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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남북 관계에는 승패가 없다

이훈범
논설위원
아마도 우리 대통령의 ‘원칙주의’가 이번처럼 빛을 발한 때도 없을 터다. 습관처럼 벼랑 끝부터 기어오르고 보는 북한에 눈 하나 깜빡 안 했다. 대신 우리 대표단을 향해 말했다. “철수도 고려하세요.” 거기서 김정은은 느꼈을 것이다. 좀 더 고집했다가는 정말 천길 벼랑 밑으로 떠밀릴 듯한 기운을 말이다. 김정은의 ‘자정(子正)의 결단’이 거기서 나왔다.



 전날 수석비서관회의 발언도 그렇다.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확성기 방송 중단은 없다.” 그 말을 가장 환영했을 사람이 황병서와 김양건 아니었나 싶다. 정회를 요청하고 평양에 보고했을 게 분명하다. “글쎄, 남조선 간나들이 이렇게 깐깐하다니까요.”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가장 잘한 건 3군 사령부를 방문해 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추후 도발이 있으면 선(先)대응하고 후(後)보고하라. 나는 우리 군의 판단을 믿는다.” 이보다 힘 있는 메시지가 또 있을까.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의 명령에 우리 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북한군은 목을 움츠렸으리라. 나 역시 몸에 돋는 소름을 느꼈었다.



 청와대가 내렸다는 ‘화장실 협상’ 지령도 칭찬할 만하다. 양측 수뇌부에 실시간 중계되는 협상장에선 대표들이 하기 어려운 말이 있지 않겠나. 그걸 보고 “CCTV 없는 데서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해 보라”고 지시했다는 거다. 화장실이건 밀실이건 별도 접촉이 10번이었다. 그러면서 완강하던 지뢰 도발 부인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면 되지 않겠나”로 바뀌었다. 극적 타결의 전초였다.



 그 정도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한 것도 잘한 일이다. 명백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었다고 트집 잡는 건 어리석다. 북한이 석고대죄라도 하길 기대하는 건가. 다시 도발할 마음이 있다면 약속을 했다고 안 하겠나. 지나친 바람이고 의미 없는 요구다. 가진 거라곤 자존심밖에 없는 북한이 그만큼 한 건 참 많이 수그린 거다.



 남북 대결에선 승패가 있어도 남북 관계에선 승패가 없다. ‘윈-윈’ 아니면 ‘루즈-루즈’인 거다. 운동경기에선 무승부만큼 맥 빠지는 게 없지만, 협력과 제휴에선 무승부가 가장 근사한 결과다. 어느 한쪽이 완승, 완패하는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남북 대결 아닌 남북 관계를 추구하는 이유다. 답은 하나다. 윈-윈 하는 무승부가 남북 관계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섣부른 남북 관계 개선 기대를 경계하는 것도 적절한 대처다. 이제 겨우 위기를 수습했을 뿐이다. 그걸 기회로 만드는 건 지금부터 할 일이다. 금강산 관광도 5·24 조치 해제도 향후 당국회담의 당연한 의제는 아니다. 북한의 태도에 달렸다.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도시락 뚜껑부터 여는 건 우리의 협상력만 약화시킬 뿐이다.



 한마디로 우리 대통령 잘했다.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하나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생각할수록 아쉽다. 한꺼번에 국내 정치까지 보듬을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거다. ‘8·25 합의’가 가능했던 덴 야당의 협조도 한몫했었다. 발목을 잡지 않았다. 그런 야당의 대표한테 회담 진행 상황을 미리 귀띔해줬어도 좋지 않았을까.



 중요한 정보를 야당과 공유하는 거다. 의견도 묻는 거다. 통일 전 독일이 그랬다. 동방정책을 비롯한 모든 정보를 야당과 나눴다. 야당은 보안을 유지하며 비밀을 공유한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국정 파트너로서 신뢰가 절로 생겼다. 우리도 상황 종료 후 장관이 야당을 찾아가 설명은 했다. 하지만 감동의 크기가 어찌 같으랴. 무박4일 중 한두 번이라도 대통령이 야당 대표한테 전화했더라면 결국 득을 보는 사람은 오히려 대통령이었을 터다.



 지금도 안 늦었다. 눈앞의 개혁은 대통령 혼자서 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원칙만으로도 못 푼다.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야당의 협조는 선택 아닌 필수다.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다. 개가 두 마리 모이면 사자도 죽일 수 있다. 유대인 속담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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