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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브라질 경제위기의 진실

영어에서 가장 값비싼 네 단어가 있다. ‘This time it’s different(이번은 달라)’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존 템플턴 경이 1940년대 한 말이다. 당시 금융시장에 몰려든 대중의 속성을 은근히 꼬집는 말이다. 그는 “수익이 많다며 대중이 달려든 증서(채권이나 주식)는 늘 끝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돌아온 자원의 저주 … 룰라 개혁은 환상이었다
세계경제 신형엔진 ‘브릭스’로 주목
석유·석탄 가격 고공행진이 원동력
2011년부터 폭락하자 밑천 드러나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 부패 스캔들이 불거졌다. 이달 16일 수도 브라질리아 거리로 뛰쳐나온 반부패 시위대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 모습의 거대한 풍선에 죄수복을 입혀 띄워 놓고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브라질리아 AP=뉴시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템플턴이 그 말을 한 지 약 70년이 흐른 2010년. 한국 금융시장에선 기묘한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브라질! 이번은 다르다”였다. 당시 한 증권사의 브라질 국채 판매담당은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브라질 스토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증권사 판매사원의 헌신성 덕분이었을까. 브라질 채권 열풍이 불었다. 서울 강남 부유층을 주로 상대하는 프라이빗뱅킹(PB) 센터가 열풍의 진앙이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2010년 이후 2년 정도 새에 브라질 국채 7조원어치가 팔려나갔다.



 그런데 요즘 브라질은 새로움과 거리가 멀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로 곤두박질했다. 재정적자가 늘고 물가가 치솟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브라질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했다.



 과장이 아니다. 브라질 주요 도시는 분노의 눈물로 가득하다.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스캔들 블랙홀이 온 나라를 빨아들이고 있다. 좌파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비극의 씨앗은 2008년 브라질의 남대서양 심해유전 개발이었다. 브라질 정부는 페트로브라스에 독점개발권을 줬다. 대신 유전 설비의 80% 이상을 자국산으로 쓰라고 했다. 관련 산업이 호황을 맞았다. 집권 좌파인 노동자당이 중시하는 일자리도 적잖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흥청거림의 배후에선 검은돈 거래도 활발했다”고 전했다. 입찰 비리와 리베이트 수수, 공금 유용이 벌어졌다. 검은돈은 권력을 좇는 불나방과 같았다. 호세프 대통령 측근의 주머니 속으로 날아들었다.



 결국 사달이 났다. 블룸버그통신은 “브라질의 정치 리더십이 진공 상태나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라고 최근 전했다. 1년여 만에 놀라운 반전이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브라질은 남미에서 정치 리더십이 가장 안정적인 나라였다.



 지금 브라질에서는 정치·경제 모두가 위기다. 톰슨로이터는 “브라질 환상이 깨지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경제에서 승자가 될 것이란 환상이다. 브라질은 중국·러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브릭스(BRICS)로 불리며 세계 경제의 신형 엔진으로 평가됐다.



호세프
 지금은 신형 엔진이 아니라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미 금융전문지인 글로벌파이낸스는 “요즘 브라질은 200년 숙명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처량한 남미 국가의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1810년대 이후 주기적으로 경제위기를 맞고 정치 불안이 되풀이되는 숙명이다.



 그 숙명의 열쇠는 석유와 석탄 등 천연자원이었다. 금융 역사가인 에드워드 챈슬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쓴 칼럼에서 “상품(자원)은 브라질엔 축복이면서 저주”라고 했다.



 브라질 등 남미는 처음엔 황금과 은, 이어서 구리와 석탄, 최근엔 석유 때문에 자원 투자자의 목적지였다. 남미 독립 시기인 1820년대 영국 런던을 뜨겁게 달군 라틴 채권 붐, 대공황 직전 미국 농부까지 유혹한 남미 채권 투기, 석유파동 시대 남미 외채 붐 등이 일어난 까닭이다.



 하지만 “자원 가격이 떨어지면 남미는 철저히 외면당했다”(챈슬러). 그때마다 남미는 돈의 주인(채권자)들에겐 믿을 수 없는 곳으로 전락했다. 자원 값이 떨어지면서 채권이 부도나는 경우가 속출해서다.



 그런데 2003년 그 숙명 사슬이 끊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싹텄다. 브라질에 능력과 인기를 겸비한 한 인물이 권력자로 떠올랐다. 좌파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0)였다. 당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서방과 브라질 국민 모두가 룰라의 대통령 당선은 브라질 경제의 패브릭(Fabric·짜임새)에 중요한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른 한편에선 룰라가 ‘왼쪽으로 너무 선회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했다.



 룰라는 타협을 택했다. 거시경제 정책은 철저하게 국제통화기금(IMF) 처방을 따랐다. 재정지출 고삐를 죄면서 인플레이션 억제에 힘썼다. 동시에 “그는 가난한 지지 세력엔 사회안전망이란 선물을 줬다”(블룸버그). 서방 투자자와 지지 세력 양쪽을 만족시키는 전략이었다.



 룰라의 브라질 경제는 대통령 임기 동안 잘 굴러갔다. 빈곤층 비율이 전 인구의 30% 선에서 15% 수준으로 줄었다. 교육 수준이나 중산층 비중 등 여러 사회·경제 지표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브라질 안팎에서 찬사가 잇따랐다. 특히 해외 투자자들의 상찬(賞讚)이 더 크게 울렸다. “브라질 경제가 달라졌다” “남미 경제 개혁의 모범이다” “더 이상 브라질 위기는 없다” “상품 가격이 떨어져도 브라질 경제는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다” 등이다.



 그럴 만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채무불이행(디폴트)과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그의 집권 기간 동안 사라진 듯했다. 룰라의 인기는 2010년 대선에서 사실상 무명인 호세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정도였다. 바로 이때 한국에선 브라질 국채 붐이 거세게 일었다. 마치 룰라의 인기가 안데스 산맥을 넘어 태평양을 건너 국내에도 영향을 미친 듯했다.



 그 순간 어느 누구도 상품시장 호황에 룰라의 경제 약점이 은폐돼 있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원 가격 강세와 미국의 양적완화(QE)가 낳은 유동성 풍년이 만든 브라질 경제 호황이 모두 룰라의 업적으로 채색됐다”고 했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톰슨로이터는 “원자재 가격이 2011년 하반기부터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서서히 브라질엔 익숙한 풍경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재정적자가 불어났다. 인플레이션도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 보였다.



 당시 미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경제가 나빠지면서 브라질 국민의 자신감과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며 “정치적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예측했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특수는 오래가지도 못했다.



 요즘 브라질 안팎에선 룰라의 유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이다. 에드먼드 애먼 영국 맨체스터대학 경제학 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룰라가 한 일은 신자유주의 개혁”이라고 평했다. 재정긴축과 규제 완화가 그의 경제 개혁의 핵심이란 얘기다.



 애먼 교수는 “규제 완화로 투자가 늘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원자재 산업에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이게 비수가 돼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기다. 원자재 붐이 가라앉으면서 경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원유 값 등이 떨어지자 브라질 경제는 곤두박질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이다. 원자재 외에 이렇다 할 산업이 숙성하지 않아서다. 브라질이 이번에도 200년 숙명의 사슬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희망의 싹은 아직 움트지 않고 있다. 룰라의 후계자인 호세프가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그가 위기를 극복할 경제 개혁을 엄두도 낼 수 없다. 톰슨로이터는 “현재로선 상품 가격이 다시 오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수퍼 사이클(자원 가격 대세상승)은 아닐지라도 미니 버블이라도 발생해야 브라질 경제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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