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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협상 타결을 계기로 새로운 남북관계 만들어야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북한의 도발 행태를 충분히 학습한 남한 여론은 하나가 되었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승부사적 자질을 가진 대통령의 원칙주의는 김정은을 옥죄었다. 우리 정부도 군사적 대결만 고집하지 않고 북한의 대화 제안을 받아들여 최선을 다했다. 남북 협상 타결은 바람직한 남북 관계로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낭보다. 우리 사회의 저력을 보여 주는 결과이자 한 걸음 앞으로의 진전이다.

 이제부터가 더 문제다. 한 차원 높은 정책으로 새로운 남북 관계의 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대북 정책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기존 대북 정책의 문제점은 정책의 초점을 북한의 최고 권력자에게만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 비핵·개방·3000,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모두 북한 최고 권력자를 변화시키려 하거나 그의 태도 변화를 대북 정책 추진의 핵심 요건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비핵·개방·3000 정책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초기에는 대북 관여의 행위자가 남한 정부로 한정되어 있다.

 행위 주체를 한국 정부, 정책 대상을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만 국한한 좁은 구도의 대북 정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독재자가 마음을 고쳐먹고 스스로 개혁, 개방을 한 사례가 없다. 특히 유훈통치에 기초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시장경제로의 체제이행이 자신의 권력에 치명적임을 알고 있다. 신뢰를 보이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조차 자신을 흔들려는 시도로 간주한다. 이와 같이 좁은 구도의 대북 정책하에서는 남과 북이 대립, 갈등하는 구도가 지속될 것이다.

 새로운 대북 정책은 남북한의 다양한 행위자와 접촉면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협상 합의문 6항에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 교류 활성화”는 매우 중요하다. 남북의 민간 교류는 북한 주민에게 중요한 학습기회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지난 8월 15일 중국 연변대에서 주관한 서울대·김일성대·연변대의 공동학술회의에 참여했다. 발표에는 김일성대학의 재정대학이 경제학부에서 독립되었고 법학부가 법률대학으로 승격됐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마 보다 실용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이 단과대학의 필요를 우리가 채울 수 있다면 좋은 남북 협력 모델이 될 것이다. 또한 북한 기업과 오랫동안 거래한 조선족 기업가는 무역을 하면서 북한의 기업 운영이 바뀌고 있음을 체험한다고 했다. 납기를 더 잘 지키고 품질 관리 능력도 개선될 뿐 아니라 무역에 수완이 더 좋은 사람이 기업의 지배인으로 발탁된다는 것이다. 이런 교류가 남북관계와 북한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하다.

 바람직한 대북 정책은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면서도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업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북한 정권이 가장 원하는 것은 외화수입이다. 원자재 가격의 급락과 중국 경제의 하강으로 그동안 주 외화 수입원이었던 북·중 무역이 휘청거리고 있다. 이 외화수입의 감소를 남한 아닌 다른 데서 메우기는 어렵다. 이번에 대화를 먼저 제의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등 이전과 크게 달라진 북한의 태도가 남한과의 경제협력을 그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원하는지 시사하고 있다.

 여기가 정책 선택의 분기점이다. 외화가 궁한 북한 정권을 대상으로 제재와 압박을 계속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남북 대결 구도를 지속시킨다. 남북 주민의 동질성 회복도 어려워지고 가장 바람직한 통일 과정, 즉 경제통합을 통한 점진적 통일의 가능성도 멀어진다. 따라서 압박과 제재는 미래지향적 통일정책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의 선택은 명확하다. 평화를 정착시키며 상생 구도를 만들어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점진적 통합은 북한이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도록 남한이 도와주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북한이 제시한 특구나 개발구 중 1~2개를 수출시범단지로 만들어 남북이 공동운영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때 시범단지의 운영은 남북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독립적인 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남한의 민간 기업들이 북한 기업과 교역하는 것을 허락할 필요가 있다. 북한 변화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중앙의 간섭과 통제가 적은 기업, 지역과의 경제 협력이다. 민간이 이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다.

 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기 때문에 교역의 대가를 외화 대신 현물로 지급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북한과 같이 무역의존도가 40% 이상에 달하는 경제에서는 현물과 현금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현물을 받은 만큼 그 제품의 수입을 줄여 외화를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는 받은 현물을 중국에 팔아서 외화를 벌어들일 수도 있다.

 이제 우리 대북정책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이번 협상 타결을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스마트한 대북 정책을 펴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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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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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