 ‘내 것’인 삶이 없었다. 내 이름, 성격, 진실은 어른들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눈을 통해 나를 보았다. 그들이 없을 때도 등 뒤에서 그들의 시선을 느꼈다. (…) 나는 사기꾼이었다. 나를 구성했던 쾌활한 겉모습 틈으로 존재의 결여가 드러나곤 했다. 하지만 존재의 결여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었다.”

 20세기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글이다. 『존재와 무(無)』의 탄생 배경과 실존주의 철학의 뿌리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어린 사르트르는 자기가 누구인지 알기 전부터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썼다. 성인이 되어 내면의 거대한 공허와 만나기 전까지 그 역시 어른들이 부추겨 온 이상화된 자기 모습에 도취돼 있었다. 마침내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통과해야 했다.

  사르트르가 서술한 성장기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밟는 과정이다. 부모의 요구를 그대로 자기 삶의 목표로 삼는 경우도 흔하다.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는 남자들은 역할에 따라 다른 태도를 연출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책임감 있는 리더, 순응하는 부하, 온순한 아들, 다정한 배우자, 인내하는 양육자 등등. 상황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면서 남자의 내면은 점점 분열돼 마침내 자기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현대 프로이트 학파 중 자기심리학파 학자들은 인간 정신을 설명하는 도구로 ‘자기(self)’ 개념을 제안한다. 그들은 ‘참자기’의 발현을 성숙하고 자발적인 정신의 척도로 삼는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부모와 환경에 적응하느라 위축된 자기, 포위된 자기, 거짓 자기 등에 둘러싸여 생산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중 과대 자기는 남자들이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수컷 공작이 꼬리 장식을 펼치듯, 위기의 동물이 몸집을 부풀리듯 인간 남자도 ‘있어 보이는 태도’를 보통의 생존법으로 사용한다.

 『거짓 자기』는 인도 출신 영국 정신분석학자 마수드 칸의 평전이다. 칸은 영국 정신분석학계 내에서 안정적 관계를 맺기 위해 애썼는데 그의 노력은 일견 거짓 자기를 공고히 하는 과정이었다. 저자는 그가 특별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삶을 외롭고 후미진 곳으로 몰고 간 원인으로 ‘거짓 자기’를 꼽는다. “어떤 사람은 마치 문학과 같은 삶을 산다”고 설명한다. 해법은 자기 자신과 자기 역할을 혼돈하지 않는 것이다. 내면에 자리 잡은 참자기가 역할을 실행하는 ‘자기’들을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괜찮다고 한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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