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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중국의 전승절과 항일정신

금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으로부터 70년이 되는 해다. 유럽 전쟁은 5월에, 태평양 전쟁은 8월에 모두 끝났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전승국들은 각자 전승절(전승기념일)에 맞추어 기념행사를 하였거나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대개 8월15일을 대일본 전승절(V-J Day: Victory over Japan Day) 행사를 한다.

유럽의 전승절(V-E Day: Victory in Europe Day)은 5월 8일이다. 1945년 5월7일 프랑스 북동부 도시 랑스(Lens)에 있는 한 학교에서 독일군은 연합군 사령부에 항복을 하면서 5월8일 오전 11시를 기해 유럽 전역의 군사행동을 종료 시켰다. 따라서 총성이 멎은 5월8일이 전승절이 된다. 그러나 러시아는 하루 더 늦은 5월9일이 전승절이다. 소련의 스탈린은 랑스 연합군 사령부의 서명을 인정하지 않고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진격 5월8일 밤 10시43분 독일로부터 직접 항복문서에 서명을 받아냈다. 모스크바 시간으로는 5월 9일 0시43분이었다.

미국에서는 도쿄 만(灣)에 정박 중인 미주리호 함상의 항복조인식에서 일본정부가 항복 서명을 한 9월2일을 대일본 전승절이다. 기록 사진을 보면 맥아더 사령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외상이 보인다. 그는 1932년 4월29일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사가 투척한 물통 폭탄에 좌측 다리를 잃은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당시 주중공사였다.

중국은 금년부터 미국의 대일본 전승절 다음날인 9월3일을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승리 70주년 기념일(전승절)로 정했다. 그리고 53개의 외국 정상 등 지도자를,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리는 열병식(군사 프레이드)행사에 초청하였다.

지난 5월9일 모스크바에서 70주년 전승절 행사를 주관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의 열병식 참석은 물론 러시아 군인도 열병 행사에 참가시켰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현지 대사를 참석시키고 정상들은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전승절이 개최되는 톈안먼 광장이 1989년 6월 톈안먼 사건(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사건)이 일어 난 곳이라는 이유로 참석을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준비한 핵미사일과 최첨단 전투기 등 최대 규모의 ‘군사굴기’를 과시하는 열병식이 군사적 색채가 너무 강해 참석을 포기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일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는 아베 (安倍晉三) 일본 총리는 당초 열병식을 피하여 9월3일 전후 방중을 계획하였으나 국회 일정을 핑계로 결국 방중을 연기하였다. 미국이나 유럽의 정상들과 보조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8월20일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의 전승절 행사 참석을 발표하였다. 같은 날 북한은 대북 확성기방송 중단을 요구하면서 포격을 가하고 우리 측이 응사하는 긴박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사건으로 시작된 남북한의 군사긴장이 점차 고조되어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이 어렵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남북 고위급의 긴급 접촉을 통해 박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에 북한이 굴복함으로써 방중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전승절 열병식 준비에 한창이다. 보도에 의하면 베이징 외곽에 톈안먼 광장을 본뜬 모의광장에서 매일 연습을 하고 언론에 공개까지 하였다. 베이징의 악명 높은 스모그를 우려하여 전승절에 맞추어 대기 오염 요인을 철저히 점검 전승절에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열병식 블루’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중국인의 일본에 대한 불편한 역사는 청일전쟁(1894-1895)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예상치 않게 패전하여 분루를 삭이지 못하고 있을 때 날라 온 시원한 낭보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히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소식이었다. 안 의사의 쾌거를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한 중국의 당대 실력자 위안스카이(袁世凱)는 시(詩)를 지어 안 의사를 칭송했다.



身在三韓名萬國 生無百歲死千秋

(몸은 한국출신이지만 이름은 만방에 떨치니

살아서 백년을 살지 못하지만 그 명성 죽어서는 천년을 가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안 의사의 쾌거를 청일전쟁 이후 중국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항쟁의 기원으로 보았다. 저우언라이 자신도 난카이(南開) 대학 시절 연극반에서 안 의사 배역을 한 경험이 있고, 후에 그의 부인이 된 덩잉차오(鄧潁超)도 남장(男裝)으로 안 의사가 되었다. 연극 ‘안중근’을 통해 두 사람의 항일 정신이 결합되어 영원한 반려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대사관 근무를 통해 느낀 것은 중국인 개개인의 항일(또는 반일)정신이 특별해 보였다. 지난 2012년 9월 일본정부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국유화를 선언하였을 때 중국의 100여개 도시에서 폭력시위가 있었다. 일본 물건 불매는 물론 심지어 일본 백화점에 난입하여 불태우는 사건도 있었다. 어느 도시에서는 항일 시위군중과 일본차를 타고 있는 중국인과 시비 끝에 살인사건까지 발생하였다.

중일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중국을 찾은 일본인들이 지방여행을 못하고 베이징 및 상하이 등 비교적 안전한 대도시에만 여행을 한다고 들었다. 일본 여행자들이 택시를 탈 때 한국어를 한 두 마디 알아 두어야 안전하다고 농담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중국에서 텔레비전을 켜면 어는 채널에서든지 반드시 항일 유격대의 드라마가 방영된다. 드라마에는 잔악한 일본군과 용기 있는 애국 항일 투사가 등장한다. 진부한 이야기로 지루할 것 같은데도 여전히 인기가 높다. 특히 중일전쟁이후 일본군이 중국전역에 전선을 넓혀 일부 한간(漢奸 친일 매국노)을 제외하고는 일본군에 의해 피해를 보지 않은 가정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중국 측 자료에 의하면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 이후 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 8년간 1500만의 중국인이 일본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한다. 특히 일본군이 1941년 12월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기까지는 중국 홀로 장제스(蔣介石)의 국부군(NRA 국민혁명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인민해방군(PLA 홍군)이 합작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마오쩌둥과 장제스 중 누가 더 항일 지도자냐 하는 바보 같은 질문을 가끔 듣는다. 연구가 부족하여 잘 모르겠지만 마오쩌둥은 항일의용군 행진가를 그대로 중국 국가(國歌)로 정하였고 장제스는 일본군도 막아야 하지만 공산당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았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일본군은 피부병이지만 공산당은 심장병이다. 지금 중국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일본군은 몸에 난 두드러기처럼 가렵고 귀찮지만 때가 되면 물러간다. 공산당은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나 나중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심장병처럼 위험하다.” 장제스의 ‘피부병-심장병’ 논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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